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후회할 일이나 두 번 다시 돌아보기 싫은 사건들이 생기게 된다.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지만 이미 물은 엎어진 상태인 경우다. 대한민국에서 2024년 12월 3일 밤에 일어난 계엄 사태를 역사는 그렇게 평가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후회할 일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폐를 끼치고 삶을 망가지게 할 것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건 법에 몫이라 던져 놓더라도 이미 연루된 사람들의 가족은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야 한다. 한번 잘못된 선택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이다. 마치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듯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것이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삶이 그렇다. 다되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아직이라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언제 어떻게 반전되고 어떤 순간에 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허물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지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고 어렵다고 할 때 노래 하나로 영웅은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 세상이 오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렇게 어처구니없게 하루는 우리 앞에 다가온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서 역사는 흐른다.
아직은 인생을 논할 나이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뚜렷하게 세상에 드러내놓을 업적도 없다. 학벌이 좋아 논문을 발표하거나 책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힘들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행복하다. 아침쌀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도 가야 했다. 공납금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모멸감도 느꼈고 돈 때문에 진저리가 난 적도 있다. 어른의 가난이 어린 자식에게 무슨 죄인가? 그래도 옆에 친구의 도움으로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빌려 가며 학교는 열심히 다녔다. 친구 책을 내 책처럼 빌려보며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늘 고맙다고 생각했고 도움을 나누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청소년적십자 활동은 좋은 생각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게 했다. 가난 때문에 졸업하지 못하는 친구를 위한 시내 모금 활동이야말로 평생을 간직하게 하는 좋은 기억이다. 그렇게 도전하고 실천했던 일들이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고 참이 무엇이지 구분할 줄 알게 한다. 인생은 늘 선택이다.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도 실과 바늘같이 함께 간다. 인생에서 망가지는 이유 중 하나가 책임이 따라간다는 것을 잊고 선택을 쉽게 결정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순된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 중 하나를 교육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명문이라는 학교가 있고 사라고 불리는 직업도 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맞춤학원으로 학교도 보내고 직업도 만들어내는 게 현실이다. 돈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강제로 머리에 단어를 입력시키고 숫자를 뇌에 진열시켜 성적을 만들어내는 기계로 만들어낸다. 사람은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형상만 있다. 관계를 배우지도 배우려고도 배울 필요성도 못 느낀다.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하기에 나머지는 폐기물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만들어지고 기득권세력으로 카르텔 화 되어 간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 어찌 정책을 제대로 만들겠는가? 어려움 없이 만들어진 로봇이 사람들의 감정과 고통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AI가 감정을 다스리는 직업을 넘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라고 본다.
서울대 졸업, 사법 고시 패스, 고위공직자 출신, 부양할 자식도 없으니 욕심도 없으리라. 생각되는 소탈함까지 외형적으로 눈에 보인다. 그런데 큰 머리통 속에 지식만 있고 지혜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 시민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은 로봇의 정교한 가면을 눈치챌 수 없었다. 마치 AI가 학습된 대로 글을 써 내려가듯 확증된 사고는 답이 틀리건 맞건 상관하지 않는다. 로봇은 책임이 선택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선택의 잘못된 판단 자체를 기계가 인지를 한다고 해도 되돌리는 상황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기계가 부러지던지 과열로 화재가 나던지 무엇인가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이 행하는 과오는 불행을 자초한다. 그런데 사람의 가진권력에 다라 파급효과나 문제는 감당하가 어렵다. 특별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의 잘못된 판단은 국민을 사지로 몰아갈 수 있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경제를 파탄 나게 할 수 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도 아니다. 배움이 높다고 인성이 잘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의 됨됨이는 학벌과 지식으로 되는 게 더더욱 아니다.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 살고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그것은 규칙을 기반으로 하고 규정을 보호하며 지키고 존중하므로 존속된다.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아직도 지구상에 많은 국가가 선호하는 것은 법치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며 법은 많은 사람이 피로 지켜온 국헌이다. 개인의 감정으로 법을 파괴하는 행위는 안된다. 법에 해석도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2024년 12월 3일의 판단은 법에 심판을 호되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고통과 아픔에 비하면 너무도 적을 것이다. 국민을 이기려 드는 권력을 시대는 용납한 적이 없다. 아픔만큼 성숙한다고 했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 우선주의가 빗은 오류인 ‘지혜롭지 못한 지식은 재앙을 일으킨다.’ 교훈을 삶에 다시 새기고 배우며 대한민국에 지혜롭지 못한 ‘지식 장이’가 지도자가 되지 않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