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한약을 먹고 있어 간수치가 높게 나올지 모른다고 내심 걱정했는데 정상이다. 한의사가 고지혈증 약을 이틀에 한 번만 먹으라고 해서 실천 중이었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정상이다. 고무적이다. 고지혈증 약을 끊으려고 여러 노력을 했는데 일단 매일 먹지 않아도 수치가 정상범위라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거의 매일 자색양파를 먹고 있는 효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의사가 피를 맑게 하는 미나리, 자색양파, 들기름 한 숟가락을 먹으라고 했다. 들기름은 아침 공복에 매일 먹고 자색양파는 매 끼니 먹으라고 했지만 어떤 날은 하루 한 번, 또 어떤 날은 하루 두 번 정도 먹고 있다. 생으로 먹으면 속이 무지 아리다. 그래서 양파를 3시간 정도 찬물에 담근 후 썰어 놓는다. 그래도 좀 아린데 약이라고 생각하며 먹는다. 밥이랑 먹으면 먹을만하다. 미나리는 가끔 먹는다. 미나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서 주로 먹는다. 집에서 몇 번 먹었지만 잘 안 사게 된다.
대신 신장에 물혹이 생겼다. 재작년 초음파 때 없던 거다. 갑상선에 낭종이 여러 개 있다. 작년 위 내시경 때는 위에 작은 용종이 있다고 했다. 자궁에도 근종이 있는데 폐경되고 나면 크기가 커지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없던 것들이 생겨나고 멀쩡하던 사지에 가끔 원인 모를 통증이 인다.
나이 드는 건 신체변화에 계속 적응하며 사는 일 같다. 하긴 인간의 평생이 그런 것 같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신체가 변한다. 어릴 때는 적응이란 걸 느낄 새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사춘기 때 급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에 잠깐 당황하다가 이내 적응한다. 20대, 30대, 40대 나이대별로 조금씩 군살에 적응하고 피부노화를 받아들이고 주름살을 인정하고 처지는 얼굴에 슬퍼한다. 50대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십견에 인체의 신비를 느낄 정도다.
노화현상으로 노안이 오고 비문증이 생긴다. 쪼그리고 안기 힘들어지고 하이힐을 신기가 부담스러워진다. 눈에 렌즈를 끼기 힘들어 안경을 쓰게 된다. 그런 만큼 외모의 일정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노화현상은 예뻐 보이고 싶지만 더 예뻐지려는 노력을 때로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력감보다는 대체로 늙어가는 현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살 수 있으므로. 인생의 순리를 역행하는 마음과 행동을 해봤자 스트레스받고 심신이 고달프므로.
그렇다고 적응하는 일이, 또는 적응한 일이 기쁘건 아니다. 얼굴의 미모가 사라지는 일은 내내 슬픔이 기저에 깔려있다. 겉으로만 아닌 척할 뿐. 사진 찍히고 싶지 않다. 반면, 오늘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 나타난 것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아마도 내 몸에 생겨난 각종 혹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것들이 통증을 유발하지 않고 사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일 거다. 주름과 처짐도 사는데 지장을 주는 건 아니지만 매일 보니까 매일 나이 드는 걸 실감하며 자각하기 때문에 슬플 것이다. 그 슬픔은 씁쓸함에 가까운 슬픔이다. 극복하지 못할 슬픔은 아니므로. 매일 거울 보며 적응한다.
껌을 잘 씹지 않는데 오래전에 사 둔 껌이 보여 하나를 꺼냈다. 껌 종이에 쓰인 문구가 딱 요즘의 내 마음 중 하나여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