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들 사이에서 세대교체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리테일의 방향성과 주요 타겟 등 전 분야에서 말이다. 과거 매출의 1등 공신이었던 중장년층은 하나둘씩 은퇴하며 구매력이 약화되고 있다. 반면 현 청년층의 구매력은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들이 빈자리를 메꿀 것이다. 유통사 입장에서는 2030이 잠재적 고객이기에 더 늦기 전에 어떻게든 이들을 꼭 붙잡아야만 한다. 하지만 디지털에 매우 친숙한 그들을 오프라인 리테일로 불러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이를 위해선 단순 재화 소비가 주가 되는 온라인 쇼핑몰의 한계를 적극 공략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거나 이쁜 사진들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 등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들이다. 식음은 이러한 경험 중 대표적인 것으로, 단순하지만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켰을 때의 만족감 역시 크다. 최근에는 핫플레이스에 방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먼 길을 이동하고 심지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한다.
타사에 비해 F&B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신세계는 이러한 것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항상 시장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한다. <미식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입점 업체를 엄선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최고의 미식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특히 2030 세대를 끌어들이는데, 그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되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제는 리테일의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 리테일에 입점한 식당들은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다시 쇼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고객 편의를 위한 시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본래 목적인 쇼핑은 거들뿐, 맛집을 찾아 쇼핑몰로 떠난다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10여 년가량의 긴 고민 끝에 최근 지하 매장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였다. 패션 브랜드로 채워졌던 자리는 디저트 전문관인 <스위트 파크>로, 식품관 자리에는 <하우스 오브 신세계>로 바뀌었다. (후자의 경우 2개 층은 프리 오픈을 하였고, 마지막 층은 곧 오픈 예정이다.)
1600평 규모의 스위트 파크에는 약 40여 개의 디저트 전문 매장이 들어섰다. 빵이나 케이크, 초콜릿 등 제과류는 기본으로 한국에서 보기 힘든 디저트까지 만날 수 있다. 특히 국내 유명 베이커리들을 엄선한 베이커리 편집숍과 <밀레앙>, <피에르 마르콜리니> 등 유명 해외 브랜드들의 국내 첫 유치를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주문이 들어오면 눈앞에서 바로 만들어주는 등 시각적 볼거리도 선사해 기다리는 것마저 즐겁다. 디저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청년층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호텔 라운지를 표방하며 등장한 하우스 오브 신세계는 리테일계의 큰 고정관념을 허물었다. 중앙에 커다란 공용공간을 두어 구매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든지 앉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평당 테이블 수가 일반적인 식당가의 절반에도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다이닝을 배치해 객단가를 높이기는 하였지만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한 것이다. 대신 대규모 집객효과를 노린 것인데, 특히 높은 비용에 진입장벽이 높은 청년들에게 이러한 광경을 익숙하게 만들어 미래의 큰 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스타필드 역시 고메 스트리트와 잇토피아 등의 식음공간으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단순히 식당이나 푸드코트가 입점하는 정도였으나, 점차 지점별로 특화된 F&B존이 추가되었고 그 규모 역시 커지고 있다. 가장 최근 개발된 수원점에는 신세계가 엄선한 디저트 핫플 <바이츠 플레이스>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시즌제로 운영되는 팝업존으로 가장 높은 매출이 발생하는 1층에 과감히 배치하였다. 3-4개월 주기로 입점 매장들이 리뉴얼되며 그 테마 또한 바뀌게 된다. 현재는 <빵지순례>라는 주제로 운영되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영업이 중단되고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화제성이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의 지속성을 불러일으킨다. 입소문을 통해 쇼핑에 관심 없는 사람들마저 맛집 투어를 빌미로 끌어들이고, 기방문 고객들에게도 정기적인 재방문 동기를 끊임없이 부여한다.
이렇듯 신세계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과 이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리테일의 새로운 도약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프라인 리테일의 내리막길에 그대로 노출되어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식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는 자칭 ‘미식 큐레이터’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며 앞으로의 리테일 혁신이 더욱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