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리뷰
하얀 설원이 펼쳐진다. 상처를 안고 사는 한 남자가, 자신과는 또 다른 이유로 삶 속에서 상처를 받은 여자를 말없이 안아준다. 그리곤 말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우린 계속 ‘살아가야’한다고.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등장인물들의 아픔을 지켜보게 하다가, 결국 사람을 통해 이를 치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어코 관객인 우리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린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내면에 새겨진 상처가 ‘낫는다’기보다는, 상처를 ‘극복’하게 된다기보다는, 결국에는 ‘안고 살아가게 된다’고 하고 싶다. 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가끔은 떠오르고, 종종 우리를 아프게 하니 말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호쿠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이에 속앓이를 하며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운전사 미사키는,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상처를 받으며 자란 인물이다. 가호쿠와 미사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가호쿠의 아내 오토와, 미사키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더 아프다.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전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상처를 안겨주었어도 한때는 사랑했으니까. 가호쿠와 미사키가 받은 상처는 다른 모습이지만, 상처를 받고 난 뒤 인물들이 살아가게 되는 그 이후의 삶의 형태는 조금은 비슷한 것 같다. 그런 둘이 각자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심스레 위로를 건넨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게 있을까.
이는 이 영화 속에 삽입된 또 다른 작은 이야기인 <바냐 아저씨>라는 연극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연극 속 배우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대사를 한다. 그래도 결국에는 배우들이 극 중 인물에 몰입하게 되고, 극을 이끌어가게 되지 않던가. 우리는 각기 다른 형태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나와는 또 다른 아픔을 가진 타인에게 이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상처를 한 번 치유할 수 있게 되고,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과정에서 상처를 두 번 치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영화 포스터에 쓰인 글귀처럼,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바냐 아저씨>연극 속의 수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 서서, 수화를 하는 인물을 침묵한 채 바라보며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소중한 감정을 느꼈다.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보는 게 망설여질 때도 있다. 사실 망설였던 영화이다. 10월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놓치고, 11월의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놓쳤지만 정말 다행히도 지인의 추천 덕에 12월에 아트나인이라는 작은 영화관에서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