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8-36-82
이 앨범의 초반은 「시대유감」과 「Good bye」이 연주곡으로 실렸다. 전자의 곡이 왜 보컬 파트가 삭제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서태지는 숨기지 않았다. 「Good bye」는 ‘은퇴’ 이후 나온 베스트 앨범에 비로소 보컬 파트까지 함께 담긴 버전이 실렸다. 이 앨범 초반의 후반 파트는 그래서 조악한 음질의 곡인 「Taiji boys」와 김종서와 협업한 「Free Style」가 노래로 실려있을 뿐이다. 이 두 곡은 정말이지 절묘한 비율로 이들의 괴로움과 의지를 동시에 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직접적인 어프로치가 돋보이는) 「Good bye」가 여기에 들어갔다면, 귀가 밝은 팬은 즉각 이 의미를 받아들였을 테다.
(리마스터링한) 재발매 버전을 통해 비로소 (마이클 랜도의 훌륭한 기타 연주가 일품인) 「시대유감」과,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가 인상적인) 「Good bye」가 제 모습을 찾았지만, 나는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이 앨범의 가장 훌륭한 작품인)「필승」, 「이너비리스너비」가 어떻게 이 앨범의 초반에 (그것도 제 모습을 유지한 채로) 실릴 수 있었는지가 여전히 궁금하다. 이 곡들 또한 보컬 파트가 삭제된 두 곡에 못지않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짧은 시간에 LA와 서울의 여러 스튜디오를 종횡무진 오갔던 이 앨범의 살인적인 녹음 스케줄까지 생각해보면, 이 앨범은 일단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용할 지경이다.
소위 ‘뽕끼’가 다분한 이 앨범의 「Yo! Taiji」나 (이상한 슬라이딩 기타 연주와 노래로 이뤄진) 「이너비리스너비」, 「Free style」에 등장하는 이들의 ‘장난기’는 여전하지만, (서태지의 기타와 전작부터 참여한 팀 피어스의 기타가 인상적인 트윈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슬픈 아픔」과 「필승」의 얼터너티브 록,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Come Back Home」의 같은 힙합이 선명하게 이어지는 이 앨범의 앞부분은 이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개성 넘치는 곡으로 가득 채워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Come Back Home」의 귀환에는 분명한 체념이 깃들었고, 「슬픈 아픔」의 후주는 불안한 뉘앙스로 가득하지만, 되려 분노와 조소까지도 입체적인 접근으로 충분히 풀어낸 이들의 음악적 역량이 돋보인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양현석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힙합을 추구한) 「Come Back Home」의 생생한 디테일이나 시각장애인의 소년을 표현한 「슬픈 아픔」의 제대로 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는 팬에 대한 이들의 사랑이 더욱 깊은 곳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오로지 팬을 믿으며 같이 걸어간 시간의 적지 않은 무게가 이 앨범의 복잡다단한 성격에 적합한 무게를 부여했다. (「Good bye」의 연주곡 버전 수록을 결정한 이들의 선택 또한 이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존중에서 비롯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실 이 앨범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은 사람은, 이들에게 따듯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소통해 마지않았던 이들의 팬이었다. (전작부터 꾸준히 강조한) 팬을 지켜주려는 이 앨범의 작은 소망은 정말이지 큰 사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이 앨범의 소위 완전판 버전은 기실 팬과 이들이 함께 만든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뮤지션과 팬 사이에 있었던, 가장 혁신적이며 흥미로운 소통의 힘이 이 앨범에 깃들어있다. 이 앨범은 그 흥미로운 힘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벌인 ‘마지막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