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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미워했고 사랑하는_두 다리(1)

by 최우림

이 두 다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참 많다. 쓸 말도 많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보자, 보자, 이 크고 굵고 넓고(?) 까만 두 다리의 시작은 과연 언제부터였나.

그래, 이럴 때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던 먼먼 옛날(?)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일천구백구십일 년, 나라 안팎으로 꽤나 어수선했던 그해.

나는 최씨 집안 첫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다. 시작은 반지하였다.

볕도 잘 들지 않던 작은 집, 그럼에도 두 분은 당신 첫째 딸을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로, 언젠가 '제대로' 써보겠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아버지의 '베이비 마사지'이다.

삼십 년도 더 된 때이기에 '베이비 마사지' 같은 이름은 분명 아니었을 테고….

음…. '쭉쭉이'라고 했나? 우리 집에서는 대충 이와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의 아버지는 퇴근 후 매일매일 이와 같은 '의식'을 꼭 해주었는데

이렇게 다리를 꾹꾹 누르고 늘리고, 부드럽게 만져주면

곧고 긴 다리, 탄탄한 다리, 예쁜 다리가 된다, 라고 했다.

참고로 이 의식은 나를 거쳐 세 살 어린 혈육에게까지 이어졌다.

동생에게 순번이 넘어가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가 이 의식을 할 때 꽤나 많은 말을,

반복해서 해왔음을 알게 됐다. 우리 딸, 예쁜 딸, 다리 예뻐져라, 곧아져라, 같은 부류의 말.


과연 아버지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몇 가지는 선방했고 다른 몇 가지는 아주 실패했다.

곧고, 튼튼탄탄하고 건강하고, 이런 쪽은 확실히 목표달성이다.

하지만 '예쁜'이라 하기에는 글쎄, 지금은 여러 형태의 몸을 두루, 널리 수용하는 분위기이지만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아니 이십 대 초중반 때만 하더라도 마른 몸, 날씬늘씬한 몸만이

'예쁜'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예쁜 다리를 갖지 못했으며 때문에 오랜 시간 이 두 다리를 매우매우 싫어했고,

어떻게든 바꿔보려 노력했단 말을 하는 중입니다.



심지어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십 년 가까이 태권도를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리 쓸 일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같은 자리에서 좌우좌우 뜀을 뛰고,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세게 차고,

몸을 휙 한 바퀴 돌려 후려 차고, 이런 움직임을 반복해서 했다.

이때 주로 쓰는 다리를 물론, 반대쪽 발에도 꽤 큰 하중이 얹히는데

이를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양쪽 다리가 매우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문제라고 하면, 나는 어릴 때 태권도에 반쯤 미쳐있었기 때문에 정말 매일 같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운동을 했다.

학교 공부는 게을리해도 태권도 예습복습은 철저히 하는 착한 무도인(?)이었기 때문에

두 다리, 특히 양쪽 허벅지는 산란기 배가 부푼 붕어처럼 점점 부피를 (옆으로만) 키워갔다.

그리고 나는 이 두 다리의 심상치 않음에 대해, 결코 일반적인 크기가 아님에 대해

초등학교 오 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가만히 보면 나도 참 이런 데에 무딘 사람이다.

그걸 왜 그때가 되어서야 알았을까. 누가 봐도 매우 큰데?


같은 반 친구의 한마디 말 때문이다.

당시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옷 입는 데에 영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열두 살의 나는 여름 태권도복 대용으로 맞춘 위는 반소매,

아래는 칠 부 바지 조합의 옷을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매년 여름, 겨울이면 이와 같은 옷이 나왔는데 한번 사면 이 년 정도 닳고 닳을 때까지 입곤 했다.

그해 여름에 산 옷은 약간 개량 한복 비슷한 느낌이었으며, 색은 위아래 하늘파랑으로 기억한다.

그날 역시 나는 하늘파랑, 위아래 옷을 맞춰 입고 학교에 갔고 딱히 공부는 하지 않았는데,

한 친구가 칠 부 바지 아래 딱 삼 부밖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야, 참. 굵다, 굵어." 거기에서 그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아니지, 이즈음이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지.) 삼부 밖 두 다리에 기어이 손을 대며

(찰싹찰싹) 위와 같은 말을 아주 크게, 반복해서 소리치는 게 아닌가.

하…. 조금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나였으니 망정이지. 너,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아, 나 좀 다르구나. 다리가 굵어? 정말? 뭔가, 괜히 위축됐다.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잘 입던 반바지, 칠 부 바지는 의도해서 피했으며

늘 어두운색의 긴 바지로 굵고 못난 다리를 감추고 숨기는 데만 집중집착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게 됐다. 문제는 중학교 때부터인데, 교복을 입어야 하지 않나.

교복 입은 모습, 특히 두 다리를 무릎 아래로 모두 내놓은 모습이 너무 우습고,

불편하고, 아무튼 그냥 다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웃긴 일은 초등학교 오 학년 때 나를 각성하게 한 그 친구(아, 친구 아니지.)가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심지어 이학 년 때(아마도?) 또 같은 반이 되어 나를 괴롭게 했다.

물론 그 아이는 그때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늘 그런 식인 것 같습니다. 후드려 패는 사람은 기억을 못 하는데,

별안간 후드려 맞은 사람은 지금까지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게 말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일단 교복이란 '의복' 형태에 적응 완료했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며 산 것 같다.

당시에는 (앞선 글에 쓴 바와 같이) 공부 외에 다른 데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몸무게가 꽤 많이 나갔는데 그 덕에 다리와 다리 외 다른 부위가 골고루 커져(?)

나름 비율이 나쁘지 않았다.(이상한데?) 나중에, 대학 가면 다 빠져. 괜찮아.

물론, 몇 차례 위기가 있긴 했다. 고등학교 이 학년 여름방학으로 기억한다.

자습을 위해 학교 가는 길, 아침 일찍 지하철에 탔다.

세 정거장 정도 가야 하는데 자리에 앉긴 어중간하고 그래서 그냥 문 앞에 서 있었다.

몇 분 후 서너 살 즈음되는 아이와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어머니가 같은 칸에 탔다.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을 했다.

"돼지…! 엄마, 돼지!" "아… 아니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돼ㅈ…."

아이 어머니는 황급히 아이 입을 막았으나, 저는 똑똑히 듣고 말았지요.


다행히(?) 나는 뒤를 돈 상태였고 그 모녀는 나의 푸짐한 뒷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정말 껄껄 웃으면서 당시를 설명하는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말할 수조차 없는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때 그 아이…. 대충 계산하면 지금 열여덟, 아홉 즈음 됐을 텐데….

너의 뒤태는 무탈하니? 나는 그게 괜히 궁금하네. 너는 살 안 찔 줄 알았지?



D 여고 논술 에이스(?) 였음에도 어떻게 하다 보니 수시는 다 말아먹고 정시로,

지망하던 학과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때보단 몸무게가 조금 줄긴 했으나 두 다리만큼은 굳건했다.

그리고 나의 스무 살은 '소녀시대'가 가요계를 집권했던 때다.

이게 또 무슨 뚱딴지같은 전개냐고? 지(Gee)라고요. 지(Gee).

샤이니와 함께 온 국민이 스키니 진을 입게 만든 소녀'시대'의 '시대'에서

큰 다리, 왕 다리, 근육 다리인 나는 입을 옷이 없어 절망하고 매우 방황했단 말입니다.

2010년 대 초,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스키니 진을 입어야 했고

그런 옷을 입을 수 있는 마른 몸이 유행했다.

지금은 폭이 넉넉하고 크게 입는 스타일이 꽤 오래 사랑받고 있고

그 덕에 나와 같은 사람도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가 다양한데, 당시에는 모든 옷이 다 그렇게 나왔다.

좁고 빡빡하게. 그걸 누가 입냐, 도대체.

소녀시대, 샤이니, 빅뱅의 지드래곤, TV에는 이렇게 길고 마른 몸을 한 아이돌이

특유의 낭창낭창한 몸짓으로 노래하고 춤을 췄다.

사실 소녀시대만큼이나 나를 절망하게 한 건 보이그룹 '샤이니'였다.

가는 팔과 다리, 하얀 얼굴, 날개처럼 펄럭(?)이는 옷을 입는 그 다섯 사람은

심지어 '누난 너무 예뻐'라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심히 고민했다.

'저 친구, 오십 킬로는 나가려나?'

요즘에도 마른 몸의 남자 아이돌이 꽤 많다.

누가 알려주면 아, 그래? 하고 가끔 보고 듣긴 하는데 그럼에도 샤이니 때만큼의 충격은 아니다.

아, 참고로 저에게는 마지막 아이돌이 방탄소년단 즈음입니다. 좋다, 싫다, 가 아니고요.

각 멤버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아는 그룹이란 뜻이에요.

그다음부턴 그룹 이름과 멤버 얼굴, 노래와 춤 등등 모든 정보가 뒤엉킨 탓에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한편, 샤이니에게는 대항마(?) 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2PM'이다.

큰 몸과 까만 얼굴, 짙은 메이크업과 박력 있는 춤과 노래,

그냥 모든 게 다 샤이니와 극단에 있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

블링블링하게 입고 나와 방긋 웃는 얼굴을 하고서는 '누난 너무 예뻐'라고 하는,

'누나보다 너희가 더 예뻐'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샤이니와 노래 클라이맥스마다 옷을 찢고(!)

이를 보는 소녀의 마음도 찢는(!), '리슨 투 마 핥빗'의 짐승 같은 2PM.

나는 이 두 그룹 덕에 세상에는 참 다양한 미의 기준이 있고 그중 나는 어느 편이구나, 를

알아가는 아주 귀한 경험을 했더랬다.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이었냐? 라는 질문에는…. 2PM이요.

왜냐하면 제가 몸이 크거든요.

농담이고,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돌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2PM 한 멤버의 어느 인터뷰 장면을 보고나서부터 크고 굵고 근육 많은 다리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2PM 쪽으로 마음이 더 간다.

그 멤버는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해보려 하였으나 다리가 유독 굵고 튼튼하며, 근육이 잘 붙는 타입이라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키우기로' 했습니다, 라고 했다.

맞다. 아무리 해도 나는 소녀시대 다리가 될 수 없고

다시 태어나도 샤이니 같은 몸매를 가질 수 없을 텐데, 왜 그쪽에만 눈을 두고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할까.

세상에는 샤이니와 같은 몸과 얼굴을 좋아하고 또 지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2PM 쪽도 분명 있을 텐데, 아니, 2PM 너무 좋지.

크고 탄탄하고 힘 있고 만만하지 않아 보이면서, 무엇보다 너무 섹시하지.

그래, 그렇다면 나는 2PM 노선으로 가야겠어.

좋아. 어차피 못 뺄 것, 키워본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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