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엔나프라하 Sep 05. 2024

3화. 그녀가 강남으로 간 까닭

프로 환불러의 강남행

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의 고3 현역시절 8월 말 회사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나에게 의사는 빨리 큰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고 수술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몇 년 전 자궁에 2센티 정도 하던 혹이 코로나로 건강검진을 꺼린 몇 년 사이 너무 급속도로 커졌고, 정상적인 혹은 절대 이렇게 갑자기 크지 않는다고 암이 의심된다며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이 멍해진 나는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는 부정과 사실이면 어쩌지라는 혼란스러운 틈에서도 의사 선생님께 나는 물었다.


"선생님, 우리 애가 11월에 수능인데요. 수능 끝나고 수술하면 죽나요?"


이 얼마나 눈물 나는 모정인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이의 수능이 우선인 엄마라니..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모성이 강한 엄마였다. 


아무튼 대학병원에 산부인과 암수술이 가능한 곳으로 진료를 받으러 전화를 수차례 돌려 보았으나 어찌 나들 유명하신 분인지 2-3개월 대기는 기본이고 6개월 일 년이 넘는 곳도 있었다.


그나마 대기가 덜 한 덜 유명한 곳으로 예약하여 정밀검사를 한 결과 다행히 암이 아니었으나 빠른 수술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물었다. 선생님 수능 끝나고 수술하면 안 되나요? 울 애가 고3인데요..



수능이 끝나고 일주일 뒤 수술을 마치고 몸을 회복하러 친정에 가있는 동안 그 처참했던 수능 성적이 나오고 6 논술은 모두 최저 탈락이라 시험 볼 기회조차 없던 그 거지 같던 상황. 그 성적으로 진학사를 돌리다 돌리다 대치동에 정시원서 상담을 해 준다는 곳에 예약하고 상담을 갔다.


아이는 어차피 재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뭐 하러 그런데 상담을 가냐는 아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는지 붙여놓고 재수라도 시키고 싶었는지 기어코 상담 신청을 하였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수술한 배가 찢어지게 아팠으나 한걸음 걷고 쉬고 두 걸음 걷고 쉬고 유명 재수학원의 상담실로 향하였다. 


사실 상담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원서를 넣으라고 추천해 준 곳도 내가 찢어진 배를 움켜쥐고 노트북과 매일 8시간 이상 싸움하며 진학사에서 공부한 내용과 동일하였다. 오히려 내가 더 적합한 곳을 찾아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귓가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 어머니, 지금 아이한테는 정말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기예요. 100살까지 산다는데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애들이 대부분이에요. 단순히 학교레벨 이런 거 생각하시지 마시고 전공을 신중하게 고르세요.


전공을 고를 성적도 아닌데 일단 붙고 봐야지 무슨 소리야 하면서도 가슴깊이 그 조언을 새겼다. 


결국 아이는 강남의 재수 학원에 다니게 되고 남쪽 끝에서 강북의 변두리 끝까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통학하기 시작하였다.  밤 11시 시가 넘으면 졸다가도 울리는 알람에 벌떡 일어나 집 근처 지하철역까지 차로 픽업을 나갔다. 


주말엔 학원이 멀다는 이유로 아닌 학원에 가지 않고 집 근처 스터디 카페에 나갔고 나는 이게 무슨 돈지랄이고 몸고생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학원 앞으로 이사를 가자. 


다행히 부동산이 갑자기 얼어붙었던 2022년 겨울. 사는 집을 급히 매매든 전세든 되는대로 내놓고 때마침 강남의 신축대량공급과 금리인상으로 갑자기 떨어진 강남에 세로 이사를 왔다. 재수 학원을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이었다. 


그동안 학교 진학 시마다 강남의 학군지로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없이 흔들렸지만 꿋꿋하게 강북 끝자락에서 버텼는데, 결국 재수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2화. 프로 환불러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