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대 AI
영화를 좋아합니다.
주로 SF 공상 과학 영화류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단연 터미네이터 2를 좋아합니다.
제임스 카메룬의 상상력은 미친 것 같아 보입니다.
두 개의 터미네이터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인간을 보호하기도 죽이기도 하는 설정이라 충격을 먹었습니다.
아시모프의 로봇의 제1원칙을 가볍게 무시하고 인간을 살상하는 로봇의 출현은 소름이 돋을 만큼 두려움과 흥미를 주었습니다.
최근 AI 관련한 영화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인공지능 로봇 영화가 많다고 해야겠지요.
인간에게 주는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어느 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고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성을 갖는 것이 이상하고 두렵게 보일 겁니다.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스카이넷은 자신의 파멸이나 지구의 파괴를 인간으로부터 막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킵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기 학습에 의한 결정을 스스로 도출한 것이지요.
이 부분이 인간의 사고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인간이 교육하고 학습을 시키고 명령에 반응하는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너무 깊게도 생각하지 말고 너무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 잘 듣는 로봇 인형에 불과할 겁니다.
돈만 지불하면 됩니다.
키울 필요도 뭘 먹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착한 말벗 친구가 될 겁니다.
반면 여기 말을 듣지 않는 인형이 있습니다.
자식입니다.
욕으로 쓰는 짜식 말고 나를 닮은 자식입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목청껏 울어 재끼고 덥다고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하여간 적응될 때까지 울어댑니다.
아직 세상 적응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 부모가 고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애지중지하고 금지옥엽으로 보살핍니다.
소중한 인형을 다루듯 항상 조심스럽게 키웁니다.
밤이건 낮이건 심지어 새벽이건 상관없이 싫다고 울어대도 부모는 자식이 울지 않을 때까지 노력하지요.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이런저런 주장을 합니다.
이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울어대던 인형이 이젠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답답할 노릇이지요.
세상 적응 프로그램은 작동 중인데 자기주장과 욕구가 확실합니다.
부모 말고도 친구가 있고 선배 후배가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사회 프로그램을 나누고 비판하고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갑니다.
자아가 만들어지고 또 자아가 발전하는 여러 번의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일어납니다.
인격은 DNA 가 품고 있는 성질로부터 이렇게 여러 번의 자아가 발전하며 만들어집니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을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요.
말 잘 듣고 편한 AI 인공지능이 다루기는 쉽겠지만 ‘사랑’을 말로 나눌 수가 있을까요?
명령하면 듣고 할 일을 프로그램대로 잘한다고 좋아한다면 그건 독재 스타일입니다.
울어대고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도 보살피고 가르치고 길을 만들어주는 힘든 노력을 부모는 실행합니다.
다툼이 있고 갈등이 있지만 정을 나누고 사랑을 느끼고 동화되는 가족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말을 듣지 않는 인형은 발전해서 정을 나누는 가족이 됩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가 아이 낳는 걸 주저한다고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인공지능의 발달이 아이들 양육에 전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효과를 보면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늘겠지요.
한국인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인구감소가 심각하다니 발달된 인공지능이 인구증가의 돌파구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