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산책, 그리고 작년 봄

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던 그때

by 생활형 작가

어린이날 연휴가 끝난 평일이었다. 약간은 무기력한 수요일.
그래도 날씨가 좋아 점심시간에 회사근처 서울숲을 천천히 걸었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따뜻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혔다.
이제 정말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걸 실감했다.

회사 근처에서 점심 먹고 여유 있게 산책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자체로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날, 문득 작년 봄이 떠올랐다.

정확히 1년 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였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기약 없는 백수.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며 특진도 하고, 우수사원으로도 뽑히고,
꽤 잘 나간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옮긴 새로운 회사에서는 내가 익숙하게 써왔던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기획 중심의 사람이 개발 중심 조직에 들어가니 내가 쌓아온 경험은 힘을 잃었고, 하루하루가 버거워졌다.


가족을 위해 버텼지만, 몸도 마음도 조금씩 무너져갔다.
가정을 지켜야 할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찾아온 6개월의 시간. 기약 없는 백수의 나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초조함 속에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예전에 즐겁게 했던 일은 뭐였을까. 그 질문을 반복하며, 조심스레 다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끝에서 지금의 회사를 만났다. 작년 11월과 12월 사이, 겨울의 초입이었다.
입사 후에도 모든 게 바로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추운 계절이 계속됐고, 나 역시 조금은 얼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점심시간에 햇살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땀이 살짝 배는 걸 느끼고서야, ‘아, 정말 여름이 오고 있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겨울을 지나 다시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나의 마음에도 조금씩 계절이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삶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안을 지나가는 감정은 해마다 다르다.
작년 봄엔 막막했고, 겨울엔 조용히 견뎠고,
지금은 약간의 땀과 함께, 약간의 여유를 걷고 있다.


그저 오늘처럼, 이런 하루가 조금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무너지던 날도 있었고, 그 무너짐을 지나 여기까지 온 날도 있었다.

지나보면 결국 다 지나간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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