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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Dec 11. 2021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였으면 좋겠어

-우리의 스물

“5,4,3,2,1... 얘들아 스무 살 된 거 축하해!”


내 나이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그 가슴 떨리고 짜릿한 순간,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였다. 식당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아주 자신 있게 보여주는 대가(?)로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린 설렜다. 각자의 지갑을 챙기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안주가 무한 리필되는 곳을 찾아 자리에 착석했고, 우린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였다. 내 차례였다.


“... 나 안 가져왔나 봐.”

‘.......’

‘저기, 친구 한 명이 주민등록증을 놓고 왔다는데 그냥 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 규정상, 모두 다 확인이 가능해야 해서...’



그렇게 우리는 쫓겨났다.



우린 총 6명이었는데, 그중에 나만 주민등록증을 깜빡하고 안 챙겨왔다.


우리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날 수원에 사는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한 거였는데, 나는 수원에 살지 않아 그 시간에 주민등록증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많이 기대했을텐데 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된 것에 대해 미안했다. 나는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친구들은 정말 고맙게도 나를 보자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에 친구들이 내뱉은 그 말이 결코 진심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결국 우리는 집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고, 편의점에서 술을 샀다. 정말 많이도 샀다. 진로, 참이슬, 칭따오, 써머스비, 매화수, 테라까지.

처음 마신 술은 썼고, 맛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쓴 맛을 참아가며 사 온 모든 술을 하나씩 비워갔다.


누군가가 먼저 울었다. 재수하기 싫다고 울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서러워서 따라 울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는 데에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이 끝났음에 우울한 마음이 들어 더 크게 울었다. 저녁을 먹은 뒤 야자시간이 시작되기 전 하는 산책, 야자시간 중간에 학교를 벗어나 카페에 도착해 먹었던 빙수, 방학 때에도 같은 학원을 다니며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던 시간들, 함께 대회 준비를 하며 대회 준비보다 만나서 먹는 데 더 열심이었던 기억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것은 스무 살이 되는 대신 내가 반납해야 하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누군가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 우린 그렇게 참이슬과 눈물을 섞어 마시며 스무 살을 맞이했다. 밀려오는 슬픔을 참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돈독해졌다.



스무 살이 되던 해의 첫 날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고, 우린 만날 때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를 놀리곤 한다. 그게 뭐가 그렇게 슬펐길래 울었냐고. 우린 그럴 때마다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침묵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와 같은 이유로 종종 울적해질 때가 있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행복했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미래의 나는 지금 우리의 20대를 그리워하고 있겠지.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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