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대개의 경우, 글을 정말 끝내주게 잘 쓰는 작가는 헌사, 서시, 서문, 서설, 프롤로그, 후기, 에필로그'도' 잘 쓰는 작가다. 물론 본편이 좋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잘 쓴 후기나 서문을 발견하면 더 반가운 것이다. 잘 쓴 책에 붙은 맛있는 쿠키랄까. (서문이나 후기만 잘 쓰는 책도 물론 있지만, 누가 맛집을 숭늉과 자판기 커피 마시려고 들락날락하겠나.)
좀 길어도 한 번 예를 들어볼까.『어린 왕자』의 헌사("아이였던 시절의 레옹 베르트"라고 고쳐 쓰는 생텍쥐페리의 재치!)도 좋고, 뉴턴이 중요한 부분도 짚어주며, 간결한 방식으로 3권을 고쳐 쓴 이유도 친절하게 밝힌『프린키피아』서문도 좋다. (좋은 과학책의 서문을 볼 때마다 나는 그의 어조를 떠올린다.)
나보코프가『롤리타』를 위해 쓴 후기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위해 쓴 후기는 (해당 책뿐만 아니라) 책의 한계와 확장을 다룬 완벽한 소명서다. 리처드 F. 버턴의『아라비안 나이트』번역 서문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외교관 특유의 어조를 약간만 견딘다면) 직역과 의역의 차이를 논한 좋은 글이다.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그 다운 '경고문'과 '일러두기'를 남겼다. 미하일 엔데의 『모모』 후기는 미하엘 엔데가 숨겨 둔 또 다른 동화 한 편이다. 『돈키호테』1권의 서문은 창작과 모방에 대한 (산초와 돈키호테의 대화 이전에 나온) 진지한 대화편이다. (『돈키호테』2권의 서문은 이에 대한 훌륭한 패러디다.『돈키호테』속편이라는 짝퉁(?)이 훌륭한 패러디를 아이러니의 걸작으로 올려놓는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서문(혹은 산문시)은 여전히 작동 가능한 폭탄이며,『걸리버 여행기』에서 '선장 걸리버가 보내는 편지'는 웃는 얼굴로 (조지 1세의 충실한 신민이자 출판업자인 ‘조카 심프슨’을 내세우며) 인간의 안일한 위선을 찢는 면도날이다.
보르헤스는『픽션들』의 서문 후반부에서 특유의 간결한 필치로 자신의 서문을 기어이 걸작으로 만들었다.『차이와 반복』의 서문은 질 들뢰즈의 책 두어 개를 집어삼키고도 남는다. 보카치오가 지은 『데카메론』의 서문은 흑사병을 코로나로 바꾸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월트 휘트먼의『풀잎』 초판본의 서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시인과 민주주의’ 강의록이며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1판 서문은 지금도 강력한 효력을 자랑하는 재판 방청권이다. 유진 오닐이 쓴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유진 오닐이 아내에게 쓴 헌사는 피 섞인 눈물을 잉크로 쓴 사랑 편지다. 다윈의 『종의 기원』서문은 학자의 양심과 확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잘 보여준다.
쓰고 나니 더 생각난다. 「태사공자서」는 2천여 년의 세월에도 끊임없이 울리는 인간 선언문이다. 그 글은 사마천을 즉각 열전의 한 인물로 승격시킨다. 『열하일기』는 「호질, 「허생전」, 「야출고북구기」를 비롯한 명문의 후기와 각종 잡록의 서문과『열하일기』라는 본문이 한 몸을 이루며 구성을 달리하는 괴물 텍스트다.
『임꺽정』의 서문은 『임꺽정』이라는 작품의 입담을 훌륭하게 각인시킨다. 『광장』의 수많은 서문들은 이 책이 거친 모진 풍파를 고스란히 담았다는 듯이 각자의 말이 파도처럼 뒤챈다.『토지』의 서문들은 회한과 운명에 휘둘리는 인간을 솔직하고 고스란히 빚은 수작이다.
『남해 금산』 뒷 표지에 실린 글은 한국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연애편지 중 하나다.『님의 침묵』의 '군말'과 '독자에게'가 주는 호젓함도 좋다. 윤동주 스스로가 제목을 붙이지 않은 시에 '서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작품의 힘을 진즉부터 알아챈 독자들이다.
『훈민정음』에서 세종이 직접 쓴 서문은 그 자체로 장황한 수사가 넘치는 옛날 글 사이에서 보기 드물게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다. 박은식이『한국 통사』에 쓴 서문만으로도 나는 이 모진 세상을 정신 차리고 살 수 있지만, 때로는 『기러기』의 서문에 담긴 황순원의 연민 섞인 감개무량함이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서문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박완서의 겸손이 그리워진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서문은 도리스 레싱의『황금 노트북』의 서문이다. 이 서문은 서문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논평이다. 이 글은『황금 노트북』에 둘러싼 오해를 말끔히 씻을 뿐만 아니라, 문학을 소모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천민자본주의적 태도도 적확하게 비판하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에 관한 작가적 입장을 훌륭히 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