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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Nov 09. 2024

주제파악

2024. 11. 8

며칠 전 미나리 된장 전골 식당을 우연히 발견했다. 점심 단가가 좀 비싼 식당들이 모여있는 빌딩이라 잘 가지 않는 곳인데 안경집에 들렸다가 지나가는 길에 눈에 띄었다. 식당 앞에 놓인 배너에 쓰인 메뉴와 가격이 기대보다 저렴했다. 외관이 고급식당처럼 근사한데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가격은 저렴하니 가보고 싶었다. 며칠을 벼르다가 오늘 드디어 가봤다.


한의사가 추천한 피를 맑게 해 준다는 미나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만발이었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차돌 미나리 된장 전골을 주문했다. 후배와 얘기하는 사이 전골이 나왔다. 언뜻 보기에 양이 많지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이 먹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음식이 다 익어 개인 그릇에 퍼담는데 문득 미나리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엇, 미나리 어딨지?"

"이거 아니에요?" 하며 후배가 젓가락으로 보여주는데 정말 한 움큼도 되지 않았다. 너무너무 실망스러웠다. 미나리를 먹는 게 목적이었기에 미나리 사리를 추가 주문했다. 무려 오천 원이었는데 양이 적었다. 이 식당에 다시 올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반찬은 달랑 2개인데 어묵을 채 썰어 놓은 것과 무채였다. 제법 많은 밥을 다 먹었는데 왠지 허전했다. 먹었는데 먹은 것 같지 않았다.


후배가 이 식당의 임차료가 비쌀 거라고 했다. 비싼 비용이 음식에 반영되었을 거라고. 그렇다면 차라리 음식값을 조금 더 올리고 양을 푸짐하게 주면 어땠을까 싶었다. 가격으로 호객을 하는 것일까? 맛으로 승부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흔하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그런데 양이 그리 적다니. 미나리는 둘째치고 두부도 아주 얇게 자른 사각형 2개만 있었다.


식당 안이 꽤 넓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안타깝다.

가을 (08:57, 12:13, 13:01)

남이 안 되는 이유, 남이 못하는 이유는 잘 알겠는데 내가 못하는 이유, 안 되는 이유는 잘 모른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일 큰 것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을 모른다.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른다.  도덕적 인간인지  아닌지, 청렴한지, 권위적인지 잘 모른다. 남은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자신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자신은 제법 청렴하다고 하지만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일머리가 없으면서 일을 아주 잘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다.  직원들이 자신을 무지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자신을 잘 모른다.


이렇게 제삼자적 시각으로 보면 잘 보이는 것처럼, 나도 나를 잘 관찰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공부해야 한다.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노을 지는 나이에 와 있는 지금, 남들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주제파악이라도 잘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노을(17:22, 17:23, 17:23)
 해지는 시간에 뜬 달(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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