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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Jul 19. 2024

물망초(Non ti scordar di me)

7월 19일

  외할머니는 내 스무 번째 생일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일찌감치 잡았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게,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례식장 입구를 버티고 있는 육중한 철제문을 열면 오른쪽 통로에 장례식장과 영안실이 있었고, 왼쪽 통로에는 버스하차장이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제일 안쪽에 있는 식장까지 걸어가서야 신발을 벗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미리 교회에서 조화가 와있었다. 삼촌의 옷자락을 잡고 오열하던 큰 모도 이날만큼은 말이 없었다.      


  병원에서 보낸 직원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 문을 열고 큰 모에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했다. 직원은 가지고 온 바인더를 펼치며 냉장고의 음료수는 얼마며, 식당에서 주문하는 가격은 얼마인적힌 종이 위에 볼펜으로 일일이 동그라미를 쳤다.      


  장남이자, 상주인 삼촌은 1층에서 퇴원비를 치른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냉장고 문에 맺힌 김을 검지로 훑었다. 손가락이 축축했다.      


  전날 과제를 끝내서 몹시 피곤했던 나는 군용 모포 위에 앉아 잠을 잤다. 오래 쭈그려 앉았더니 벨트가 꽉 끼었다. 아랫배가 슬슬 아팠지만 참았다. 화장실은 입구 근처에 있었다. 거기로 가려면 영안실 문을 먼저 지나쳐야만 했다.         


  큰 이모는 흰 소복차림으로 전기밥솥을 열었다. 스테인리스로 된 전기밥솥은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곱절은 컸다. 하얀 김이 초록빛을 약간 머금은 형광등 불빛에 이지러졌다.  


  문상객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곳에서 일어서기만 하면 영정 사진 곁에 놓인 국화꽃을 볼 수 있었다. 절에서 보낸 화환과 교회에서 보낸 화환이 각각 반대편에 놓였다. 목탁 소리도 찬송가 소리도 들렸다.

   

  둘째 날, 집에서 혼자 눈 좀 붙이고 온 나는 테이블 구석에서 식사했다. 쥐가 난 무릎은 따끔거렸으나 따듯했다. 방석 쌓인 곳 바로 옆벽에 온도조절기가 있었다. 발광 다이오드 불빛이 꺼질 듯 꺼질 듯 켜졌다.  

    

  문상객은 대체로 저녁 무렵에 많이 왔다. 외할머니의 고향 친구들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왔다. 그들은 지팡이를 짚거나, 걸음이 느리거나, 잘 듣지 못했다. 삼촌은 그들과 쉰 목소리로 대화했다. 가끔 퀭한 얼굴을 한 큰 모가 삼촌을 대신해 문상객을 맞았다.


  나는 머리 고기에 새우젓 소스를 찍어 먹기도 하고,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기도 하면서 문상객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인에 대해 조곤조곤 말했다. 군용 모포 위에서 화투패를 돌린 조객도 있었다. 정장 재킷을 벗은 그의 얼굴이  불콰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조객 일행도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부재가 눈물을 앗아간 모양이었다.      


  삼촌은 밥 먹을 때나 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정 곁에 있었다. 나는 이따금 조문객들이 삼촌에게 절하는 틈에 같이 들어가 그들의 절을 받았다. 허벅지 굵은 내게 무릎을 꿇는 일은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외할머니와 오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일수록 삼촌과 마주 앉은 시간이 길었다. 그들은 말이 없거나, 아니면 말이 지나치게 많았다. 삼촌은 소처럼 가만히 앉아서 모든 말을 들었다. 모는 조문객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잡아주었다.


  둘째 딸인 어머니는 주로 주방에 계셨다. 어머니는 조객에게 내줄 머리 고기를 미리 종이 접시 몇 개에 얹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니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예외인 듯,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말없이 맥주 한 캔을 비우며 접시를 닦으셨다.


  나는 사촌 두어 명과 수다를 떨었다. 어느 누구도 외할머니를, 외할머니의 죽음을 말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말하지 않았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서로 간에 당연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여겼다.    


  어린 사촌동생이 유행이 한참 지난 팽이 장난감을 들고 와 테이블 옆에서 놀았다. 팽이는 제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어머니는 나를 불렀다. 사촌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얼른 그와 그의 팽이를 데리고 병원 앞 주차장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문 밖을 나가는 나에게 천 원짜리 지폐 석 장을 쥐어주며 가서 맛있는 것 좀 사 먹고 오라고 일렀다.


  주차장 옆에는 콘크리트로 대충 덮은 공터가 하나 있었다. 바닥이 비에 젖었는지라 팽이는 자꾸 미끄러졌다. 사촌동생과 나는 팽이가 돌아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는 웃었다.


  죽음 옆에서 삶이 참람(僭濫)하고 찬란하게 꽃 피웠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사는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사람은 사람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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