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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진 Jul 12. 2024

작은 손의 위로

23살에 엄마가 되었다.



"너희가 어떻게 낳고, 키우고 하겠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엄청난 일이야."
엄마 아빠의 그 말씀이 와닿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해 만삭인 몸으로 첫째의 돌잔치를 치렀고,
그 해 24살, 난 연년생 자매를 둔 엄마가 되었다.


고독을 좋아하는 내 옆에 아이들이 늘 함께했다.
온종일 제일 가까이 붙어있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며 궁금해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분명 두 아이 모두 건강히 태어나 준 것에 더는 바랄 것 없이 기뻤다.
산통의 순간에도 배 속의 아이가 지금 얼마나 애쓰고 있을지 생각하니 내 진통의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 모습에 나는 자신하였다. 난 누구보다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엄마라고,
잘 먹어 예쁘고, 잘 싸서 기특하고, 무럭무럭 자라서, 사람이라고 눈을 맞추고,
아랫니 두 개로 방굿 방긋 웃어주던 미소와 야무지게 쥔 작은 주먹.
쏟아지는 볼때기에, 얼굴을 간질이는 살랑살랑 배냇머리까지.
모든 게 다 축복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과 함께할수록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육아'라는 것은 단순히 아이의 몸만 키우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한 인격체를 성장시키는 중대한 일에 너무도 용감히 뛰어든 것이다.
행복에 젖어 있던 나는 곧 어마어마한 현실과 맞서야 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상냥한 엄마는 없었다.
그때의 나는, 찰랑찰랑 눈물이 가득 담겨 넘치는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내가 걷는 길마다 흘러넘쳐 주변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날 필요로 하는 존재를 모른척하며 낮인지 밤인지 모를 길을 내 발만 보고 걸었다.
그 존재가 '나를 세상으로 아는' 내 아이들인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더 큰 항아리를 이고 지어야 했다.
매일 밤 잠든 아이들을 보며 난 더 움츠러들었다. 내 부족함이 나를 삼켰다.
반복이었다.
불안의 나날들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작은 사건이 있었다.

그날은 유독 지쳐있었다.
둘째가 바닥에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똥 길을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닦고 있는데
멀리 도망가있던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다가 빠르게 기어 오는 것까지
"아니야. 아니야. 여기는 더러우니까... 아니야. 오지 마. 오지 마!"
며칠 동안 아픈 아이들 사이에 껴서 너덜너덜해진 내가 드디어 한계와 만났다.
아이를 낳고부터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표정인 못난 내 모습도 지우고 싶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볼 여유가 필요했다.
도움 청할 곳 없는 우리의 상황도, 일이 매일 바쁜 남편도 미웠다.
그래서. 그렇게. 그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버거웠다. 몸도 마음도.
오늘은, 이제는, 버틸 수 없었다.

둘째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 이 모습조차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내려놓고 싶었다.
깊은 곳으로 푹 꺼지게 해 주던지, 요술 망토로 절 숨겨주던지, 뭐라도 해주세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부모라는 이런 무거운 자리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첫째가 아주 살금살금 다가와
천천히 천천히 내 볼에 입을 맞추고는
한 손을 내 어깨에 조심스레 올려놓는 것이다.
". 뭐야.."
그 순간 눈물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나갈 거야 엄마, 조금 더 기다려줘.'
주저앉아 멈춰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를 전하러 온 첫째 아이였다.
어깨에 올려진 이 작고 통통한 손에서 뜨끈한 위로가 전해져 왔다.
코끝도 시큰거리고 손목도 시큰거리던 밤
나를 괴롭히던 불안은 사실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내 마음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난 충분히 좋은 엄마였다.
누구보다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나는 쓸데없는 불안에 싸여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겁게 지고 다녔던 내 머리 위에 눈물 항아리의 존재를 나는 그날 비로소 세상 밖으로 쏟아버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엄마가 아닌 그저 나의 존재였다.
미숙한 우리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그때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옆에 있지만 난 지금도 아이들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힘든 여정 뒤에는 반드시 배움이 존재한다는 것.
불안을 느낄 때면 그 시간을 겪었던 그때의 우리를 떠올린다.
몸이 힘든 건 정말 한때였고, 아이들이 자라고 보니,
힘들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이었다는 어른들의 말에 이제 나는 웃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의 나를 이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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