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당신은 적합하지 못 한 장소에 그것도 부적절한 시간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질문이 질책인지 아니면 단순한 의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억양은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억양 탓에 어떤 감정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당신과 맞지 않습니다. 당신도 그건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이 끝나자, 잠시 고요가 이어졌다. 그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생각에 잠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요. 한때 당신이 이곳에 속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이 떠나던 그날도 저는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믿기 힘들었지요. 당신이 이곳을 떠나다니. 어떤 이는 잠깐의 일탈로 여기며 곧 돌아올 거라 믿었고, 또 다른 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당신이 이곳을 완전히 잊지는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세대의 오래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지금의 이곳에는 당신의 흔적을 기억하는 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신이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곳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 역시 당신이 왜, 무슨 이유로 다시 나타난 것인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신이 떠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며칠 동안은 그저 이 주변에 어딘가에서 햇살을 밟으면 산책을 하거나 집안에서 새로운 책에 몰두하고 있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오래지 않아서입니다. 당신이 떠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과연 당신은, 자신이 더 이상 여기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요.
단순한 부재로 인한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 빈자리는 이곳의 존재 자체를 흔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늦게야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떠난 후 우리는 의식적으로 당신을 잊기로 결정했습니다. 잊음으로 인해 상실에 대한 기억을 지워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없는 이곳에는 빛이 있었도 더 이상 그림자가 없는, 아니 그림자를 위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그림자도 없는 곳, 그런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곳은 형태와 연쇄를 잃은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잊기로 결정한다는 것도 우리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 수 있을까요?
이곳을 떠난 당신이 이곳을 잊은 순간, 우리의 기억에서 당신이 빠르게 지워지고 말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습니다.
그렇다고 유령의 도시처럼 텅 비어 버렸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림자가 없었도, 그림자 없이도 살아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많으니까요
그림자가 없는 이곳. 그리고 당신이 떠나간 그곳은, 보이는 것들에 차이가 있긴 해도 이곳도 그리고 그곳도 본질적으로는 그렇게 다른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당신은 조금 이해하지 않았습니까?
신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얼마간은 당연하게도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로 인한 혼란으로 이곳은 곧 붕괴되어 사라질 것 만 같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당신이 결국에는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이 이곳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희망이 사라진 후에도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이곳은 처음의 혼란과 붕괴의 위협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지금은 당신이라는 존재조차도 기억 속에 잊힌 후, 잊혀졌다는 기억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당시의 출현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당신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처음에 당신이 다시 이곳으로 왔을 때 오랜만에 보는 이방인의 출현으로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당신의 존재는 잊혀졌고, 잊혀졌다는 사실 조자 잊힌 지 오래였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드물게 당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자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고 있을수록 마음 한 켠에 불안하고 불편 한 마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동요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의심스러워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지금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됩니다.
곳의 시간은 당신의 그곳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시간은 이곳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기 위해서였지 사실 이곳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것이 궁금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간이 의미 없다면서 부적절한 시간에 라는 말을 굳이 왜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당신의 관점에서 설명하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당신의 부적절한 시간 속에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묻는 겁니다.
우리의 시간, 그러니까 당신의 관점에서 보는 시간 속에 우리의 시간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100일 뒤의 오늘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금입니다.
알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이 여기에 있을 뿐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지금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됩니다.
당신이 말하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고 해서 시간의 흐름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언제가 당신이 말한 것처럼 시간은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제의 지금과 지금의 지금은 같은 시간 속에 지금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체로 거기 그렇게 두면 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한다는 것과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조차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당신이 이해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시간에 당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질문에는 다분히 공격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듯 나 역시 그가 말하는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야 의식에서 깨어난 듯 그의 말을 듣고 있었을 뿐 그가 말하는 이곳이 장소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한 곳인지.
그리고 이곳을 하나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없었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그의 모습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만이 장소라고 불릴 수 있을지 모를 이곳에서 어디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을 뿐.
눈을 감고 싶었지만 내게 눈꺼풀이 있는지도 아니 눈이라는 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인지할 수 없었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요 오랜만에 보는 이방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방인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오랜만에라는 시간적인 개념이 없는 우리였기에 지금 이곳에 이방인 있다는 것이 몹시 생소하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그저 감각으로서, 오랜 기억으로 짐작했을 뿐 이것이 그들이 처음 보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은 이방인 따위가 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당신의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천년쯤 흘러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나가도 이곳에 이방인이란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곳은 당신이라는 존재가 아니면 올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잘 알지 않습니까?
이곳은 바로 당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유일한 장소라는 것을 당신만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 사실을 잊어버렸고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데 왜 지금, 이곳에 그곳이 아닌 여기 이곳에 당신이 다시 나타난 것인지 당신은 대답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이곳의 운명이 지금,
결정될 오늘이 지금,
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