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5
아마도 추석 저녁부터 인 것 같다. 모기가 아주 많이 보이기 시작한 건. 거실과 부엌에 여러 마리의 모기가 날아다녔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저녁이 되면 유독 더 많이 보인다.
"모기가 너무 많이 날아다녀" 엄마가 저녁을 드시며 말씀하셨다. "모기약 놨으니까 다 죽을 거예요" 방에서 웹소설을 읽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거실로 나갔다. 뒤늦게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모기가 자꾸 날아다녀 손으로 휘휘 저었다. 이렇게 모기를 내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좀 많다는 생각을 하며 "여름엔 너무 더워서 없더니 가을에 나오나 봐요"라고 말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찬장 문에 모기 몇 마리가 앉아있다. 물기 머금은 손으로 탁 쳤다. 납작해져 버린 모기. 옆에 있던 모기는 휘이익 날아가버렸다. 물로 손을 씻고 다시 설거지하며 무심코 천정을 봤다. 두 눈이 커지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설거지를 멈추고 서둘러 파리채를 찾았다. 천정에 수십 마리의 모기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많은 모기를 처음 본다. 파리채로 연신 휘둘렀다. 탁탁 소리와 함께 한 마리씩 천장, 벽, 방바닥에서 명을 다했다. 탁 때리고 물티슈로 집은 후 모기가 쏟은 분비물을 훔쳐냈다. 사람 피를 먹은 모기는 피를 내뿜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모기는 갈색의 뭔지 모를 것을 남겼다. 어떤 모기는 아무 분비물 없이 그저 여러 갈래로 나뉜 털이 죽은 몸체 옆에 떨어졌다. 내 눈동자는 천장, 벽, 방바닥을 연신 번갈아봤다. 가만히 앉아있는 모기가 눈에 띄면 살며시 접근하여 파리채를 위로 올린 다음 숨을 참고 한 번에 '탁' 잽싸게 내리쳤다. 날아다니는 모기도 집중해 잡으면 툭 맞혔다. 거의 백발백중. 모기들이 기운 없는지 빠르게 도망치지 못했다. 그 사이 모기약에 취한 애들은 방바닥에 내려앉았다. 버둥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일말의 동정 없이 파리채를 휘둘렀다. '탁'.
삼십 여분을 거실, 부엌, 방마다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대로 혈안이 되어 잡았다. 날아다니는 모기는 사라졌다. 천정에도 없다. 창틀, 벽 모서리 등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 모기들만 몇 마리 남았다. 그날 아마 백 마리는 아니지만 수십 마리를 죽인 것 같다. 죽어가는 모기 수가 늘어날수록 마치 내가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로 느껴졌다.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힘. 우주에서 본다면 나도 한낱 모기 같은 존재이며, 나의 존재를 미물로 보고 함부로 죽이려는 힘이 존재할지 모르는데 내가 이래도 될까 싶은 마음이 찰나의 시간만큼 들었다.
모기에게 피를 뺏기고 싶지 않아, 모기 물리면 가려운 게 싫어서, 앵앵 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거스르기 때문에 모기는 내게 하등 이익되는, 유익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죽일 때 죄책감 따위 없는데, 대량학살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창틀에 모기약으로 죽은 사체가 많이 보였어도 이런 마음은 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손으로 일일이 잡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손에 피 묻힌다는 의미가 어쩌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자신을 잔인하고 나쁜, 부정적인 모습으로 보게 된다.
이번 주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그제, 어제는 더욱 추웠다. 불과 2~3일만에 기승을 부리던 모기가 사라졌다. 한, 두 마리가 미처 추위를 피하지 못한 건지 추위에도 살아남은 것인지 알 수 없게 날아다닌다. 아침엔 내가 누웠던 침대 자리에서 죽은 모기를 발견했다. 홈매트 냄새로 쓰러졌는지 혹은 나의 뒤척임에 깔렸는지 알 수 없지만, 불쾌한 존재의 죽음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날씨 때문에 어차피 오래 살 수 없는 모기들이었는데, 난 왜 그렇게 요 며칠 참지 못하고 학살 수준으로 많이 죽였을까. 자연이 알아서 해결했을 텐데.
기온이 갑자기 이렇게 내려갈 줄 그때는 몰랐다. 당장 내게 해를 입히는 모기를 참고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으므로 처치했다. 내게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내가 죄의식 가질 필요 없는 일이다. 이 간단한 논리를 '모기'가 아닌 '존재'로 바꾸면 이 세상 모든 파워게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갑자기 소름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