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이다. 정말 큰 계획 없이, 야망(?) 없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 그전에 할 일이 있지.
운동화를 사야 하네. 사람 일은 모르잖아. 너무 비싼 운동화는 필요 없고….
오만 원 정도면 될 것 같아.
당시 나는 '몇 번 뛰고 더는 안 신을 수도 있다.' 싶어,
아주 소극적인 마음으로 신중하게 첫 러닝화를 골랐더랬다.
적당한 가격, 적당한 기능, 그렇다고 너무 싸고 아무렇게 생긴 운동화는 안 돼. 약간의 이름값은 있어야지.
사실 지난 삼십사 년간 나는 뛰는 데에 전혀 취미가 없었으며
'못 뜀' '안 뜀'을 기본자세(?)로 삼고 살아왔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등하교, 출퇴근할 때 허둥지둥 뛰는 게 싫어 차라리 잠을 좀 덜 자고
일찍 출발하는 편을 선택했고 횡단보도 앞에서도 어지간하지 않으면 뛰는 일이 없다.
다음 신호에 가지, 뭐.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지금 나는 주 삼사 일, 한참 미쳐있을 때는 주 오육 일을 나가 뛸 만큼
뛰는 데에 진심인 사람이 됐다.
심지어 주변 여러 사람에게 러닝의 참맛을 전파하고 있다.
이 마수에 걸려들어 비싼 러닝화와 몇 만 원짜리 스포츠 브라, 땀 배출이 잘 되는 옷을 사고 오 킬로미터,
십 킬로미터를 뛰어 '완주 메달'을 목에 건 이가 벌써 여럿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구나, 싶다.
어린 시절 나는 주로 몸을 쓰며, 바깥에서 뛰어노는 박력 있는 아이였다.
당시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또래 여자아이라면 으레 가지고 놀 법한, 마론 인형 같은 장난감은 한두 개 될까?
그때 나는 자동차 장난감, 변신 로봇과 쌓기 블록, 또는 못 박기(?) 장난감에 심취하여
매일 같이 뚱땅거렸더랬다. 우리 어머니 하는 말이 그렇다.
그렇게 놀다 싫증 나면 아버지 손을 잡고 집 앞으로 나갔다.
흙을 파고, 쌓고 두꺼비 집을 만들었다 허물고.
그네 타고, 시소 타고. 정글짐에 올라 중심 잡고, 거꾸로 매달리고, 아주 난리였다 한다.
이 정도 조기교육이면 요즘 말로 '러닝', 옛말로는 '뜀박질'을 꽤나 잘할 법도 한데,
나는 왜 이렇게 걷고 뛰는 데에 담을 쌓고 살아왔던 걸까.
사실 나는 그 이유와 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태권도 다닐 무렵, 일곱 살 때부터이다.
일곱 살때부터 일 년간 나는 오전에는 유치원 공부하고 오후에는 태권도를 했다.
잊고 있었는데, 맞다…. 나…, '유아체능단' 출신이네.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하는 아이에게 부여되는 특별한 이름.
쓰고 보니 괜히 부끄럽네. '유아' 맞고, '체능'도 맞긴 한데 이걸 붙여 쓰니 참.
이곳은 나의 두 번째 유치원이었다.
여섯 살 때 간 첫 유치원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 바로 옆, 아이 걸음으로 일 분 거리였다.
가깝고 그래서 안전하고, 꽤 합리적인 가격과 적당한 커리큘럼, 옮길 이유가 크게 없는 곳.
그럼에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일 년 만에 조금 더 먼 곳을 찾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새 유치원으로의 '전원'을 선택했다.(전학 말고 유치'원'이므로 전'원'이 맞는 표현 같다.)
내성적인 성격을 '개조'하기 위함이다.
그곳에서 나는 공부, 운동, 그리고 '웅변'을 배웠다.
한 달에 한 편씩, 나라에는 충, 부모에게 효, 스승에게 예, 대충 이런 주제의 짧은 글을 암기하고
여러 사람 앞에 나와 소리 내어 발표 같은 걸 해야 했다.
마지막은 꼭 "이 연사, 자신 있게 외칩니다."로 끝이 나는 형태인데
극극극극 내향인 나는 이게 너무 하기 싫어 월 말 즈음되면 어느 한구석에 숨어 최대한 몸을 웅크렸더랬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꼬여 미칠 지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당초 목표했던 성격 개조에는 실패했다.
그냥 실패도 아니고 아주 대(大) 실패, 그게 될 턱이 있나.
그럼에도 한글과 숫자, 사칙연산 따위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배워 익혔고,
예상외로 태권도는 아주 신이 나서 했다.
어릴 때 놀던 가닥(?)이 있어 몸을 쓰고 동작을 외워 따라 하는 데에는'타고났다' 싶을 만큼 곧잘 했다.
'타고났다'라는 말은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봤다.
일 년도 되지 않아 공인 일 품을 취득했고, 관내에서, 지역에서 여러 개의 메달을 땄다.
그렇게 잘했음에도, 그곳에서 보낸 십 년을, 그 모든 시간과 장면을 무작정 다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나에게는 이를 가로막는 아주 큰 장애물이 존재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일, 당시에는 어디에나 '폭력'이 만연했던 시기였다.
말 폭력, 몸 폭력, 감정 폭력, 분위기 폭력 등등.
당시 관장은 가끔 한 번씩 그 수십 명의 '유아체능단' '유소년체능단'을 불러
두 줄로 세워 놓고 명령했다. 그날은 한 시간 내내 뛴다. 꽤 긴 거리였다.
몇 킬로미터 밖 초등학교 운동장을 반환점으로 하여 왔던 길로 다시 달려 들어와야 한다던가
(정확히 말해 운동장 골대에서 턴, 그 지점에 사범이 있다.), 아니면 동네 뒷산을 뛰어 올라가게 한다던가.
기껏해야 초등학교 사오 학년, 열한 살, 열두 살의 일이었다.
심지어 큰 대회를 앞둔 몇 살 위 오빠는 땀복 같은 걸 입고 뛰어야 했다.
몸무게를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끔찍하게 싫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작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 '타고났던' 아이였다.
'겨루기'는 말할 것도 없다.
몸무게는 가볍고, 얼굴 공격에 매우 능했으며 무엇보다 경기 스타일이, 그냥 '공격'이다.
시작 구호와 함께 공격 개시였고 생각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냅다 얼굴을 돌려 차고,
후려 차고 내려찍는 스타일. 수비는 무슨 수비? 공격을 쉬지 않고 하면 수비할 일이 없다.
아무튼,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관장 생각에는 '얘는 뭐, 잘 뛰겠지.'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3등, 4등, 5등이었다.
한 번에 삼사십 명이 뛰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으나 관장은 이게 못마땅했던 것 같다.
그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로 들어오는 나를 질타했다.
왜 이렇게 늦어? 더 빨리 들어왔어야지, 너는 그렇게 해야 해, 너는, 너는.
당시 나는 한 겨울이 아니고서야 맨발에 앞이 뚫린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리고 이놈에 뜀박질은 예고 없이 상명되기 때문에,열에 아홉은 슬리퍼 신세였던 탓에
빨리, 멀리, 오래 뛰는 데에 늘 고전해야 했다.
빨리 뛰고 싶지, 근데 슬리퍼라고. 슬리퍼 신고 어떻게 아스팔트를 뛰며
슬리퍼 신고 어떻게 산을 타겠어요.
그런데 사실, 이 글을 쓰다 든 생각인데…. 그때 그렇게 '열심히' 뛴 것 같진 않다.
슬리퍼 탓만 하긴 솔직히 애매하다.
더 빨리, 더 멀리 뛸 수 있었는데, 숨이 차서 헉헉댈 만큼 '열심'을 다해 뛸 수 있었는데
나는 이를 거부했다. 몸도, 마음도 전적으로.
그 결과로써 나는 여러 사람 앞에 불러 세워졌고 모진 말, 못된 말을 들어야 했고
그때마다 귀 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랫입술을 꼭 물고 제발 그만해, 그만, 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삼켜내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어린 나는 그런 말을 들어가며 뛸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나름 노력했고 '어느 정도' 결과를 만들어 냈음에도 더 빨리, 더 멀리, 더 오래, 더 잘, 을 요구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며 그래서 더더욱 그의 명령에 반발했다.
나는 그런 식의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 이는 아이어른, 과거현재를 막론하고 똑같다.
어떤 사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이와 같이 해선 안 된다.
이런 경험 탓에 '뛴다'는 곧 강압, 폭력, 처벌, 질타,
땀복을 입고 체육관 앞 골목을 한 시간 내내 뛰던 중학생 오빠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산비탈을 오르내리던 어린 나의 모습과 같은 뜻,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왜 이렇게 늦어? 이것밖에 못해? 왜 노력을 안 해? 너는 더 잘 뛰어야 해. 너는, 너는, 따위 말과 함께.
중학교 이학 년, 운동을 그만뒀다. 그 자리에서 '더는 못하겠다'라고 했다.
그날 나는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또 짜증 섞인 '너는 왜?'를 듣고 만 것이었다.
대회에 나가야지,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부터 합숙하자.
너는 나가기만 하면 될 텐데, 왜? 왜 그렇게 매번 소심하게 굴어.
조금 홧김에 내린 결정이긴 한데, 시간 지나 다시 생각해도 '그때'여서 다행이다, 싶다.
물론 궁금하긴 하다. 만일 그때 한번 더 참고, 아니, 계속 참고 참고 참았으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냥, 딱 이런 마음. 더도 덜도 아닌 '궁금증'이다.
나는 말과 몸과 감정과 분위기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그런 '문화'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나란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더욱 확신하게 된다.
작은 아이라서 큰 어른이 '무섭다' 수준이 아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앞이 깜깜하고 귀가 먹먹하다. 그때가 아니었어도 결국에는 그만뒀을 일이었고
오히려 빨리 그만둔 게 나와 그 모두에게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태권도를 그만두고서도 뛸 일은 늘상 있어왔다.
학교에선 매년마다 장단거리 시간을 측정했고 그에 따라 점수 또는 등급을 매겨 공표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늘 이런 이유로서 뛰었으며
그때마다 나는 작게 되뇌곤 했다.
나는 싫어, 아니. 나는 못해. 나는 뛰는 데에 영 소질이 없어.
분명 처음에는 뛰는 게 '싫어' 였었는데 어느 순간 '못' 뛰어, 로 은근슬쩍 바꾸어 썼다.
싫어, 못해, 그래서 안 뛸래.
가만히 생각하면, 초중고등학교 때 아주 '못' 뛰는 편, 아주 엉망진창은 아니었다.
오십 미터, 백 미터는 딱 평균 수준, 일이 킬로미터 되는 '장거리'는 글쎄, 평균보다 조금 아래?
특히 나는 한 번에, 쉬지 않고 뛰는 걸 유독 힘들어했다.
살이 부쩍 찐 고등학교 이학 년 때는 일 킬로미터 조금 넘게 뛰어야만 했는데
골인 지점에서 거의 피(와 침)를 토했더랬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컥컥 대는 그 순간에도 나는 또 생각했다.
나는 못해. 이게 될 리가 없지.
그리고 약 십오 년 후, 작년 1월. 첫 러닝을 마친 직후에도 비슷했다.
러닝화 싼 걸로 사길 잘했다. (헉헉) 아오, 잠깐만. 숨이 왜 이렇게 차. (헉헉)
심장(헉헉), 심장 뭐야. (헉헉)
찬바람, 칼바람을 맞아가며, 또 하필이면 되도 않는 '인터벌 러닝'을 했다.
한 번에 공원 한 바퀴를 뛸 자신이 없어 차라리 빨리 뛰고, 천천히 뛰고(또는 걷고),
다시 빨리 뛰고, 를 반복하는 편이 낫다,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아닙니다. '인터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이십 분 정도 뛰니 이 킬로미터 정도였다. 그리고 첫 러닝을 마치자마자, 다음 러닝을 걱정했다.
러닝은 괴롭고 힘들어. 그냥 생긴 대로 살아야지. 갑자기 무슨 러닝이야.
그런데 그 순간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났다.
러닝화와 러닝 양말에 쓴 육만 얼마의 돈 생각,
돈값은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이 새치기하며 들어온 것이었다.
이게 어른인가? 노동하여 돈을 벌어먹고 사는 어른, 나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이 시대의 청년 가장. 어릴 때는 태권도복 살 돈도, 운동화, 슬리퍼 살 돈도 다 아버지, 어머니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 점에서부터 확연히 달랐다. 쓴 만큼은 뛰어야지. 몇 번만 더 뛰어보자.
그렇게 해서 몇 번을 더 뛰게 되었는데…. 아니, 뛰다 보니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발목, 무릎, 엉덩이 관절, 또 엉뚱하게 쇄골 밑이 저려 뛰는
중간중간 어깨를 툭툭 털고 몸을 위아래로 늘려가며 은근하게 기분 나쁜 통증을 털어내려 했다.
'공부하자, 공부.'
그냥 뛸 일이 결코 아니다. 책과 논문을 찾아 읽고 영상을 살펴보고,
주변의 여러 조언을 정리하여 몸과 머리에 입력했다.
이전에는 정말 무지성으로 냅다 뛰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간 걷고 뛴 시간과 거리가 얼마인데 뭘 배워가며 해. 그냥 하는 거지.
하지만 그간 해온 러닝과 지금부터 하고 싶은 러닝은 분명 다르다.
일단 그때는 십 대였고, 지금은 삼십 대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늙어가는(?) 몸과 함께 뛸 테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또 이렇게 마음먹고, 오래 또 멀리 뛴 적은 없었으며 이렇게 돈을 들여 뛴 적은 더더욱 없다.
오래, 멀리, 그리고 가능하면 쉬지 않고 뛰기 위해서는 '비법'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되도 않는 '인터벌 러닝'은 진작 때려쳤고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대신 아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러닝을 좀 해본 사람마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천천히 뛰면 오래, 빨리 뛸 수 있다,라는 말,
처음 이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땐 '천천히'와 '오래'는 대충 이해가 가는데 '천천히'와 '빨리'?
이게 맞는 문장이야?, 라며 비아냥댔더랬다.
지금은 이 말의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동의해요.
'빨리'는 진작 포기했고, '오래'는 여전히 욕심이 났다.
어차피 빨리 뛰지 못할 썩은 몸, 어차피 천천히 뛸 수밖에 없는 망한 몸,
아주 천천히, '걷는 거야, 뛰는 거야' 싶게 한번 뛰어보자.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