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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업 Aug 22. 2024

코로나19로 시댁과 함께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다니...

결혼준비 중에


시댁 식구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시할머니, 시이모네 가족,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평소 시할머니의 소녀스럽고 귀여운(?)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시할머니를 위한 선물도 사서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남편이 시할머니를 모시러 간 사이,


나는 덩그러니 시댁식구들과 남겨졌다.


시댁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섞여있어서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빈번했다.





어머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글로업아! 맥주 좀 냉장고에서 꺼내와라."


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시이모가 한마디 한다.


"벨 누르면 되지, 뭘 가져오라고 시켜 언니~!"




그 말에 어머님이 답한다.


"나도 이제 며느리 얻었으니,


며느리 좀 부려먹어야지!"



누구... 누구????

뭔데 뭔데???

나??????

진짜 나래???

뭐라냐 진짜....




그런데 저 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친척이든, 아버님이든


그 어느 누구도


어머님의 말이 잘못되었다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뭐지?


또 나 혼자만 물음표다.


이런 궁금함으로 공부를 했다면 하버드도 갔겠다 싶다.





사실 나란 사람은


학창 시절에 FM 모범생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FM 모범생의 특징은


어른들의 말에 잘 순종한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하며


일명 '착한 아이', '좋은 학생'으로 살아왔다.




그런 내가 결혼을 앞두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룰 사람들에게


마음 쑤시는 얘기를 하기에는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 반대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한다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도 나도 순한 성향의 사람이기에


시어머니가 어떻게를 한들


'집에서 남편과 살지 시어머니랑 사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참 어렸고, 무지몽매했다.)


(역시... 자수성가한 고아를 만나는 게 답이었나 보다 ㅋㅋ)





더불어 결혼 전과 결혼 초반에는


시댁 문화를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시댁 식구들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을 하고 비슷하게 행동해보려고 했었다.


내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이 새로운 가족들에게는


무례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며느리를 부려먹어야겠다는 말에


아무도 대응을 하지 않는 걸 보면서


'어머님 말에는 토를 달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을 남긴 채


그날의 식사는 끝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준비를 이어갔다.


남편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는


크게 부딪히는 일이 없었기에


서로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준비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중국에서는 길에 가던 사람이 갑자기 픽 쓰러질 정도로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유행을 하기 전,


5번째 확진자가 나왔다고 할 무렵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우리는 하와이로 신혼여행 계획을 세우며


한껏 들떠있었다.


여행사도 끼지 않은 채


항공, 호텔, 렌트카, 액티비티를


모두 직접 예약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러다 우리 신혼여행 못 가는 거 아니야?"


저 불길한 생각이 들 때쯤,


슬슬 하와이 액티비티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그리고 그 복선은 곧 현실이 되었다.


하와이 신행 전면 중단.


사실 하와이뿐만 아니고


글로벌 시대에 하늘길이 막히는 걸,


더불어 내 신행도 막히는걸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예약했던 하와이 모든 업체들에


취소 메일을 돌리면서


씁쓸했던 그 기억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 신행!!! 내놔!!!!!!!)






 






그렇게 우리는 우리 부모 세대가 그러했듯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다.




불길함은 이렇듯 현실이 되곤 했다.




제주도 신혼여행을 계획할 때,


나에게는 한 가지 불안감이 있었다.




시댁 식사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시이모네가 한집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바로 제주도에.




막내이모부는 자수성가한 고아는 아니고


그냥 자수성가하신 분이었다.


막내이모와 이모부는 젊으셨고,


우리와 대화도 잘 통했다.




사실 나는 결혼 전부터 고부갈등 없는 삶을


간절하게 꿈꿨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마음 편하게 대해 주시는


막내이모부부는 늘 나에게 시댁식구 중에서


안식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자녀들을


제주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에,


마음씨 또한 고와서


우리 부부에게도 늘 친절을 베푸셨다.


(베풀어주는 물질보다 마음 편한 게 더 좋았다.)




그 친절은 연애 때부터 시작되었다.







결혼준비를 하기 직전,


나는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는데,


아픈 몸으로 데이트를 즐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무렵 한강에 불꽃축제가 열렸다.


이모부는 우리를 세 차례 초대하셨지만,


어른 말에 순종을 잘하는 내가


그 제안을 3번 모두 거절할 정도로


내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런데....


4번째 제안이 들어왔다.


이쯤 되니 거절을 하기도 죄송해서


그냥 가보겠다고 답했다.




보통 한강 불꽃축제는


명당을 찾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이모부는 요트를 대여하셨다.



응???

이건 또 뭐다냐...



그 요트를 대여하시기 전에


지인분들을 초대해서


한강에 있는 레스토랑을 대관해


식사를 하셨는데,


거기에 최소 인원이 모자라서


우리 부부를 계속 초대하셨던 것이다.


(헤헷... 나 땜빵인 거야??)


(응 맞아.. ㅋㅋ)







그런 친절은 우리의 신혼여행 때도


계속되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문이 날개처럼 열리는 차를


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렌트카를 사랑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렌트카.




그분들은 우리를 위한 호의를 베푸셨지만,


때가 때인 만큼


렌트카를 빌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눈치를 팔아먹은 남편은


돈도 아끼고 좋지 않냐며


이모부 차를 타자고 했고,


수적 열세에 몰린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생각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여행 중 3일을


시이모네 가족과 함께 했다.


물론 모든 시간을 함께 한 건 아니지만,


차를 빌리러 가는 날, 차를 반납하는 날,


호텔 뷔페 식사도 함께 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골프 제안을 하셔서


나는 쳐보지도 않은 골프였지만,


시댁 식구들에게 맞춰준다는 의미로...


그들의 문화를 관찰해 보자는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신혼여행 일정을 하루 더 늘려서까지...)


(나란 인간.... 왜 그랬니.... ㅋㅋ)


(후비적)

 







신혼여행의 모든 시간이


불편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편한 여행도 아니었다.


신혼여행은 우리 둘만의 여행이어야 했고,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신혼여행=[시논여행]=시 Non여행

(시댁은 없어야 하는 여행 ㅋㅋ)





그 깨달음과 함께 한 가지 얻은 게 또 있다.


친절 울렁증









사람들은 남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는 게


재밌다고 한다.


불구경이 재밌다고 하듯.




사실 이모와 이모부는


신혼여행 중 어느 날 저녁에,


투어 가이드까지 자처하셨다.





서로 우리에게 더 좋은


제주도의 스팟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를 차에 태우고


중간에 다투셨고,


신혼여행에서 시이모부부의


부부싸움 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다채로움 그 자체인  


꿀잼(?) 여행이 되어버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신혼여행.


나름 스펙터클 하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내 인생 Why라노...


(누구한테 묻는겨...)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출산을 하고 나면


결혼 생활의 판도가 바뀐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분들은 좋은 쪽으로 판이 바뀌었다는 사례를 들며


빠른 임신을 나에게 권유했다.




그렇게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에 대한 마음을 열게 되었다.




임신을 하고 난 후,


또 다른 쓰나미가 몰려올 것은 미처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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