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대학 사 년을 마친 나는 졸업하고 넉 달 만에 일을 시작했고
취업과 함께 몸이 갈려(?) 나가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 일을 시작하고 일 년 즈음됐을 무렵 나는 당시 교재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집 근처 체육관에 등록했다.
남자친구는 위로 일곱 살 많았는데 이십 대 때부터 근력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나를 보며 '취미' 삼아 운동해 볼 것을 제안했다.
'적기'였다.
일을 하는 삶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던 때였으며,
그래서 퇴근 후 일이 아닌 다른 데에 힘과 시간을 적당히 쓸 만큼의 여분이 생길 무렵이었으므로,
또 더는 안 돼,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정말 나란 사람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라는 말이
몸과 마음 깊이 파고들던 때였기에, 그래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에만 해도 이 운동은 정말 '취미'였다.
퇴근 후 '재미'와 '건강'을 찾기 위한 도구,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저는 이 운동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십 년이나 되었네요.
한때는 아주 미쳐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합니다.
일과 중 하나예요.
이렇게 '본격적인' 중량 운동, 근력 운동은 사실 처음이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꽤 자신만만했다.
나름대로 태권도 십 년 경력, 공인 4단, 블랙 벨트(!) 아닌가.
그런데, 세상에. 전혀 아니었다.
물론 아주 기초가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조금 낫긴 할 테지만 그 차이가 매우 미미했다.
그리고 이때 즈음, 어떻게 보면 나를 근력 운동의 세계에 입문하게 한 결정적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체육관 등록하고 나서 얼마 후, 무료 PT라는 게 있다, 빨리 한 번 받아보라, 하며 계속 연락이 왔었는데
그 빈도가 조금 귀찮다 싶을 만큼 빈번했다.
지금 당장 받아봐야 한다, 약간은 닦달하는 식이었고 '무료'라고 하니
그냥 빨리 받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덜컥 예약을 하고 말았는데….
그때 나를 담당했던 PT 선생은 몇 가지 동작을 시켜보고 나선 몸이 엉망진창,
육칠십 대 할머니 수준이라 했다.
PT를 받아야'만' 하는 상태이며 매우 시급하다,라고 은근히 나를 몰아세우는 게 아닌가.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했던 나에게는 그렇게 큰 비용을 한 번에 쓸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공손히, 또 완곡히 거절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긴 조금 어렵네요. 생각을 좀 해볼게요.
그리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회당 가격이 적혀있던 종이를, 약간의 신경질을 내며 가져갔고
"다음은 없습니다. 수업이 많아서요."라며 세상 쌀쌀맞게 나를 거절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나와 동갑이었으며, 참고로 여자 선생. 십 년 전 일이지만 이름을 기억한다.
나는 너무 당황했다. 사실 어처구니가 없어 순간 얼어붙어버렸다.
서른네 살, 지금의 나는 이런 일에 결코 참지 않습니다.
그의 무례하고 경우 없고, 선을 넘는 언행에 대해 확실히 책임질 수 있게 만들 텐데,
스물다섯 살의 나는 그럴 만한 배짱이 부족했고 그래서 그냥 그 자리를 황급히 도망쳐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사실 그날 어떻게 운동을 하고 갔나, 기억이 흐릿하다.
대신 이렇게 글을 쓰지. 잊지 않아.
그의 말은 가만히 있던 태권도 유단자, 어린 시절 지역 대회에서 여러 번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두 체급 위 남자아이와도 당당히 붙어 겨루기 시작과 함께 연속 얼굴 돌려차기를 후려 버렸던,
잠시 휴업 중이었던 승부욕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때부터 살짝 미쳐 운동했다.
퇴근하고 저녁 여덟 시부터 체육관에 있는 모든 중량 운동 기구를 한 번씩 다 다뤄보고,
유산소 러닝 머신까지 한 시간가량 타고, 그렇게 씻고 집에 오면 자정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잔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면 또 자정까지 운동.
운동하는 법을 잘 몰랐기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PT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옆에 바짝 붙어 어떻게 가르치나, 어떻게 하라 하나, 몰래 들어가며
그렇게 운동을 했다.
그때에만 해도 팔다리, 어깨, 가슴, 등 운동보단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기본적인 힘이 좋은 다리 운동을 주로 했다.
맨몸으로 하는 스쿼트와 다리 기구운동, 나중에는 천천히 중량을 올려 나갔다.
지금은 전신을 고루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율이 좀 맞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 '바디 프로필'에서 마저 쓰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랜 기간 같은 운동을 했고 이쪽 세계에 대해 무지렁이 같던 나를 가르쳤던,
그 일곱 살 많은 남자친구보다 운동을 조금 더 잘하게 됐다.
남자친구는 운동 편식이 심한 사람이었는데 가슴과 팔 운동에만 몰두했다.
남자는 가슴이라나, 가슴은 이정재라나, 이상형은 종국이 형이라나….
특히 다리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다리로는 남자친구보다 힘이 좋은,
꽤나 멋진 여자친구가 되어버린 나를 향해 그는, 넌지시 이렇게 말을 했다.
"너, 닭 같아."
"뭐?"
"닭다리."
살다 살다, 남자친구라는 사람한테 별소리를 다 듣는구나.
심지어 그냥 닭도 아니다. 영계, 토종닭 말고 '브라질 닭'이라 했다.
브라질 닭…. 궁금해서 찾아봤다.
도대체 그 많고 많은 나라 중 굳이 멀고 먼 남미 대륙의 '브라질'을 콕 집어 지칭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인터넷 창 너머에는 일 대 일로 싸우면 질 수도 있겠는 걸? 싶은 조류가 한 마리 서있었다.
공룡과 닭은 조상이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브라질 닭은 그 말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구나, 하게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생물체, 그렇지, 이 정도는 되어야 공룡이지.
하지 말 걸, 찾아보지 말 걸. 그 와중에 다리는 왜 이렇게 튼실하니.
부정하고 싶은데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서, 가만히 보니 다리 모양이 좀 닮은 것도 같고….
아무튼 당시에는 그냥 웃고 넘어갔…나? 아니다, 약간의 몸싸움(?) 같은 게 있긴 했다.
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하는 수준으로 아주 작고 하찮게 씩씩댔더랬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시간과 함께 나의 운동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오육 연차 즈음에는 돈을 주고 PT를 받았으며 이에 더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필기, 실기 및 구술, 실습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당시 이직과 코로나 19로 인한 시험 연기,
온라인 교육, 실습 축소 운영 등등으로 취득하는 데에 삼 년이나 소요됐다.
'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이다.
누굴 가르칠 생각으로 딴 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운동을 하면 할수록 깨닫고 있다.
아, 그리고 그 사이 오래 만난 남자친구, 위 '브라질 닭' 사건의 그와는 오 년 넘는 연애를 끝마쳤고
그즈음 새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브라질 닭 그 이는 일곱 살 연상, 새로 만난 그 친구는 한 살 연하, 둘 다 같은 운동을 했다.
새 남자친구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 가운데에서도 매일 같이 운동하는 나를 보며 먼저 관심이 갔다 한다.
저 여자, 참 성실하다, 싶어 오랜 고민 끝에 말을 걸었는데 그게 연이 되어 일 년 즈음 교재했다.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하다 만났지요. 저는 가는 데가 체육관 말곤 특별히 없거든요.
착한 친구였다. 하얀 피부, 짙은 쌍꺼풀에, 특히 눈이 굉장히 예쁜 사람.
그와 나는 만난 기간은 짧았으나 아주 조금씩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간 마음이 깊어지던 어느 날, 그는 나를 향해 이렇게 한마디 했다.
"다리가 참 예쁘네요."
"네? 정말 그래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봐요."
"건강하고 탄탄해요. 나는 그게 좋아요."
그 이후 우리 두 사람은 매우 긴밀해지기도 했고 허물어지기도 했다.
반복되는 우여곡절 끝에, 서로 믿고 의지했던 그 마음이 어느 순간 깊은 실망과 좌절이 되었으며,
그래서 결국 좋은 마음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나,
그래도 나는 그가 나를 향해 던진 그 한마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나를 가만히 살펴보던 그의 예쁜 눈과 고운 시선,
그의 눈동자 위에 비친 나를 한 가닥, 한 가닥 세어가며 마주 보던 그 순간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도 나를 그렇게 바라봤다. 나의 눈동자 위에 비친 자기 자신을, 한 가닥, 한 가닥 세어가며.
지금은 남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이 참 고맙다.
나를 구석구석 사랑해 주었던 그가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예쁜 눈과 고운 시선으로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가길 전심으로 응원하다.
브라질 닭이 어떻고, 건강하고 탄탄하고 예쁜 다리가 어떻고, 사실 지금의 나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나는 반바지를 매우 즐겨 입는 사람이 됐다.
다리를 드러내는 데에 아무 거리낌 없다.
오히려 약간 쾌감이 있다. 이 다리를 봐라, 태권도 십 년에 근력 운동 십 년으로 만든 다리라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간편하여 출퇴근이 아니라면 거의 반바지 차림으로 산다.
다리 모양이 이렇다 보니 택시 기사 아저씨가 "손님, 운동선수예요?"라고 묻어봤던 적도 있고,
체육관 PT 선생이 "저…. 운동 쪽 일 하시나 봐요?"라며 말을 걸어올 때도 더러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꽤나 당황했을 텐데 지금은 이런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
그간의 노력이, 그간 들인 힘과 시간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그래서 나는 온 얼굴에 웃음을 띠고 "아니요. 취미예요. 취미."하고 만다.
또 언제 한 번은 일터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옆 부서의 '장'인 한 분이 "어후, 선생님. 애플 힙이야."라고 하는데….
허허,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이 매우 좋더이다.
동성이고 칭찬의 투로 한 말이오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 스쿼트를 좀 하고 왔는데요. 괜찮나요?" 하며 유쾌하게 받아쳤다.
또 다른 동료는 출산, 육아휴직 후 복직 서류를 쓰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는데
일 년여 만에 만나서는 "선생님, 하나도 안 변했어요. 아니, 잠깐만. (다리를 만져본다.)
아니, 다리가…, 다리가 왜 이래?(실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리가 왜 이래? 라고.)"
그럼 나는 또 껄껄 웃으면서 "다리가 왜요. 아유, 선생님, 오랜만에 와서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며
또 째진(?)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게 바로 큰 다리, 왕 다리, 근육 다리를 갖고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 마당에 큰 다리의 이점에 대해 조금 더 써봐야겠다.
먼저, 어지간해선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세상 어떤 일도 힘으로만 해결해선 안 되지만, 힘이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꽤 많다.
그리고 탄탄하고 굵은 다리, 이에 더해 넓은 어깨, 꽉 찬 전완근이면 딱 봐도 힘이 좋아 보이므로,
어디 가서 무시당하거나 만만하게 보여 손해 보는 일이 적다.
나는 목을 기준으로 위(얼굴)는 초식동물 상, 만만하고 세상 호구 같은 상이라서
살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꽤나 있었는데 몸을 키우고 난 후, 목 아래는 육식동물, 아니, 공룡,
아니 아니, 짐승 같은 느낌이라 열 번 손해 볼 걸 한두 번 정도로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둘째, 체력. 굵은 하체는 체력의 원천이다.
두 다리 덕에 나는 그간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고 대충 넘길 수 있는 여러 과업을 양질의 결과로써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며, 몸과 마음이 자주 소모마모되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마는 우리 일을 하면서도
십 년 넘게 자기 자리를 지켜냈다.
셋째, 음…. 하나 더 쓰면 딱 좋을 텐데 당장 생각나는 게 없네.
조금 더 고민해서 오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지난 삼십 사 년 중 삼 분의 이 가량은 이 두 다리를 매우 싫어했고,
바꾸려 노력했고 잘 되지 않아 좌절하였으나, 지금은 매우 아끼고 사랑하며 꽤나 자부심 있다.
그리고 요즘 나는 이 두 다리를 '기능적'으로 잘 쓰기 위해 노력한다.
최고 '관심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간 해온 운동은 근육의 힘과 크기를 키우는 쪽이었다,라고 하면
러닝을 시작하고나서부턴 오래 뛸 수 있는 단단하고 탄탄하고, 기능적인 다리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정말 재밌는 게, 나는 사실 다리가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라 생각을 했었기에
오래 뛸 때 문제가 되는 건 심폐 기능이며,
그래서 일 킬로미터 당 시간과 심박 따위 수치를 중간중간 점검했다.
심장과 폐에 무리가지 않게 뛰어야지, 그래야 오래 뛸 수 있어.
이미 이 생각 구조에는 '다리 근력이 부족하다'라는 가정 자체가 들어있지 않았었다.
누가 봐도 그렇지 않나. 이런 다리를 하고 서는 근력에 대해 논하다니.
그런데 뛰는 거리가 오 킬로미터, 십 킬로미터, 그 이상으로 늘어나다 보니 심폐기능보단 다리가 문제였다.
오육 킬로미터 즈음부터 발목을 포함하여 다리 근육이 먼저 털린(?) 느낌이 든다.
다리 운동을 더 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해.
특히 올해 초 왼쪽 발목 부상을 입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쪽으로 신경 쓰고 있다.
발목이 좋지 않네? 그렇다면 발목 주변 근육을 키워야지.
무릎이 삐거덕 대네? 그렇다면 무릎 주변 근육을 더 키워야 해.
아니 고관절은 또 왜? 무릎을 들어 올릴 때 쓰는 근육이 약한 가봐.
맞네. 그간 이 부위 운동은 잘하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운동 루틴에 추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 아하, 런지를 조금 더 해봐야겠다. 런지라니, 진짜 힘든데 말이야.
근력 운동을 한 게 십 년 즈음됐고, 이렇게 조금씩 운동 방법을 바꾸기 시작한 건 일 년 반정도이니,
사실 이와 같은 변화의 결과를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보다 더 큰 다리가 될지(설마?), 근육 모양이 조금은 길고 가늘어 질지,
아니면 이미 이렇게 된 몸, 별 차이 없이 그냥 계속 이렇게 살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고 또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모양이 어떻든 나는 이 두 다리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며, 두 다리 덕을 보며 살 것이라는 점에 있다.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 출퇴근하고 일을 하고, 때로는 좋은 데에 데려가며,
산과 공원, 도로에서 맘껏, 양껏 걷고 뛰고.
아하, 맞다. 굵고 큰 다리, 근육이 많은 다리의 세 번째 이점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그래. 우리 아직 가야 할 곳이 많고, 걷고 뛸 거리는 더더욱 멀고 길어.
지난 삼십사 년만큼 앞으로 남은 삶도 잘 부탁한다.
우리 오래오래, 멀리, 높이, 구석구석 부지런히 다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