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모든 건 끝이군요."
그 말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그건 이 대화의 마지막이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 했다.
햇살이 정오를 훌쩍 지나 뉘엿한 각도로 커피숍 깊숙하게 스며들어 왔다. 5월 햇살은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덥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따뜻 하다고만 하기엔 따끔한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5월 특유의 맑고 투명한 빛은, 싱그럽고 활기찬 생명감을 품고 있다. 5월. 봄은 이미 깊숙하게 자리했고, 그 깊이를 지나 이제 곧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런 계절이다.
따뜻하고 포근함이 조금 더 짙어져서 버거운 무게로 느껴질 정도의 온도. 가볍게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는 손 차양을 하며 햇살을 피하기도 한다. 지금쯤 자동차 내부는 이제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만큼 더워졌을 것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러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이미 여기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노트북을 덮고,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런 말도 없는 그의 일체의 동작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인 듯 지켜보고 있다. 그는 일어난 체로 잠시 머뭇 거리다 나를 바라본다.
"우리 중 그 한 사람이라 당신이 아니냐고, 저에게 말한 것을 저로 서는 이해 할 수 없군요"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어본다.
"그 지점 그곳에서 당신이 연락하려고 했다는 것이 나였다는 것은 은유로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곳이라는 것도 지금까지 들어 본 바로는, 은유로서 거기 있는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물론 그곳에서의 연락도 받은 적이 없겠지요."
"암시적으로 든 은유적으로든 혹은 꿈의 도구를 빌려서든."
꿈. 꿈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주춤했다.
그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나의 기색을 살핀다.
"그래요 꿈을 통해서도… 어떤 연락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잠시 주춤 했던 그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다음에 봅시다 라는 흔한 인사말 도 없이 떠나간다. 5월의 햇살이 뉘엿 해진 거리로 나선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도 떠난다. 나는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봄이 지나가는 지금 이곳에서 지나간 시간 속의 어느 지점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떠나갈 것을 직감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 속의 어느 지점이라는 것도 나 스스로 만든 허상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이미 완결된 종식으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부존재의 장소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해서 결별을 완성할 결심이 선 것은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다. 새롭게 다가올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생이라는 것. 그것은 시간의 축적을 통한 하나의 통관 절차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지 않을 그 시간 속의 그(녀)를 나는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꿈이라는 도구를 통해 꿈속 의지로 나에게 걸어와서 나의 손을 잡아주던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지금 결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난 결코 그들 중 그(녀)와 완결된 종말을 맞지 못할 것이라는 운명을 느끼고 있다. 시계가 없어, 시침 소리가 없어, 그저 어둑한 침묵의 어둠 속에서 오지 않을 아침을 기다리던 그들 중 누군가의 외로움을 나는 끝내 외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결별을 이야기한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는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자연 섭리의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카페의 시간도 들려오지 않는 시침 소리에도 불구하고 5월의 햇살은 짙게 내부로 파고 들어와 벽의 저 너머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흔적 남은 그림자를 따라 그(녀)를 생각한다.
"어쩔 수 없지"
한숨 쉬듯 말하는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와 나의 손을 잡아주던 굳건한 의지.
그것만으로 든든한 안정감을 느꼈던 순간.
별을 따라나섰던 그날의 깊은 밤과 완결된 종식은 없다고 끝없이 속사이던 그날의 목소리가 아득한 오랜 기억 속에 부유한다.
"어디로든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어."
"완결된 종식은 없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 한 다면 그것은 끝이야."
"시간은 결국 누구의 편도 아니야"라고 말했던 그들 중 누군가의 경고가 흐릿한 기억 속에서 점점이 멀어진다.
결국 나는 혼자이겠지.
결별의 순간에도 나는 무엇과 누구로부터 결별한다는 것인지 알지 못 한 체로, 떠나간 그와 짧은 인터뷰를 생각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는데, 그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는지 봄 다음에 여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의 믿음이 사실인지도 혼란스럽다.
완결된 종식은 어쩌면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지금 이 순간 결별을 말하는 지금, 내가 결별할 수 없는 것처럼 완결된 종식 또한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거기 존재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은 내 편의에 따른 결론일 뿐 어떤 가능성도 어떤 기적도 내게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몹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냐옹~" 고양이 한 마리가 손님 없는 카페에 소리도 없이 스며들듯 들어와 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짧게 냐옹 했을 뿐 가만히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간다. 우아하고 평화로운 걸음이 참으로 고풍스럽다.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짧게 "냐옹" 울음을 남기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늪지에서 낮게 날아오르던 괭이부리갈매기의 울음처럼 짧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귀속에서 미처 사라지지 않고 맴돈다.
결별.
나는 그 단어를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본다.
사방의 벽이 나의 소리를 담아 메아리를 울린다.
마치 사방의 벽들이 나에게 결별을 말하듯, 나는 결별로 둘러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