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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Nov 02. 2024

『그건 너!』

Part 7. 0-0-73

  이장희의 초창기 노래는 기본적으로 ‘밤에 쓴 사적인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는 늘 (구체적인 대상을 지목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개인적인 어투로 담아 노래에 피력했다. 누군가는 ‘너’가 되기도 하고, ‘그 애’가 되기도 하고, ‘나그네’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를 일종의 ‘애칭’처럼 불렀다.) 그래서 그이의 노래를 듣다 보면 한 사람에게 서투른 글씨로 밤새 정성 들여 쓴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든다. 친구를 통해서긴 하지만, 결국 ‘님’에게 말을 전하는 「친구여」에서도 이 '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적인 노래를 숨김없이 들려주는 정직함과 낭만, 용기와 사려 깊음이 초창기 이장희 노래에 아름답게 깃들었다.


  강근식과 조원익, 배수연을 데리고 만든 단출한 세션 또한 이장희의 이런 사적인 어투를 고스란히 살려준다.「그건 너」에서 ‘그건 너 때문이야’를 외치는 이장희의 투박한 말을 강근식의 기타 솔로와 조원익의 베이스 연주가 부드럽게 받아준다. 「친구여」, 「누구일까」, 「애인」과 같은 곡에서 상대적으로 승한 조원익의 베이스 연주는 이장희의 보컬이 지닌 필링의 정중앙을 관통한다. 때로는 애드리브로 때로는 능글맞은 주법으로 단조로울 수 있는 곡에 산뜻한 뉘앙스를 불어넣는 강근식의 기타 연주는 「당신은 누군가요」의 후반부에 등정하는 퍼즈 톤의 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연주를 전부 클린 톤 기타로 일관한다. 강근식의 이러한 일관된 톤과 다변화하는 주법은 (곡의 필링을 살리는 배수연의 드럼 연주와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조원익의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이장희 노래의 낭만적인 감수성을 제대로 관통한다. 전작인 두 앨범에서 네 곡을 가져왔지만, 이 앨범의 세션은 이장희의 목소리를 살리기 위해 되려 많은 파트를 비워낸 듯이 들린다. 「촛불을 켜세요」를 제외하고 신디사이저를 뺀 이 앨범의 편곡은 역설적으로 곡이 지닌 리듬과 뉘앙스, 이장희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살아났다. 


  이장희는 적어도 자신의 노래에 적합한 보컬을 지녔다. ‘미쳤’다며 ‘껄껄 웃’는 가사에 너를 향한 마음이라는 맥락을 덧씌울 수 있는 보컬은 오직 그이의 텁텁한 보컬뿐이다. 블루스의 필링으로 이어지다가 비와 더불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메이저 코드의 훅으로 치닫는 「비의 나그네」는 그의 미묘한 보컬이 있었기에, 가지런히 한데 모일 수 있었다. 「그애와 나랑은」의 낯간지러운 낭만과 「친구여」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한데 어우르는 그이의 보컬은 음계 상의 노래를 정확하게 부르지 않았기에 얻을 수 있는 독특한 향취를 발휘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필요한 만큼만 정직하게 노래했다. 낭만적이지만 결코 허세에 취하지 않는 그이의 보컬은 이 앨범에 이르러 독자적인 목소리로 거듭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장희 노래의 이상한 매력은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겠다는 크나큰 결심이 담겨있었지만, 당국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국은 전신전령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부른 1인칭의 노래에 ‘불온’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모든 좋은 음악은 사라지지 않기에, 이 앨범 또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만개한 사소함의 힘을 이 앨범의 음악은 꽤 이른 시기에 포착했다는 느낌까지 든다. 지금 시대에 활약하는 싱어송라이터가 개인적인 의미를 (때로는 암호도 보태서) 담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모습을 이장희는 이미 1970년대에 행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의 노래는 각자의 방마다 밝힌 불빛에 앞서, 먼저 조용히 켜진 작은 촛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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