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세상은 마치 리모컨으로 조절된 듯 차분해진다. 긴 패딩을 두른 사람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피어오른다. 갑자기 고요해진 거리를 걸을 때면, 사람들은 무언가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듯 하나둘 집으로 바쁘게 사라지고, 나만 홀로 이 차거운거리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겨울의 매력은 침묵 속에 각자의 필살기로 소소한 행복을 감추며 산다. 사람들은 따뜻한 카페 안으로 숨는다. 그곳에서 만큼은 진한 커피 향과 함께 각자의 필살기의 겨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모든 것이 차분해지면서, 마음속 깊은 곳의 가장 진한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차분히 붙잡아둔다. 이따금 떠오르는 추억, 미처 전하지 못한 말, 혹은 이번 겨울이 가지전에 끝내고 싶은 도전들이 서서히 내 마음을 조여 온다.
나는 매해 겨울이 너무 빨리 찾아오는 것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해마다 끝내지 못한 도전들과 일이 쌓여 다음 겨울로 이어지는 짧음을 느낀다.
그래도, 요즈음 나는 겨울이 오면 마음의 숨을 편히 쉬는 것 같다.
16년간 난 이 휴식 같은 겨울을 너무 멀리했다.
마치 세상도 잠시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삶에도 겨울은 필요하다.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멈추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나는 겨울이 오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
눈이 쌓이길 기대해 보며, 새로운 계획들을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쌓아가며.....
나도 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집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