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신 아빠는 자주 이야기를 하셨다. 만남뒤에 오는 또다른 보냄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아마도 큰딸과 작은딸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세대의 다름에도 이렇듯 변하지 않는 유의미한 사랑이란 감정이 있다는걸 생각해 본다. 사랑이 깊기에 그 연습도 더 빨라야 했던 나의 엄마와 아빠의 대화였다라는 사실을 상기해본다.
이러함에도 나는 아빠와 생각이 조금은 다르다. 아빠에게 있어서 나에대한 사랑이란 감정을 표현하는 최고의 기술은 그져 있는대로 나를 사랑해주고 받아주는 것이였다면 나는 내 두 아들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언어로 말을 건넨다.
인생은 이렇듯 서로 약간은 다름이 있기에 더 어울림이 아름답다. 그러나 아빠는 내게 무언의 대화로 많은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인생의 교사와도 같았다.때로 펜은 힘을 이기고 언어보다 더 강력한것은 묵묵한 본보기란 사실을 말이다.
타인과의 다름을 알아가는것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왔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세상에 모든인생이 데이터와 같이 똑같은 분류도 백프로 분석된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의 지속일까.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는것이 그럼에도 그러한 인생에도 나름 이유와 목적이 살아감의 방식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집단문화가 가져다 주는 수직적이기만 했던 과거의 사회역사가 이제는 수평과 수직이 새로이 만나는 문화의 필드가 펼쳐지고 있다.
타인의 나와의 다름이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고 대화를 이어갈수 있는 받아들임이 있다면 그 경청 또한 깊은물과 같지 아니한가 말이다. 물이 깊어야 큰배를 띄울수 있다는 노자의 말이 진실로 적절하지 않은가 말이다.
언어의 다양함 문화의 변화추세 트렌드의 변화 세대의식과 오대양 육대주의 광범위한 다름이 이또한 인생들이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자 만드는 그러한 이유와 호기심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다름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내 생각이 다름을 고집하는 진부한 사고의 틀을 가진자들과의 대화는 커다란 장벽을 넘어서는 산과같은 과정이며 그 대화속의 변화와 도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고집과 아집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는 자기를 돌아봄과 새로운 세대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것이다. 나와의 다른 타인의 이해할수 없는 언어와 행동 그 가치관을 대적하고 충돌하기 보다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와 그에대한 솔루션(solution)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시도가 필요할것이다.
내가 유학했던 북경대(pecking university)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이 교류를 하며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면서 전공공부를 했던것을 기억해 본다.기숙사에서는 영어로 유학생들끼리 대화를 자주 했기에 나의 20대는 참으로 언어적 도전이 많았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중국어로 저녁엔 기숙사에서 영어를 열심히 진땀을 흘려가며 상황을 익혀야 했다. 가장 난감했던 기억이라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질문을 했을때 동양권과 사양권의 문제해결 방식이 너무도 다른 제시를 했던 일이였다. 그때의 나는 조금 충격적인 현실이였고 두가지의 솔루션이 함께 가능한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지극히 많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다르다는 그 의미는 각자가 나는 나대로의 살아있음이라는 무언의 외침이요 살아감의 열심의 몸짓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러한 세대의식의 다양함 국적과 문화가 만들어 내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다양함을 사랑한다. 단지 그런 우리들에게 소통이라는 기술이 있다면 이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것이다. 서로의 충돌과 숨겨진 갈등을 해소할수 있을만한 성숙한 소통의 인격체와의 다름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오히려 그 다름을 통해 더 많은것을 배워갈수가 있을것이라는 생각마져 든다.
연습이 반복될수록 인생은 그 연습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처음은 낯설고 설레이지만 반복되는 연습은 인생을 더욱 익어가게 한다. 이제 타인과의 그 다름을 받아들이기를 한번 연습을 해보자.타인의 입장과 처지를 한번쯤은 이해해보려 시도하고 건강한 소통방식를 적합하게 찾아낼수만 있다면 그러한 시도와 대화가 얼마나 많은것을 바꿔낼수 있는 가치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를 질문해본다.
나와의 다름을 강한말로 억제하거나 얄팍한 처세술로 임시방편을 해보거나 하는 이러한 소통이 아닌 진정 그 누군가의 약점을 발견할때 그것을 공격하는 언어무기가 아닌 한두번쯤은 모르는체 살포시 덮어주며 한번만 더 나를 돌아보고 양보의 길을 너와 나에게 제시할수만 있다면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피하고싶은 다름을 인정하고 벋아들이는 연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를것이다.
그럼으로 이제 대화를 해보자. 너의 그리고 나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서로에게 열어줄 향기나는 진실의 힘을 믿어보자. 너는 나와 다르지만 그 자체가 우리가 될수 없는것은 아님을 한번쯤 바쁘고도 바쁜 이 하루에 생각해보는건 어떠한가. 나와의 다름때문에 오래전에 잊혀졌던 그 누군가의 연락처를 한번 찾아보면 어떠한가.내가 먼저 메세지를 남겨본다면 나는 그에게 지는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자신을 그리고 함께 이겨내는 자가 됨이 맞지는 않을까.내가 먼저 나와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것이 우리라는 이름의 같이 이겨냄의 시작이 아닐까를 질문해 보아도 누군가 뭐라 하지는 않겠지?
고마워. 네가 나와 조금은 다름에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