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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Aug 08. 2024

열 살 언니, J_(2)

J님은 늘 그렇듯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활동개시했다.

나는 벌써부터 J님 볼 면목이 없어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게, 멀찍이 서서 J님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부지런한 J님, 인사 담당자 J님은 복지관 이곳저곳,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고, 

그렇게 도망 다녔음에도 J님 눈에 안 들려야, 안 들 수가 없었다. 

나는 멋쩍게 인사했다. 그런 나를 보며 J님은 별안간 한마디 했다. 


"미안하다." 

“네? 뭐가 미안해요?”

“노래. 시끄럽게 해서 미안했어.”


사십여 년 만에 말문이 트인 J님 앞에 나는, 반대로 말문이 턱 막혀 그 어떤 말도 쉬이 내뱉을 수 없었다.  


“이제 노래 조용하게 한다. 예쁘게 한다.

“J님이 뭐가 미안해요. 왜 미안해요.”

제가 더 미안해요. 미안해 죽을 지경이에요. 


뒷말은 차마 꺼내놓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퇴근이 꽤 늦었다. 

그 늦은 시각에도 나는 굳이 운동화를 갈아 신고 집 앞 공원으로 지친 몸을 이끌었다.

아침에 말문을 막은 그 무언가는 목구멍 언저리에 한참 머물다 기어코 마음 한편을 모두 메워버렸으며, 

때문에 나는 가슴 주변이 콱 막힌 듯, 얹힌 듯 무엇이든 토해내야 했다.

그 무엇이든, 땀이 됐든 말이 됐든, 눈물이 됐든.


천천히 공원 둘레를 뛰며 나는 J님을 생각했다. 

J님의 말을, J님의 마음을, 아니 J님이 겪어왔을 모든 거절, 거부, 배제와 차별을 

마치 모든 순간 함께했던 사람처럼 되감기 했다. 

나를 보며 ‘미안하다’라고 했던 J님은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걸까. 


되감기 버튼 옆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본다.

J님 옆에 앉아 다시 한번 거절, 거부, 배제, 차별의 말을 하는 나를 본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야기하는 나를,

비겁하고 어리석고, 사회사업가답지 않은 나를, 떳떳하지 못한 나를 지켜봤다. 


순간 울컥 울음이 났다. 

사람이 많지 않고 주변이 어두컴컴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땀을 닦는 척, 안경을 올리는 척, 나는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그날 저녁 공원 둘레를 내리 달리면서 한참을, 그렇게. 

순간 생각했다. 

이 나이 먹고 이런 이유에서 울 줄이야. 




다음 날 아침, J님을 만난 나는 오후 세시 즈음 잠깐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시간을 좀 내어달라, 부탁했다. 

그날이다. 할 일을 해야 하는 그날. 


오후 세 시, 복지관 뒷마당 그늘 아래 J님과 나란히 앉았다.


"왜 그래?"


J님의 물음에 어, 음, 있잖아요, 하며 한참 머뭇댔다. 


“J님, 우리 7월에 합창 대회…. 정말 정말 미안해요.

이번 대회에 J님과 함께 나갈 수 없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대회’이다 보니 노래 ‘합’을 맞춰야 하는데요. 

J님은 중창단 온 게 얼마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우리…. 

연습을 조금 더 한 후에 나가봐요. 이번에는,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나는 J님의 눈을, 그 눈동자에 담긴 나를 가만히 살펴봤다.

J님은 폭이 좁고 긴 눈을 가볍게 뜨고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똑똑히 눈을 맞춘 상태에서, 우리 두 사람은 계속해서 침묵했다.

 

먼저 입을 연 건 J님이었다.


“미안하다.”

시끄럽게 노래해서 미안했다, 다음에는 조용히 할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J님은 미안할 게 없어요. 제가 미안해요. 뭐라 할 말이 없어요. 너무 미안해서.”


누가 미안하냐, 놓고 내기라도 하듯, 나와 J님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J님, J님이 저 보다 열 살 넘게 많잖아요.

언니니까…. 저를 용서해 줄 수 있어요?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이런 말조차도 너무 미안해요.”


“응.”


J님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에 나는 지난 한 달간 스스로 정죄하고 경멸하며 

이 나이 먹고서도 소리 내어 울게 했던, 

나를 짓눌렀고 갉아먹던 가시 돋친 감정에서 아주 조금은 자유롭게 됐다. 

물론 ‘사회사업가다움’을 놓고 평가하라, 하면 '자신 있다'라고 할 순 없다. 

떳떳하지 못한 실천이고 수년이 지나서도 아마 ‘흑역사’로 치부될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로 써서 배포하고 스스로 '박제’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반면교사 삼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이런 실수, 실패에도 배움은 있다.




나는 ‘모든 일은 때가 있다’ 같은 말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 말이 마치 각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기준에 맞춰, 

‘나이가 몇 살이면 어떤 과업을 이루어야 하고’, 따위 속박처럼 들린 탓이었다. 

그런데 부서를 옮겨 청년, 중장년 장애인 당사자를 만나가다 보니 이 말에 조금은 공감하게 된다. 

 

아이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때로는 아이의 ‘느림’을 마냥 기다리는 게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마음에 여유를 갖고 기다리다 보면 말문이 트일 수도 있고 걸음을 걸을 수도, 

부모, 또래와 상호 작용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아이도 있겠으나, 그게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가 중요하다. 너무 늦지 않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손을 쓸 수 있을 때, 

가능성이 있을 때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때가 되면 학교에 간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한글 띄어쓰기, 맞춤법을 바로 알고, 

더 많은 영어 단어와 수학공식을 암기하기 위해, 시험 점수 잘 받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만은 아닐 테다.

또래와 관계 맺고 때로는 상처 주고, 상처받고, 그렇게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 

적성을 찾고 진로를 고민하며 사회활동, 경제활동 수단을 찾아가는 곳,

도덕, 윤리, 상식과 규칙을 배워 알아가는 곳, ‘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곳, 

그래서 우리는 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한다. 


학교 나와서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자기 살림을 꾸려보고, 또는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청년, 중장년 ‘때’ 주로 그렇게 한다. 

더 나이 들면 가족을 부양하고, 더더 나이 들면 가족에게 부양받는 그런 ‘때’가 분명히 있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 각자 처지에 따라, 또는 장애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래서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서 나아가면 된다. 

다만, 그게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J님을 보면 그런 지점에서 참 안타깝다. 

물론 부모, 형제가 J님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고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그렇게 돕고 있음에 고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J님의 삶이, 가족의 도움이 ‘안전’이란 틀에 끼워 맞춰져 있는 탓에 

때에 맞춰 이런 것도 배워보고, 저런 데도 가보고, 

이런 사람도 만나보고, 저런 음식도 먹어보고, 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 과정에서 상처주고 상처 받고, 실수실패하고, 

그렇게 어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면

J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은 더 많아졌을 텐데트임의 시기가 조금은 더 빨라졌을 텐데하는 마음이다.


물론 부모, 형제의 처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J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어떤 실수실패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에,

지적 약자로서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안전하게 두고 문을 걸어 잠가 놓고, 꼭 껴안아 지키려는 마음이었을 테다

그래서 그냥, 아쉽다,라고 할 수밖에는 없다. 

안타깝고 아쉽다. 



셀프 박제의 또 다른 이유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J님을 잘 돕고 싶다.

물론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떻게 도와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사회사업가답게’ 도왔다 할 수 있을까. 


지휘자 선생님과 의논하여 J님이 노래하는 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돕고 싶다. 

그래서 연말에 있을 관내 정기연주회에는, 조금 더 욕심내면 내년 합창대회에는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론 J님을 바꾸는 게 아니라, J님의 ‘못함’을 ‘잘함’으로 개조, 개선하는 게 아니라 

J님이 잘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게 ‘사회사업가다운’ 방식이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J님은 대회 여부와 관계없이 노래 듣고 노래하는 것 그 자체가 좋다, 한다. 

꼭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당장 해볼 만한 일은 ‘인사 담당자’ J님의 능력을 중창단에서도 발휘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원 출석을 확인하고 안 온 단원의 안부를 묻고, 걱정염려하고 관심 갖고, 살갑게 먼저 다가가서 예뻐졌네, 잘 생겼다, 칭차하는 일을 부탁하면 분명 J님은 자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십여 년 만에 말문이 트인 J님,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이다. 

새로 배워 익혀야 할 것이 많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는 말에 부분 긍정, 부분 부정하는 이유는 ‘늦은 때는 없다’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기준에는 조금 늦은 게 맞다. 

지난 사십여 년을 여러 상황 탓에, 환경 탓에 경험하고 배우고 익혔으면 좋았을 일을,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면 된다. 


열한 살 많은 우리 J님, 늦게 트인 말문만큼이나 또 어떤 능력이 갑자기 트여 귀한 빛을 발휘할지,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사회사업가 나는 그런 J님 곁에 서서 그 '빛'이 

J님 자신과 그 주변에 널리, 깊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J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혹여 열한 살 어린 이 동생이 가끔 실수하더라도 용서하고,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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