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캐슬 Jul 09. 2024

거짓말쟁이 대결

누가 이겼을까?

30년 평생을 꽃집 아들로 살아왔지만 무슨 꽃이 제일 좋냐는 질문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수국. 수국이 제일 좋아."


혹자는 수국의 풍성한 꽃잎이, 동글동글한 형태가, 토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신비로운 생리가 좋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화려한 가짜 꽃으로 초라한 진짜 꽃을 교묘하게 감추는 수국의 거짓말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거짓말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짓말은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위하는 방법 또한 될 수 있기에. 선천적으로 몸도 마음도 허약했던 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상황에 맞게 종종 거짓말을 하곤 했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같은 거짓말쟁이 정훈이를 만났다.



정훈이는 누구보다 그림같이 학교생활을 하던 아이였다. 항상 아이들의 중심에 섰으며 무리를 이끄는 리더 노릇을 톡톡히 하였고 인사성이 바르고 공손해 담임인 나를 비롯해 교과 선생님들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독 빨리 철이 들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기특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묘한 위화감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 거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교육비 지원 대상자를 조사하던 중 정훈이의 이름을 보았다. 외견상 너무나 잘 정돈돼 있고 학교 준비물도 곧장 잘 챙겨오던 터라 무언가 잘못 됐을거라 여기며 연유가 무엇인지 확인해보니 정훈이가 한부모 가정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핍이라는 요소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만 이러한 형태로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담임이라는 작자가 어찌 이리 무심했는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1급 정교사가 되었다며 기세등등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정훈이의 비밀을 알게 된 후로 정훈이의 행동이 납득되었다. 남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운 동시에 필사적으로 남을 이기려 하는 승부욕과 향상심, 또래와 달리 작은 실수도 심히 부끄러워하는 모습, 유독 점심시간 중 폭식하는 습관까지. 그 모든 것들이 결핍이 형상화한 것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루는 맛있는 음식일 잔뜩 나온 점심시간이었다.



그날도 정훈이는 과식을 넘어 폭식을 하고 있었다. 밥을 한가득 퍼 와 먹고는 두 번, 세 번을 받아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밥을 억지로 욱여넣었다.



"정훈아. 거기까지만 먹어. 너 지금 너무 많이 먹는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탈 나."



"네. 선생님. 이번 것까지만 먹을게요."



넌지시 건넨 말에 웃으며 정훈이는 웃으며 화답했다. 꽤나 흥미로운 대화였는지 옆에서 급식실 식탁을 정리하시던 조리 실무원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아이구~ 엄마가 많이 바쁘신가 보네~ 엄마가 집에서 밥 안 해주시니?"



아뿔싸! 실무원님께서는 웃으며 건넨 가벼운 인사말이었지만 정훈이에게는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찢어 놓기 충분한 말이었다. 정훈이가 애써 침울한 표정을 숨기고자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두었다간 큰일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대답을 가로챘다.



"정훈이가 워낙 먹성이 좋아요. 하하... 학교 밥이 또 굉장히 맛있는 편이잖아요. 덕분에 학교 오는 게 매일 기다려질 정도라니까요."



"그렇죠? 호호호. 그럼 맛있게 드세요."



짧은 대화를 마치고 정훈이를 돌아보니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국 칸에 나머지 음식을 모아 넣고 있었다.



"그만 먹으려고?"



"네."



힘 없이 대답하는 정훈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날 남은 오후 수업 시간 내내 정훈이는 종일 우울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평소완 다르게 끈이 떨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런 정훈이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었다.



"정훈아. 학교 마치고 선생님 좀 잠깐 보고 갈래?"



마음만 앞서 정훈이를 남기긴 했다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끝내 정하지 못했다. 부모님에 관한 것을 끝끝내 숨기는 데도 어설프게 아는 척을 하고 싶진 않았다. 정훈이가 그것을 숨기고자 한다면 기꺼이 속아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말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위로할 수 없다. 내 마음을 전할 수도 없다.



갈팡질팡하며 마침내 도달한 결론은 지금 생각해도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너무나 풋내기스러운 방법이었다.



"선생님. 왜 남기셨어요?"



"오늘 밥을 너무 맛있게 먹길래 디저트도 먹고 가라고 불렀지. 집에 가면서 먹으렴."



아이들 간식용으로 사두었던 초코 과자 여러 개를 건네자 정훈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차마 소리 내 엉엉 울지 못하고 복 받치는 감정을 꾹꾹 누르며 어깨를 들썩이던 정훈이는 과자를 건네받고는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정훈이는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은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속앓이를 했던 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종종 그때를 돌이켜보곤 한다. 과연 그날 속은 사람은 나였을까, 정훈이었을까. 내가 그를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은 건 내가 아니었을까? 과연 거짓말쟁이 대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여전히 그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답을 알게 될 날이 올 거라 믿고 있다. 난 그저 그날이 올 때까지 하루하루 또 다른 거짓말을 쌓아나갈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성실함의 천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