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그리고..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듯이 흐르는 시간도 막지 못한다.
인간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생존한 사람도 없으며 나무도 없으며 동물도 없다.
모두가 시간이 가면 자연에 귀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 하나 있다.
남자는 마누라를 이기지 못한다.
이건 세상의 이치이며 자연의 법칙 같다.
이제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깨달은 나의 근거가 있으니 이러하다.
첫 번째 근거는 세상 모든 남자들은 여자인 엄마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태어난 자기 고향이 엄마라는 것이고 심적인 안식처일 것이다.
생명이 만들어지고 자라는 10개월 동안 가장 안락하고 평안한 보금자리가 엄마의 뱃속이었다.
남자는 안식을 여자의 언어와 품을 통해 느끼는 게 당연한 결과이리라.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결혼할 여자를 마음에 두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자기의 마음을 받아주고 편안히 안길 품이 되어줄 상대가 아닐까?
두 번째 근거는 갓난아기는 엄마의 손에 길러진다는 것이다.
엄마의 언어인 모국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긴 시간을 교감하니
아무래도 여자의 말에 순응하는 마음이 무의식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엄마인 여자에게 맞춰지기 쉬울 것이다.
더군다나 엄마의 손길로 전해지는 따스함과 행복이 남자의 풍요로운 정서로 자리매김하니
여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당연히 남자는 흔들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세 번째 근거는 결혼을 하고 나니 마누라가 있는 곳이 집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거지가 되고 빙빙 돌다가도 되돌아갈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본향 같다고 해야 할까?
긴 외국 출장 중에 깨달은 뉘우침이었다.
약관의 나이 때는 주변이 신기하고 볼거리가 많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없다.
이립과 불혹에는 한창 사회에서 성장하고 다듬어지는 시기가 되니 세상의 중심이 본인 같다는 착각을 한다.
그리고 지천명에 이르면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듯 비로소 자기를 알아주고 품어주는 마누라를 발견한다.
출장이 석 달 째로 이어질 때에 혼자 지내는 외로움이 상당했다.
일이 어렵거나 고달픈 건 힘든 것이 아니었다.
모르거나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집중력과 시간이면 해결할 수 있었다.
듣기를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건 눈치와 바디 랭귀지로 극복하면 되었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셔도 풀리지 않는 긴장이 남아 있었다.
차곡차곡 3개월에 걸쳐 쌓여만 가는 공허함은 깊이를 더해갔다.
공항에 도착해서 아이들과 마누라를 보는 순간 고향에 왔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가슴속에 쌓여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땅에 비행기가 내렸을 때에도 깊은 안도는 오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반대의 상황에서도 있었다.
가족이 이곳에 살고 한국으로 출장을 가 있을 때에도 그랬다.
심지어 한국에는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들도 많았는데도 출장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같은 감정이었다.
마누라가 있는 곳이 고향이다.
싸우면 징글징글 밉다가도 한 이불을 덮고
만취해 돌아온 남편 밉다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주는
마누라를 누가 이길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