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1)
올여름, 너무 덥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덥다.
그날그날 더운 것도 사실 심각한데, 더위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게 더 문제이다.
아침저녁 출퇴근하면서 이미 그날 써야 할 힘의 팔구 할은 다 쓰는 데다
그 아침저녁마다 땀을 한 바가지 씩 쏟아내는 탓에, '몸이 정말 가는구나(?)'를 아주 절감하고 있다.
'몸이 가고 있음'에 따라 최근 한 달간 몇 번이나 견갑 주변에 담이 붙고
평소 상태가 영 불량하던 왼쪽 복숭아 뼈 부근이 아파 절뚝 대며,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아 아침 서너 시간 동안 커피를 두 잔 넘게 마실 때도 있다.
(평소에는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때에 따라 점심 커피는 건너뛴다.)
특히 이 놈에 담, 견갑부터 시작해서 허리 부근으로, 다시 견갑으로.
괜찮나? 싶다가도 갑자기 억, 하게 만드는 놈, 되게 아프긴 한데, 정확히 어디라고 하긴 어렵고.
아주 죽을 만큼 아프다, 는 또 아닌데 갑자기 한 번씩 주저앉게 하며 사람을 농락하는 놈.
지난 주말 나는 매주 그렇듯, 아버지, 어머니 집에 갔다.
(차로 가면 삼사십 분, 지하철, 버스 타면 넉넉 잡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나는 매주 주말마다 두 분 사는 집에 간다. 점심저녁 얻어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온다.)
두 분이 차린 점심 한상을 천천히 먹고 나니 우리 네 식구 모두 약간은 노곤노곤해져 가는 중이었다.
나는 몇 주 간 계속되는 '그놈에 담' 때문에 영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를 보던 아버지는 잠깐 있어봐, 아빠가 좀 눌러줄게, 라며
안방에서 도깨비방망이(?) 비슷한 걸 가지고 나왔다.
무시무시한 모양과는 다르게 그 방망이는 꽤나 효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힘을 주어 견갑 주변을 마사지했고
도깨비방망이는 귀가 간질거릴 만큼 자잘한 진동을 내며 뭉친 근육을 잘게 쪼개 주었다.
십 분 넘게 이어지는 안마에 아버지도 힘이 들 듯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 괜찮아. 힘들잖아. 이만하면 꽤 좋아졌어."라고 하니 아버지는 그제야
도깨비방망이의 전원을 끄고 다시 그 투박한 손으로 다 큰 딸 어깨와 팔, 또 손을 몇 번 주물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는 아기 때랑 똑같다, 야. 살갗이 말이야. 어릴 때도 이렇게 탄탄하고 탱글탱글했거든.
근데 지금도 그렇네,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네."
아버지의 그 말은 알 수 없는 지점에서 나를 울게 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운 건 아니지만 괜히 울컥하게 하는, 정말 알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아마, 이 살갗, 피부에 대해 우리 아버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테다.
나의 까만 피부는 태어나던 그 시점부터 우리 네 식구(당시에는 세 식구)와
양가 친척 사이에서 꽤나 큰 이슈(?)였다 한다.
스물아홉 살의 어머니는 출산을 보름 앞둔 그날, 아침부터 시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앞으로 몇 주간 집을 비울 테니, 또 갓난아이와 함께 올 테니 더더욱 신경 써서 집 안과 밖을 정리 정돈했다.
그리고 뱃속에서 아홉 달간 얌전히 있던 나는 이를 일종의 신호라고 생각했나 보다.
모든 일을 마친 어머니는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런데 눈을 뜨니 아래가 축축했다 한다.
이게 뭐지? 왜 다 젖어있어? 어머니는 곧장 이모에게 전화했고
(당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할 어른은 이모 밖에 없었다.)
이모는 듣자마자 "야, 너 큰일 났다. 빨리 병원에 가, 양수 터진 것 같아." 라며 아주 난리였다 한다.
병원에 가자마자 각서 같은 걸 썼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두 사람의 첫째 아이와 조우하게 된 젊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첫 만남은 생각만큼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경이롭다거나, 그런 류는 확실히 아니었다.
긴 수술 끝에 세상 밖에 나온 나는 양수를 몽땅 뒤집어써서 몸과 얼굴 모두 엉망진창이었으며,
특히 너무 까만 피부 탓에 주변의 시선을 한데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 병원에서 아이가 바뀔까, 싶어 간호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다.
어머니 말을 듣자 하니, 도저히 바뀌려야 바뀔 수가 없는 독보적인 비주얼이었는데,
너희 아빠도 참 유별났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였을 때는 까만 피부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눈에 띈다 거나, 티가 난다 거나,
그래서 난처하고 당황하고, 싫고 바꾸고 싶은 그런 특징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주로 집안에서 지냈으며,
집 앞 놀이터에 나간다 해도 그 시절 우리 또래라면 어느 정도 까맣게 탄 피부였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스스로 '아, 나는 다른 친구보다 얼굴이 까맣구나.'라고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다.
학교에서 어디라도 가게 되면 꼭 여럿이 모여 단체 사진 같은 걸 찍어야 하는데
사진 속 나는 무슨 흰돌 사이 까만 바둑돌 하나가 잘못 끼어 있는 듯, 유독 새까맣게 눈에 띄었다.
또 하필이면 당시 나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포니테일'을 고수했었기에,
뒤로 바짝 당겨 묶은 머리와 시원하게 반짝이는 이마는 정말 작정하고 시선을 강탈하는 요소였다.
매일 아침, 아버지가 쪽 빗으로 꼼꼼히 빗어 꽉 묶어 주었는데 눈이 약간 치켜 올라갈 만큼,
장력이 대단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까만 피부, 특히 까만 얼굴이 너무 싫고 밉고, 하얗게 만들고 싶어 안달했다.
놀림받을 때도 더러 있었다.
너만 유독 피부가 까맣다, 좀 씻고 다녀라, 어느 나라 사람이냐, 같은 짓궂은 말에
꽤나 큰 상처를 받아야 했고 어린 나는 상처받은 얼굴을 숨길 수조차 없었다.
사실 그 무렵이면 이미 태권도를 꽤 오래 배워왔던 때다.
(일곱 살 때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1단을 땄다.)
비슷한 몸집, 아니, 나 보다 조금 더 큰 아이라도 (남녀불문하고)
오른발 얼굴 돌려차기 한 방이면 아주 보내버릴(?) 만큼은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자꾸 안으로만 움츠러들곤 했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 고등학교 무렵에는 까만 피부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산 것 같다.
어릴 때는 볕이 내려 쬐든 말든, 피부가 타든 말든, 바깥에서 뛰어놀곤 했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바깥 활동이 크게 줄어 초등학교 때 보단 확실히 하얗게 됐다.
사실 말이 좋아 '하얗게'이지, 그냥 까맣긴 한데 조금 빛을 잃은 수준이었으며
따라서 '색'으로 치면 '하얗다'가 아닌 '누렇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나만 누런 게 아니었다.(아닌가?)
먹는 양은 많고 매일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자고, 자고 공부하고.
소화 불량에 만성피로, 입시 압박과 그 와중에 꼭 죄는 교복, 얼굴이 누럴 수밖에 없지 않나.
뭐, 그럼에도 얼굴 꾸밈과 몸 가꿈에 진심인 친구도 몇몇 있더랬다.
그 몇몇은 아침마다 얼굴에 분을 칠했으며 공을 들여 머리 손질했고,
또 살이 찌면 안 된다, 라며 점심은 두어 숟가락 먹고 심지어 저녁은 종종 거르기도 했다.
대단한 정신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딱히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기에, 잘 먹고 덜 움직이고,
몸과 정신의 힘을 아껴 공부하는 데에 쓰려했다.
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아껴 모은 힘을 정말 공부하는 데에 쓰긴 했나, 싶다.
그냥 살만 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언제 한 번 메일 정리하다 그 시절 찍은 증명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목이 없다, 목이. 쇄골 위에 바로 얼굴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나, 이 정도였어?' 싶어
어디 한 구석에 숨겨놓고 가끔 들어가서 '몰래' 본다.
그렇게 한참을 살다 보니 벌써 서른 살을 한참 넘어 곧 마흔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골골 대고 비실댄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난 삼십사 년 중 최고 까만 피부로 살고 있다.
심지어 돈을 주고 까맣게 만든다.
'기계 태닝'을 한단 소리이다.
첫 태닝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떻게 하다 보니 '바디 프로필'이라는 걸 도전하게 되었는데(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쓸 예정이다.)
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태닝이라 했다.
유튜브, 블로그, 다른 누구에게 전해 들은 카더라 등등, 아무튼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데 태닝은 필수라고.
당시 나는 사진을 위해, 딱 몇 번만 할 생각으로 집 근처 저렴한 곳을 찾아 결제를 했다.
그렇게 시작을 했던 건데…. 아니, 하다 보니 꽤 할 만하네? 아니, 좋아.
온몸 구석구석 안 타고 덜 타는 부위 없이, 균일하게 까맣게 되는 것도 좋고
태닝하고 딱 나왔을 때 피부에서 나는 달큼한 로션 냄새도 좋고.
물론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이 태닝이란 게 몸을 '태운다'가 아닌 몸에 색을 '입힌다'에 가까운 작업인데 쉽게 말해 '착색'이다.
그래서 온몸 구석구석, 꼼꼼히 로션을 펴 발라야 한다.
잘못하면 몸이 얼룩덜룩해질 수도 있다.
전에 한번 로션을 대충 바르고 기계에 들어갔었는데,
허벅지 바깥쪽이 무슨 얼룩말 마냥 줄무늬 같은 게 나있더군요.
아무리 씻고 닦아내도 별 차이가 없었어요. 다음 태닝 때 로션으로 덧칠했습니다.
손이 닿는 곳, 눈에 보이는 부위는 어떻게든 바를 수 있는데 문제는 등 한가운데 같은,
손이 잘 닿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부위이다.
이를 돕는 도구 같은 게 있긴 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도구를 잘 쓰질 못하겠다.
그래서 한쪽 팔을 반대쪽 방향으로 세게 넘긴 상태에서 몸통을 살짝 비틀고
손바닥과 손가락, 손등으로 등 한가운데에 태닝 로션을 펴 바르는데 가끔은 그 꼴이 너무 우습고 하찮다.
또 다른 하찮음 포인트는 기계 안에 들어가서이다.
눕는 형태가 아닌 서서 들어가는 형태의 기계인데 역시 중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그 와중에 얼굴은 타면 안 되기 때문에 얼굴을 모두 덮는 형태의, 어마무시한 '선캡'을 쓴다.
약간 울트라 맨(?)류의 변신 가면을 쓴 것 같다.
태닝 기계 안에 손바닥 만한 거울이 있다. 그 거울에 비친 헐벗은 몸과 그렇지 못한 얼굴,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팔다리를 들고, 꺾고 움직이는 모양이 참,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삼 년 전부터 꽤나 큰돈을 들여가며, 귀찮음을 참아가며
피부를 까맣게 유지하고 있다.
까만 피부라서 몸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어중간하게 누렇기보단
차라리 확 까만 게 좋고, 건강하고 탄력활력 있고, 피부색과 결이 균일하게 표현되니,
이 역시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과 시간을 들일 수 있음, 그 자체에 있다.
마치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차려주고, 매일 아침마다 몇 알의 영양제를 먹고,
좋은 글과 그림, 음악, 좋은 사람과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느낌과도 같다.
'나는 이렇게 '관리'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 아닌 나를 위해, 이만한 돈을 쓸 수 있고 이렇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어.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 까만 피부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조금 멋진 사람이 된 느낌도 들어. 그렇다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삼 년 넘게 돈을 주고 누런 피부를 까맣게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까만 얼굴 탓에 놀림받고 울상 짓던 나는 결코 알지 못할 취미,
세상에, 그렇지 않아도 시커멓고 껌껌한데 더 태워?
가끔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어디 휴가 다녀왔어요? 피부가 까맣게 탔네?"
그렇다면 나는 꽤나 의기양양하게 "아니요, 돈 주고 태웠어요. 태닝이요."라고 한다.
그러고 나선 소매를 살짝 걷어 팔 안쪽까지 고루 탄 피부를 보여주며 돈의 힘을 과시한다.
낮에 선 크림 안 바르고 다닌 게 아니고요, 어디 놀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나를 위해 돈과 시간과 힘을 쏟아 태운 피부가 바로 이렇답니다,라고.
이에 어떤 이는 "뭐? 돈을 주고 태워? 지금 볕 좋잖아요. 나가 누워있음 되지" 라며 비실비실 웃고
또 다른 사람은 "잘 어울려, 건강하고 몸도 좋아 보여. 역시 돈 쓰는 이유가 있네." 한다.
나는 전자 같은 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더는 말을 섞지 않고,
대게 그냥 각자 갈 길 갑시다, 라며 옅은 선을 그어 정리한다. 근데, 당사자는 잘 모르더군요.
대신 까만 피부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겐 두 배, 세 배 마음을 준다.
다정하게 애정한다. 아는 사람만 알면 된다. 굳이 전자 쪽에 신경 쓸 필요 없다.
다른 사람 말이 어떻든, 나는 나를 위해 계속해서 이만한 돈과 시간, 힘을 할애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란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게 무엇이고, 나란 사람을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나를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 도구와 수단에 대해, 더 자주, 깊이 알고 싶다.
알게 된 바를 다른 사람 눈치 보며 꽁꽁 숨겨 놓을 생각, 더는 없다.
새로 알게 된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드러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나를 처음 안아봤던 순간에 대해, 삼십사 년 전 기억에 대해 이렇게 꺼내놓곤 한다.
주변에선 수군수군, 서너 살이 될 때까지 "아이가 참 예쁘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한다.
그만큼 얼렁뚱땅으로 생긴 나다.
그럼에도 우리 아버지는 "너를 한 팔에 딱 올려놓고 내려다봤는데 말이야.
너무 작았거든. 한 팔에 이렇게. 얼굴이 새까맣고, 두 눈은 더 새까맣고.
그 두 눈을 바라보는데, 마치 온 우주가 담겨 있는 듯했어.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니까"
아버지는 주변의 수군거림 따윈 안중에도 없이, 까만 얼굴과 까만 눈동자 안에 담긴 작은 우주를 찾아냈다.
그 말에 나는 그냥 나직이, 이렇게 되뇐다.
그야, 아버지의 사랑이 온 우주만큼 컸으니까,
우주보다 큰 사랑을, 당신 팔에 안긴 그 작은 아이에게 그대로 옮겨 주었으니까.
글을 쓰다 문득, 자판 위 두 손을 바라봤다. 흠…. 색이 옅다.
더운 날씨 핑계로 태닝을 게을리했더니 '우주'같이 까맣던 색이 지구 어디 즈음으로 옅어졌네.
조만간 한번 태우러 가야겠다.
우리 아버지가 준 이 우주를 나는 앞으로도 아끼고 살피고, 사랑하며 보다 널리, 높이 확장하려 한다.
나는, 나의 우주를 지킬 의무가 있다.
이 글은 약간의 재가공 후 브런치 북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에 실릴 예정입니다.
(매주 일요일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