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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Jul 23. 2024

내 유학은 도피였다 1

프롤로그

해외살이 4년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영국을 선택했어요?"


사실 이 물음에 그럴싸한 답변이 뭘지는 아직 고민중이다. 

왜냐하면 내 유학은 도피였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떠밀려 오다 보니 영국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19살, 10년동안의 꿈을 현실의 벽에 부딫혀 내려놓아야 했을 때, 나는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입시의 쓴 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해 할 것이다. 절망감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며, 재빠르게 다음 플랜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을. 입시를 망쳤건 어쨌건 나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야 했다. 그게 재수든, 다른 방법이든 간에.


처음에 나는 재수를 고집했다. 나는 그때에 낙담과 좌절, 그리고 점점 맹목적이 되어가는 목표에 잠식 당해 '한 번 더, 한 번만 더' 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 눈에는 딸이 몸도 정신도 망가져 있는 것이 또렷이 보였나보다. 부모님은 강경하게 유학을 말했고, 원래 준비하던 연극 영화과가 아닌 심리학과로 방향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나는 엄마가 들고 있던 팜플렛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수능 전 학교에서는 여러 유인물을 나눠 주더랬다. 그 중에 하나가 영국 유학 팜플렛이었는데, 당시 입시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는 그 팜플렛을 가만히 바라보다 집으로 들고 왔었다. 


"엄마, 나 정시 하지 말고 그냥 유학 갈까? 어차피 또 떨어질텐데.."


엄마는 이 말이 참 안쓰러웠나보다. 당시에는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혼났지만, 이음면이 다 닳아있던 팜플렛으로 엄마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한 번 더 하면 목표하던 대학에 갈 자신이 정말 있느냐, 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여기서 멈춰줬으면 했다. 그럴만한 명분이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10년의 꿈을 접고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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