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도끼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부친의 표정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 밝지만은 않았다. 그의 옆에서 총명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는 여자가 바로 메리 김 워커의 모친이었다. 메리는 원래 모친의 이름이었다. 성은 아무도 몰랐다. 누구에게나 그녀는 메리로 통했을 뿐이었다. 훌쩍 큰 키에 붉은 갈색머리 가늘게 찢어진 회색 눈과 두꺼운 입술, 여러 인종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의 메리는 스스로 글과 셈을 익히고 야생말을 길들여 탈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고 강한 여자였고 그래서 남의 농장에서 사탕수수나 따며 지속적인 겁간을 당하던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누런 얼굴의 목동 한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딸을 낳았다. 딸의 이름도 메리가 되었고 그녀와 구분해 메리 김이라고 불렸다.
메리 김의 부친은 평소 침착하고 내성적이었으나 주인에게 당한 일로 화가 나서 집에 오는 날에는 아내와 딸에게 화풀이하느라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둘렀다. 모친은 맞고만 있지 않고 대들었고 딸이 맞을 때는 대신 덤벼들어 남편을 깔아뭉갰다. 좁은 집에서 어른 둘이 엎치락뒤치락 시끄럽게 치고받고 싸우며 집을 엉망으로 만들면 깨진 그릇을 치우고 바닥을 쓸고 식탁 의자를 제자리에 놓는 일은 어린 메리 김의 몫이었다. 모친은 몇 번이나 어린 메리 김을 데리고 떠나려고 했으나 다시 돌아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숲까지 멀리 간 그날에도 모친은 오던 길을 자꾸만 돌아보다 언제 누가 놓았는지 모를 녹슨 덫에 발목이 잡혔다. 메리 김은 두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안고 떠나온 집을 찾아 숲을 뛰어다녔다. 출혈하며 기진맥진 방치되어 있던 모친은 그녀가 돌아오자 기다린 듯 말했다. 그녀는 모친이 유언으로 남긴 그 말, 그러니까 모친에게 그녀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주저하다간 길을 잃고 죽는다.
메리 김은 모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회색 고양이 같던 두 눈에 빛이 사위어가고 있었다. 뭐라고 했지, 메리 김? 내 귀에다 대고 다시 말해봐라. 멍청하게 쳐다보지만 말고 내가 한 말을 따라서 말해 보란 말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모친은 메리 김을 다그치고 있었다.
주저하다간 길을 잃고 죽는다.
메리 김이 그 말을 귀에다 대고 속삭였을 때 모친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열두 살 메리 김은 다시 집을 찾아 숲을 헤맸고 부친과 함께 돌아와 구덩이를 파고 모친을 묻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방에 들어선 그녀는 아직 불씨가 남은 화덕에 불을 지폈다. 장작을 집어넣고 불꽃이 일기를 기다렸다 찻주전자를 화덕에 걸었다. 찬장에서 꺼낸 딱딱한 빵은 뜨거워진 주전자 뚜껑을 뒤집어 그 위에 올려놓았다. 국그릇 같은 사기잔에 말린 찻잎을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말랑해진 빵에 산딸기를 따서 졸여 만든 잼과 땅콩버터를 섞어 발랐다. 그녀는 하루 두 끼의 식사를 비롯해 모든 일과를 정해진 수행의 절차로 생각했다. 바싹바싹하게 구운 빵은 저녁에, 차가운 빵은 아침에 찌듯이 데워먹었다. 구운 빵과 찐빵이 주는 단순하고도 미묘한 맛의 차이는 건조와 농도, 발효에 따라 천차만별인 차와 마찬가지로 끼니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와 거실로 가던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걸린 빨간 액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맛있겠지, 얘야?
사진 속 아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녀는 미소 지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지우고 이번엔 원망의 눈초리로 맞은편 액자를 노려보았다. 워커. 바로 메리 김의 이름 뒤에 워커란 성을 붙여준 남자였다. 사진 속에서 워커는 냉정한 마음을 감추듯 비열한 입 모양을 그리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푸른 눈과 금빛 머리칼,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에 섬세한 윤곽을 지닌 그를 사람들은 종종 ‘미친개’라고 불렀다. 그는 초조하고 변덕스러운 다혈질과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을 숨기려 애쓰면서도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부친이 참전했을 당시 지휘관이자, 부친이 일꾼으로 있던 목장의 주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