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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Sep 13. 2024

까만 몸과 까만 얼굴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1)

올여름, 너무 덥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덥다.

그날그날 더운 것도 사실 심각한데, 더위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게 더 문제이다. 

아침저녁 출퇴근하면서 이미 그날 써야 할 힘의 팔구 할은 다 쓰는 데다

그 아침저녁마다 땀을 한 바가지 씩 쏟아내는 탓에, '몸이 정말 가는구나(?)'를 아주 절감하고 있다. 


'몸이 가고 있음'에 따라 최근 한 달간 몇 번이나 견갑 주변에 담이 붙고 

평소 상태가 영 불량하던 왼쪽 복숭아 뼈 부근이 아파 절뚝 대며,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아 아침 서너 시간 동안 커피를 두 잔 넘게 마실 때도 있다.

(평소에는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때에 따라 점심 커피는 건너뛴다.)

특히 이 놈에 담, 견갑부터 시작해서 허리 부근으로, 다시 견갑으로. 

괜찮나? 싶다가도 갑자기 억, 하게 만드는 놈, 되게 아프긴 한데, 정확히 어디라고 하긴 어렵고. 

아주 죽을 만큼 아프다, 는 또 아닌데 갑자기 한 번씩 주저앉게 하며 사람을 농락하는 놈.


지난 주말 나는 주 그렇듯, 아버지, 어머니 집에 갔다.

(차로 가면 삼사십 분, 지하철, 버스 타면 넉넉 잡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나는 매주 주말마다 두 분 사는 집에 간다. 점심저녁 얻어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온다.)

두 분이 차린 점심 한상을 천천히 먹고 나니 우리 네 식구 모두 약간은 노곤노곤해져 가는 중이었다.

나는 몇 주 간 계속되는 '그놈에 담' 때문에 영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를 보던 아버지는 잠깐 있어봐, 아빠가 좀 눌러줄게, 라며 

안방에서 도깨비방망이(?) 비슷한 걸 가지고 나왔다. 

무시무시한 모양과는 다르게 그 방망이는 꽤나 효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힘을 주어 견갑 주변을 마사지했고 

도깨비방망이는 귀가 간질거릴 만큼 자잘한 진동을 내며 뭉친 근육을 잘게 쪼개 주었다. 

십 분 넘게 이어지는 안마에 아버지도 힘이 들 듯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 괜찮아. 힘들잖아. 이만하면 좋아졌어."라고 하니 아버지는 그제야 

도깨비방망이의 전원을 끄고 다시 그 투박한 손으로 다 큰 딸 어깨와 팔, 또 손을 몇 번 주물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는 아기 때랑 똑같다, 야. 살갗이 말이야. 어릴 때도 이렇게 탄탄하고 탱글탱글했거든. 

근데 지금도 그렇네,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네."




아버지의 그 말은 알 수 없는 지점에서 나를 울게 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운 건 아니지만 괜히 울컥하게 하는, 정말 알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아마, 이 살갗, 피부에 대해 우리 아버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테다. 


나의 까만 피부는 태어나던 그 시점부터 우리 네 식구(당시에는 세 식구)와 

양가 친척 사이에서 꽤나 큰 이슈(?)였다 한다.

스물아홉 살의 어머니는 출산을 보름 앞둔 그날, 아침부터 시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앞으로 몇 주간 집을 비울 테니, 또 갓난아이와 함께 올 테니 더더욱 신경 써서 집 안과 밖을 정리 정돈했다.

그리고 뱃속에서 아홉 달간 얌전히 있던 나는 이를 일종의 신호라고 생각했나 보다. 

모든 일을 마친 어머니는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런데 눈을 뜨니 아래가 축축했다 한다. 

이게 뭐지? 왜 다 젖어있어? 어머니는 곧장 이모에게 전화했고

(당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할 어른은 이모 밖에 없었다.) 

이모는 듣자마자 "야, 너 큰일 났다. 빨리 병원에 가, 양수 터진 것 같아." 라며 아주 난리였다 한다.

병원에 가자마자 각서 같은 걸 썼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두 사람의 첫째 아이와 조우하게 된 젊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첫 만남은 생각만큼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경이롭다거나, 그런 류는 확실히 아니었다.

긴 수술 끝에 세상 밖에 나온 나는 양수를 몽땅 뒤집어써서 몸과 얼굴 모두 엉망진창이었으며,

특히 너무 까만 피부 탓에 주변의 시선을 한데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 병원에서 아이가 바뀔까, 싶어 간호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다.

어머니 말을 듣자 하니, 도저히 바뀌려야 바뀔 수가 없는 독보적인 비주얼이었는데, 

너희 아빠도 참 유별났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였을 때는 까만 피부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눈에 띈다 거나, 티가 난다 거나,

그래서 난처하고 당황하고, 싫고 바꾸고 싶은 그런 특징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주로 집안에서 지냈으며, 

집 앞 놀이터에 나간다 해도 그 시절 우리 또래라면 어느 정도 까맣게 탄 피부였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스스로 '아, 나는 다른 친구보다 얼굴이 까맣구나.'라고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다. 

학교에서 어디라도 가게 되면 여럿이 모여 단체 사진 같은 찍어야 하는데 

사진 속 나는 무슨 흰돌 사이 까만 바둑돌 하나가 잘못 끼어 있는 듯, 유독 새까맣게 눈에 띄었다. 

또 하필이면 당시 나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포니테일'을 고수했었기에,

뒤로 바짝 당겨 묶은 머리와 시원하게 반짝이는 이마는 정말 작정하고 시선을 강탈하는 요소였다.

매일 아침, 아버지가 쪽 빗으로 꼼꼼히 빗어 꽉 묶어 주었는데 눈이 약간 치켜 올라갈 만큼, 

장력이 대단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까만 피부, 특히 까만 얼굴이 너무 싫고 밉고, 하얗게 만들고 싶어 안달했다. 

놀림받을 때도 더러 있었다. 

너만 유독 피부가 까맣다, 좀 씻고 다녀라, 어느 나라 사람이냐, 같은 짓궂은 말에 

꽤나 큰 상처를 받아야 했고 어린 나는 상처받은 얼굴을 숨길 수조차 없었다. 

사실 그 무렵이면 이미 태권도를 꽤 오래 배워왔던 때다.

(일곱 살 때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1단을 땄다.)  

비슷한 몸집, 아니, 보다 조금 아이라도 (남녀불문하고) 

오른발 얼굴 돌려차기 방이면 아주 보내버릴(?) 만큼은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자꾸 안으로만 움츠러들곤 했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 고등학교 무렵에는 까만 피부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산 것 같다. 

어릴 때는 볕이 내려 쬐든 말든, 피부가 타든 말든, 바깥에서 뛰어놀곤 했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바깥 활동이 크게 줄어 초등학교 때 보단 확실히 하얗게 됐다. 

사실 말이 좋아 '하얗게'이지, 그냥 까맣긴 한데 조금 빛을 잃은 수준이었으며

따라서 '색'으로 치면 '하얗다'가 아닌 '누렇다'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나만 누런 게 아니었다.(아닌가?)

먹는 양은 많고 매일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자고, 자고 공부하고.

소화 불량에 만성피로, 입시 압박과 그 와중에 꼭 죄는 교복, 얼굴이 누럴 수밖에 없지 않나. 

뭐, 그럼에도 얼굴 꾸밈과 몸 가꿈에 진심인 친구도 몇몇 있더랬다.

그 몇몇은 아침마다 얼굴에 분을 칠했으며 공을 들여 머리 손질했고,

또 살이 찌면 안 된다, 라며 점심은 두어 숟가락 먹고 심지어 저녁은 종종 거르기도 했다. 

대단한 정신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딱히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기에, 잘 먹고 덜 움직이고, 

몸과 정신의 힘을 아껴 공부하는 데에 쓰려했다. 

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아껴 모은 힘을 정말 공부하는 데에 쓰긴 했나, 싶다. 

그냥 살만 찐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언제 한 번 메일 정리하다 그 시절 찍은 증명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목이 없다, 목이. 쇄골 위에 바로 얼굴이 붙어 있는 모양인데 '나, 이 정도였어?' 싶어 

어디 한 구석에 숨겨놓고 가끔 들어가서 '몰래' 본다. 




그렇게 한참을 살다 보니 벌써 서른 살을 한참 넘어 곧 마흔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골골 대고 비실댄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난 삼십사 년 중 최고 까만 피부로 살고 있다.

심지어 돈을 주고 까맣게 만든다. 

'기계 태닝'을 한단 소리이다. 

첫 태닝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떻게 하다 보니 '바디 프로필'이라는 걸 도전하게 되었는데(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쓸 예정이다.)

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태닝이라 했다. 

유튜브, 블로그, 다른 누구에게 전해 들은 카더라 등등, 아무튼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데 태닝은 필수라고.

당시 나는 사진을 위해, 딱 몇 번만 할 생각으로 집 근처 저렴한 곳을 찾아 결제를 했다. 

그렇게 시작을 했던 건데…. 아니, 하다 보니 꽤 할 만하네? 아니, 좋아.

온몸 구석구석 안 타고 덜 타는 부위 없이, 균일하게 까맣게 되는 것도 좋

태닝하고 딱 나왔을 때 피부에서 나는 달큼한 로션 냄새도 좋고.


물론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이 태닝이란 게 몸을 '태운다'가 아닌 몸에 색을 '입힌다'에 가까운 작업인데 쉽게 말해 '착색'이다. 

그래서 온몸 구석구석, 꼼꼼히 로션을 펴 발라야 한다.

잘못하면 몸이 얼룩덜룩해질 수도 있다. 

전에 한번 로션을 대충 바르고 기계에 들어갔었는데, 

허벅지 바깥쪽이 무슨 얼룩말 마냥 줄무늬 같은 게 나있더군요. 

아무리 씻고 닦아내도 별 차이가 없었어요. 다음 태닝 때 로션으로 덧칠했습니다.  

손이 닿는 곳, 눈에 보이는 부위는 어떻게든 바를 수 있는데 문제는 등 한가운데 같은,

손이 잘 닿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부위이다. 

이를 돕는 도구 같은 게 있긴 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도구를 잘 쓰질 못하겠다. 

그래서 한쪽 팔을 반대쪽 방향으로 세게 넘긴 상태에서 몸통을 살짝 비틀고 

손바닥과 손가락, 손등으로 등 한가운데에 태닝 로션을 펴 바르는데 가끔은 그 꼴이 너무 우습고 하찮다.

또 다른 하찮음 포인트는 기계 안에 들어가서이다.

눕는 형태가 아닌 서서 들어가는 형태의 기계인데 역시 중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그 와중에 얼굴은 타면 안 되기 때문에 얼굴을 모두 덮는 형태의, 어마무시한 '선캡'을 쓴다.

약간 울트라 맨(?)류의 변신 가면을 쓴 것 같다. 

태닝 기계 안에 손바닥 만한 거울이 있다. 그 거울에 비친 헐벗은 몸과 그렇지 못한 얼굴,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팔다리를 들고, 꺾고 움직이는 모양이 참,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삼 년 전부터 꽤나 큰돈을 들여가며, 귀찮음을 참아가며 

피부를 까맣게 유지하고 있다. 

까만 피부라서 몸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어중간하게 누렇기보단 

차라리 확 까만 게 좋고, 건강하고 탄력활력 있고, 피부색과 결이 균일하게 표현되니, 

이 역시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과 시간을 들일 수 있음, 그 자체에 있다. 

마치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차려주고, 매일 아침마다 몇 알의 영양제를 먹고,

좋은 글과 그림, 음악, 좋은 사람과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느낌과도 같다. 


'나는 이렇게 '관리'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 아닌 나를 위해, 이만한 돈을 쓸 수 있고 이렇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어.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 까만 피부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조금 멋진 사람이 된 느낌도 들어. 그렇다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아무튼 이런 까닭으로, 삼 년 넘게 돈을 주고 누런 피부를 까맣게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까만 얼굴 탓에 놀림받고 울상 짓던 나는 결코 알지 못할 취미,  

세상에, 그렇지 않아도 시커멓고 껌껌한데 더 태워?

가끔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어디 휴가 다녀왔어요? 피부가 까맣게 탔네?"

그렇다면 나는 꽤나 의기양양하게 "아니요, 돈 주고 태웠어요. 태닝이요."라고 한다. 

그러고 나선 소매를 살짝 걷어 팔 안쪽까지 고루 탄 피부를 보여주며 돈의 힘을 과시한다. 

낮에 선 크림 안 바르고 다닌 게 아니고요, 어디 놀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나를 위해 돈과 시간과 힘을 쏟아 태운 피부가 바로 이렇답니다,라고.


이에 어떤 이는 "뭐? 돈을 주고 태워? 지금 볕 좋잖아요. 나가 누워있음 되지" 라며 비실비실 웃고 

또 다른 사람은 "잘 어울려, 건강하고 몸도 좋아 보여. 역시 돈 쓰는 이유가 있네." 한다. 

나는 전자 같은 말,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며 더는 말을 섞지 않고,

대게 그냥 각자 갈 길 갑시다, 라며 옅은 선을 그어 정리한다. 근데, 당사자는 잘 모르더군요. 

대신 까만 피부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겐 두 배, 세 배 마음을 준다.

다정하게 애정한다. 아는 사람만 알면 된다. 굳이 전자 쪽에 신경 쓸 필요 없다.

다른 사람 말이 어떻든, 나는 나를 위해 계속해서 이만한 돈과 시간, 힘을 할애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란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게 무엇이고, 나란 사람을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나를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 도구와 수단에 대해, 더 자주, 깊이 알고 싶다. 

알게 된 바를 다른 사람 눈치 보며 꽁꽁 숨겨 놓을 생각, 더는 없다. 

새로 알게 된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드러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나를 처음 안아봤던 순간에 대해, 삼십사 년 전 기억에 대해 이렇게 꺼내놓곤 한다.

주변에선 수군수군, 서너 살이 될 때까지 "아이가 참 예쁘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한다. 

그만큼 얼렁뚱땅으로 생긴 나다.

그럼에도 우리 아버지는 "너를 한 팔에 딱 올려놓고 내려다봤는데 말이야. 

너무 작았거든. 한 팔에 이렇게. 얼굴이 새까맣고, 두 눈은 더 새까맣고. 

그 두 눈을 바라보는데, 마치 온 우주가 담겨 있는 듯했어.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니까"

아버지는 주변의 수군거림 따윈 안중에도 없이, 까만 얼굴과 까만 눈동자 안에 담긴 작은 우주를 찾아냈다.

그 말에 나는 그냥 나직이, 이렇게 되뇐다.

그야, 아버지의 사랑이 온 우주만큼 컸으니까,

우주보다 큰 사랑을, 당신 팔에 안긴 그 작은 아이에게 그대로 옮겨 주었으니까.


글을 쓰다 문득, 자판 위 두 손을 바라봤다. …. 색이 옅다. 

더운 날씨 핑계로 태닝을 게을리했더니 '우주'같이 까맣던 색이 지구 어디 즈음으로 옅어졌네.

조만간 한번 태우러 가야겠다.


우리 아버지가 준 이 우주를 나는 앞으로도 아끼고 살피고, 사랑하며 보다 널리, 높이 확장하려 한다.

나는, 나의 우주를 지킬 의무가 있다. 



이 글은 약간의 재가공 후 브런치 북 '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에 실릴  예정입니다.

(매주 일요일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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