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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Dec 08. 2024

기억에 대한 오해/오랜 기억속 그 지점 그 시간

그 시간, 그 장소에 당신도 거기 있지 않았던가요?




비가 내리던 밤이었습니다

학교는 텅 비어 있었고, 작은 난로 하나만이 겨우겨우 싸늘한 한기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기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내 불꽃은 숨을 거둘 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어쩐지 지금의 나를 닮아 있었습니다. 

힘겹게 마지막 불씨를 태우는 그 불꽃의 애처로운 몸부림이 나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남은 동전들을 끌어모았습니다. 

50원짜리 하나와 10원짜리 여섯 개. 

겨우 커피 한 잔 값은 될 합니다. 


자판기 앞에 서서 천천히 동전을 하나씩 넣고 커피 버튼을 눌렀습니다. 

텅 빈 복도를 울리는 기계의 작동음 뒤로 뜨거운 커피가 종이컵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둠처럼 짙은 커피가 종이컵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 어둠의 끝자락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두 눈은 비처럼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거친 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라나 있었습니다. 

그 얼굴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내 그가 나의 목구멍속으로 사라집니다. 

입술을 어루만지고 목젖을 달래며 욕망과도 같은 뜨거움으로 가슴을 뜨겁게 채워갑니다.


그 사이, 난로는 이미 꺼져버렸을지 모릅니다.

어둠은 점점 짙어졌고, 차가운 냉기가 내 주위를 맴돌며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이봐, 나야."

그 차가운 속삭임은 점차 밀도를 더하며 나를 감싸안았습니다. 

어둠과 냉기는 마치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 느리지만 확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아침은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침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세상과는 다른, 어딘가의 공간에 갇힌 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나는 그곳에 유배된 듯한 기분에 잠식되었습니다

.

머리까지 담요를 끌어올렸봅니다. 

낡은 담요에서는 동굴 같은 퀴퀴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 냄새는 어쩌면 죽음과 닮아 있었습니다.


오늘은 몇 일일까요? 지금은 몇 시일까요? 

머리가 무겁고 아파왔습니다. 

죽음 같은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기 전에 당신을 만나고 싶은데, 라는 막연한 기대감 마저 어둠이 삼켜버렸습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당신도 거기 있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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