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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Dec 19. 2024

남자 운동 요가 12


초등학교 시절 6학년 체력 검증시험?이라고 해야 되나 정확히 뭐라고 명칭 되는 것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체력과 운동능력을 측정하는 그런 시험이었을 거로 기억이 됩니다.

교실 한편에는 매트리스도 깔려 있었고 뜀틀도 있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구르기를 끝내면 뜀틀을 넘으러 가고, 뜀틀을 넘고 나면 윗몸일으키를 하고,

착착착 차례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것처럼 진행 되었습니다.


유연성을 위한 테스트도 진행이 되었는데 전굴자세에서 손 끝이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 지와

다리를 얼마나 넓게 벌릴 수 있는지 등을 측정했었습니다.

다른 측정 결과는 평균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연성 측정에서 만큼은 평균 보다 한 참 밑을 기록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측정을 도와주시던 선생님이 


"어린애가 왜 이렇게 유연성이 없니?" 라며 어이없어 웃으시던 모습과 그 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었는지 한동안 전굴자세를 연습하느라 허벅지 뒤 햄스트링이 괴로웠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결국 다 잊고 말았고, 그날 이후로 나의 유연성은 고착화되고 말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연성이라는 것도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라고 그 쯤에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을 멀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더 이상 유연성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유연성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습니다.


남자 운동 요가의 글을 시작할 때 말했던 것처럼 수영을 하던 무렵 수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버터플라이를 배울 때였습니다.


접영은 온몸을 물결처럼 부드럽게 웨이브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적인 기술이라 웨이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수영의 꽃이라 불릴만 한 아름다움도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날도 열심히, 나름 정말 열심히도, 웨이브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나의 몸짓은 물 밖에 건져진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거리기만 했습니다.


보다 못한 강사가 나의 허리춤을 잡아서 웨이브를 도와주려고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그렇게 허리춤에 힘을 살짝 실어 도움을 받는 것 만으로 파도를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서 물살을 넘실 거리는 물결처럼 앞으로 나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허리춤을 잡고 도움을 주려던 강사는 온 힘을 실어 억지로 웨이브를 만들어 주려고 해도 되지 않자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습니다.


"회원님 몸이 왜 그래요? 완전 통나문데요. 이렇게 딱딱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아주 옛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던 모습이 겹쳐지며 나 역시 어이없어 웃고 말았습니다.


내 몸이 딱딱해서 인생의 유연성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뒤따라 와서 하루종일 나의 인생과 유연성의 관계, 그러니 삶에 융통성이 없지 하는 상관관계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인생도 파도를 넘실 넘어갈 수 있는 유연성이 생기는 거야 라

는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건물에서 요가하는 수업을 발견하게 되었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가를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횟수로는 대략 10년이 넘는 기간을 요가를 수행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 글을 쓰며 아, 10년이 넘는 시간을 했구나,라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유연성이 필요했고 그렇게 내 몸이 유연성을 가지게 되면 인생의 변화도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로 시작되었던 요가 수련 기간 동안 내 몸은 기대와는 달리 타고난 몸의 완고한 고집 때문이지 전혀 유연성이 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삶의 융통성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요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요가는 단순히 몸의 이완을 돕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나가 향상되지 않아 고민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니 뒤처지는 듯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요가는 그러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수련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남들과 같지 않음, 내 몸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인정하고 내 몸에 집중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요가를 수련하는 충분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유연성을 얻진 못 했지만, 어쩌면 삶에 대한 융통성과 살아가는 자세에는 상당한 변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정착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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