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남자들에게는 요가라는 운동의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나 역시 요가를 배워보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온전히 나 혼자였다면 수업에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같은 일을 하는 동료 두 명이 이미 그 클래스에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첫 수업에 참석했을 때가 기억이 생생하다.
수업 시작 전 5분이나 10분 전쯤에 교실에 들어갔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요가 매트를 펼쳐놓고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서 자리를 해야 되는지 매트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님 개인 매트를 가져왔었야 하는지 무척 곤혼스러웠었다.
물론 낯선 사람들 틈에 있다는 것과 당연히 그들이 나에게 신경도 쓰진 않았을 텐데도 시선이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들 체형이 드러나는 민망한 옷을 입고 있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무척 난감했었다.
강사와 가장 먼 곳에 숨 듯이 뒤자리에 가서 앉았던 것도 쑥스럽고 제대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배우러 갔던 건데 강사님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앉아서 수업을 따라간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있은 후 앞자리로 자리를 하고부터는 오히려 민망한 시선에 대한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다. 맨 앞자리라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거울과 강사님 뿐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뒷자리에 있었더라면 키크고 시커먼 남자가 뒤에 서 있는 것만으로 오히려 여성 회원들이 불편했을 수 있었겠다는 깨달음도 나중에 일이었다.
그렇게 맨 앞줄에 앉음으로써 시선 처리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 되었고 무엇보다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을 감고 지시어에만 집중하게 되는 날들이라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바라본다 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몸과 나의 자세와 내 마음속의 잔잔한 고통과 숨 가쁜 호소를 듣다 보면 많은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다는 느낌도 사라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되는 시간을 느낄 수가 있다.
어느 날에는 더딘 한 시간이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벌써라고 느끼는 한 시간도 지나가곤 한다.
그리고 몸이 드러나는 복장이 민망한 것도 내 몸의 쓰임에 대한 이해로 다가오면서 복장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져 버렸다.
편안하고 자세를 취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복장이면 그저 좋은 운동복일 뿐이었다.
요가를 하는 수련 기간이 늘어나면서 몸에는 큰 변화가 더디게 왔지만 스며들듯 마음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누군가가 남자가 요가하기에 좀 그렇지 않냐?라고 묻는 다면
남자라서 요가는 꼭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요가를 시작하기에 망설이게 되는 민망함은 한 번이라도 그 수업에 참가해 본다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큰 근육과 거친 근육의 쓰임에 익숙한 남자들에게는 세밀한 속 근육과 코어힘 그리고 유연성은 놓치기 쉽다.
튼튼하고 오래가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면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는 비유적이면서도 상식적이라 너무도 당연해서 놓치기 쉽고 그래서 무시하기도 하는 그 점이 바로 정확한 정답에 가깝다.
그러나 남자들은 대게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고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쌓일수록 몸에 필요한 것은 당연한 그 기초가 중요한 것이다.
기초가 되는 코어와 속 근육들을 단련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기초가 아니라는 것은 수업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단련들 속에서 우리 몸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생기고 나의 몸에 쓰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되고 몸의 쓰임이 내 인생에 어떠한 가치를 만드는 것인지를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몸의 변화에서 시작되어 마음의 변화와 삶에 대한 철학적 변화도 겪게 된다 말하면 지난치 과장일까?
그러나 남자들이여 가끔 내 몸에도 좋은 일을 하자.
내 몸이 잊고 있었던 자유를 선물해 보자.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자.
남자에게는 요가 만한 운동이 없다.
그러니 오늘도 남자 운동 요가!
오늘부터 1일 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