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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때는 인사이드 아웃

by 김소스통



인사이드 아웃 1,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잠에 예민하다. 우울증을 겪기 전에도 잠에 관해서는 예민했다. 잠자리가 바뀌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특히 여행을 가면 잠을 못 잔다.) 빛과 소음에 예민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나 누군가 불을 켜면 금방 잠이 깨고는 했다. 이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전인 것 같다.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불면증이 있었고 수면에 관해서는 나와 비슷했으니까.


-이건 여담이지만 주변에 알람소리에 잘 못 일어날 정도로 잠귀가 어두운 친구의 집에서 잤었는데 우리가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떠들고 화장실을 수차례 들락날락거렸음에도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친구 부모님은 한 번도 깨지 않으셨다. 그래서 수면에 관한 것도 유전이구나! 생각이 들었던 일화이다.-


몸은 누워있는데 심장이 혼자서 러닝을 뛰어 1분에 한 번씩 잠에서 깨는 극심한 불면에 시달렸을 때, 나는 너무 괴로웠다. 원래는 환경만 잘 받쳐주면 안 깨고 잘 잤기 때문에 거의 처음 겪어보는 불면은 나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더 밀어 넣었고 불안이 더 심해지자 불면이 더 심해지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린 것이다. 몸은 잠을 못 자서 피곤한데 뇌는 불안해서 잠에 못 드니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고 심할 때는 잠깐 조는 수준에 불과하는 불면을 두 달 정도 겪으니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아마 그때 느끼는 감정은 고통뿐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불면은 나에게 트라우마 비슷하게 남아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요즘은 잠을 잘자지만 잠을 못 자는 날에는 그때의 기억세포들이 남아있는 것인지 그때로 돌아갈까 봐 무서워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다.


의사 선생님과의 협의 하에 단약을 하고 몇 달은 잠을 아주 잘 잤다. 그 몇 달 사이에 자취를 시작했음에도 숙면에는 문제가 없었다. 혼자 낯선 집에서 자는 게 너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자서 민망할 정도로 1. 새로운 집에서 2. 혼자 자는 것에 금방 적응을 했다. 또, 그 시기에 방황은 그만두고 규칙적인 정직원의 직장생활로 다시 돌아가면서 수면패턴을 더 잘 지키게 되었던 것 같다.


행복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일들이 일어났어서 나의 체력에 비해 정말 자주, 그리고 늦게까지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행복감 덕분인지 피곤하지 않아 자의적으로 잠을 적게 잤었는데 그게 내 불면 트라우마의 트리거를 눌렀던 걸까? 아니면 처음의 그 우울이 다 낫지 않았을 걸까? 다시 불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면이 찾아오니 그때의 불안했던 기억들이 다시 깨어나 불안도 같이 찾아왔다. 또 생각의 회로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흘러갔다. 만약에… 그래서… 하지만… 이런 부사들이 부정적으로 찾아와 나를 극단으로 몰아갔다.


내가 다시 찾아온 불면에 새벽에 여러 차례 깨며 뒤척였을 때 도움이 되었던 생각이 있었다. 바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생각하기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든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컨트롤 본부가 있는데 그 안에는 슬픔, 기쁨, 까칠, 버럭, 소심 이 다섯 가지 감정이 있다. 이 감정들이 핵심 키를 잡을 때마다 우리는 그 감정으로 변하는 거다. 인사이드 아웃 1편에서는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존재한다는 감정의 상호의존성을 말한다. 우리는 무조건 즐거운 감정만 즐기려고 하고 슬픈 감정은 회피하려고 하는데 즐거운 감정들은 슬픈 감정이 있어야 더 극대화되는, 둘은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행복을 느끼는 역치도 낮고 불행을 느끼는 역치도 낮다. 하지만 행복만 느끼고 싶어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회피하고 억누르며 살아왔다. 내가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마냥 행복해야 하고 즐거운 사람이니까. 하지만 정신과 방문을 통해 모든 감정은 양날의 검이라서 내가 날의 검을 어떻게 활용하냐에 달렸구나 하고 깨달았다. 무작정적인 행복은 영감을 주지 못한다. 나는 적당히 우울할 때 글이 제일 잘 써진다. 또한 열등감은 내 성장에 아주 좋은 양분이다. 성취감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하지만 성공을 움켜쥐고 싶은 그 욕심이 나를 혹사시킬 때가 있다. 내 감정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칼을 쥔 나에게 달렸다.


그리고 두 번째 정신과 방문 직전 불안을 동반한 가벼운 불면의 상태에서는 인사이드 아웃 2의 줄거리가 생각이 났다. 운이 좋게도 불면이 스멀스멀 찾아올 때쯤 2가 개봉해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인사이드 아웃 1의 주인공인 소녀 라일리에게 사춘기가 찾아오자 불안, 따분, 부럽, 당황의 감정들이 추가로 찾아온다. 그중 불안이가 키를 잡을 때마다 주인공인 라일리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을 하자 라일리의 핵심감정인 기쁨이는 불안이가 키를 잡지 못하게 말린다. 하지만 결국엔 불안이가 라일리의 핵심감정이 되어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불안에 휩싸여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라일리 또한 엄청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다른 감정들의 도움을 통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라일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기억나무는 뽑혀나가고 대신 모든 기억과 감정을 포용하는 새로운 기억나무가 생성되자 그때 라일리는 자아 확립과 함께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나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불안이가 핵심감정이 된 라일리를 보며 깊은 공감을 했다. 내가 청소년기에는 (아마 지금까지도) 너무 잘하고 싶어서, 생각은 극으로 가게 되고 오히려 거기서 많은 실수를 낳았다. 하지만 자아가 확실히 확립되기 전에 그 어렸던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된, 잘하고 싶었던 그 마음에서 나온 실수들이 나를 아주 많이 성장하게 했다. 그로 인해 자아성찰과 반성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 2에 깊은 공감을 했던 나는, 새벽에 깨서 막연하게 든 불안한 감정에 ‘지금은 불안이가 키를 잡고 있는 거다.’라고 되뇌었다. 지금의 감정은 불안이고 금방 다른 감정이 키를 잡을 것이라고… 그 생각은 나를 점점 편안하게 만들어 잠에 들게 만들어줬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자 오히려 편안해진 것이다.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은 나의 것이고 그것들이 어우러질 때 나는 성장하니까. 아직도 불편한 감정들이 찾아올 때는 인사이드 아웃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 예민해져 있구나, 예민이가 키를 잡았군.‘ ‘근데 왜 예민할까?’라는 질문에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서.‘ 등 나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왜 이 감정이 키를 잡았을까 추측을 해본다.


우리는 나쁜 감정과 좋은 감정을 따로 구분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모든 감정은 양날의 검이다. 내가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며 인정할 때, 그때 우리는 한번 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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