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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gi Jul 17. 2024

가끔 진화는 저주가 된다

수컷 바비루사는 긴 송곳니를 가지도록 진화했습니다. 이 송곳니는 힘과 지위를 과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로 인해 짝짓기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결과적으로 긴 송곳니를 갖게 하는 유전자가 후대에 많이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긴 송곳니가 바비루사 자신을 찔러 죽이기도 합니다. 송곳니가 지나치게 자라 두개골을 뚫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화적 이점이 항상 생존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류의 진화는 어땠을까요? 초기 인류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 종의 지능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모두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진화에도 이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지능이 높아지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얻은 것은 단연 안락한 생활입니다. 다른 포식자들의 위협에서 벗어났고, 기술 발전을 통해 생활 수준과 수명이 향상되었습니다.


잃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는 자유를 잃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깊은 산속조차도 누군가의 소유입니다. 초기 인류처럼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할 수도, 수렵 채집을 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자연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초기 인류는 완전한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마치 사자, 코끼리, 얼룩말처럼 단순히 먹고 자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은 자연의 일반적인 구성원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동식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오히려 자연을 남용하고 파괴하는 적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놓고 보았을 때, 높은 지능을 얻게 된 인류는 더 행복해졌을까요? 만약 행복을 도파민 분비량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즐거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그러나 행복이 사유로 인한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능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존재론적 고민,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의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문을 겪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식물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정신적 지옥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급격한 뇌의 발달은 인류에게 문명사회라는 축복을 주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모범시민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교육과 그로 인해 형성된 생각들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94년에 발행된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은 인도 정글에서 늑대 무리와 함께 자란 소년 모글리의 이야기입니다. 모글리는 곰 발루와 흑표범 바기라의 보호 아래 자라며 정글의 법칙을 배우고, 호랑이 시어 칸 같은 적들과 맞서 싸웁니다. 여러 가지 모험을 겪은 후, 모글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결국 인간 마을로 돌아갑니다. 이 스토리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만들어진 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약 30년 전에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1996년, 나이지리아의 팔고레 숲에서 두 살배기 아이 벨로(Bello)가 발견되었습니다. 벨로는 6개월쯤 되었을 때 유목 생활을 하는 풀라니(Fulani)족 부모에 의해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침팬지 무리에 의해 키워졌습니다. 발견 당시 벨로는 네 발로 걷고, 손을 끌며 이동했으며, 침팬지와 유사한 소리를 내고, 밤에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후 벨로는 나이지리아에 있는 보육으로 보내졌습니다. 여기서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결코 인간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벨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얼마 뒤 사망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생긴 질문은 이것입니다. 인류는 벨로를 구한 것일까요? 아니면 정반대일까요? 벨로에게는 자연과 인간 사회 중 어느 곳에서 사는 것이 더 좋았을까요? 인류는 당연히 벨로를 구해냈다고 생각했지만, 벨로를 키운 침팬지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정신적 고통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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