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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프라하 Sep 10. 2024

8화. 수능 백일기도만 세 번째

딸아 나는 기도를 할터이니, 너는 공부를 해라


십 년이나 넘게 냉담하던 성당을 다시 나가게 된 것은 아이의 재수 때문이었다.

현역 때는 백일기도를 혼자 하였고, 재수 때는 수능기도 백일 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동안 외면하던 신앙심을 되찾게? 되었다.


급할 때만 찾는 것이 신인지라 민망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와 계기로 신앙생활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니 부끄러울 것은 없다고 말씀해 주신 신부님 덕분에 조금 마음의 짐을 덜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하는 것은 당사자인 아이도 힘들지만 부모에게도 무적이나 힘든 나날들이다.

아이가 재수 삼수를 하게 되면 부모는 나도 모르게 죄책감을 갖게 된다.


'내가 서포트를 제대로 못 해 주어서 이 아이가 떨어졌나?'

'내 아이가 이것밖에 안되나?'


그동안 나름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해 왔다고 생각해 왔던 나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과 한심함에서 오는 자괴감부터 아이에 대한 미움, 배신감, 그동안 지출했던 교육비와 학원비가 아깝기도 하고 그간의 모든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에 위축되어 누군가 만나기 싫어지기도 하고 때론 부모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동생에게 "쟤는 도대체 저런 성적을 받아와 놓고는 나한테 미안한 것도 없나 봐." 투덜거렸더니 재수생활을 했던 동생이 대답한다.


"누나, 실제 재수생들은 닥친 본인의 현실에 너무 정신이 없어 아무 생각이 없어요. 본인이 더 당황하고 있고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부모에게 죄송하거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러나 아직은 아니야"


띵똥띵똥 계속 입금 문자가 온다.


삼반수를 하는 우리 집 프로 환불러가 어제 급기야 반수학원비용을 환불하여 왔다.


며칠 전부터 돈이 아깝다느니 혼자 할 수 있다느니 사람 불안하게 계속 환불해도 되냐고 묻더니, 묻지나 말던가 만류하는 내 말은 또 듣지 않고 저지른 것이다.


"학원비를 내더라도 이왕 시작한 삼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낫지 삼수공부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이제와 몇 달 남았다고 환불을 해?"


너무 화가 나서 버럭 질렀더니 아주 태연하게 딸내미가 대답한다.


"엄마, 혼자 할 수 있는데 돈 아깝잖아. 그리고 학교도 가야 하잖아. 그냥 럭키비키라고 생각해~"


"누가 너보고 이제 와서 돈 걱정하라고 했니? 너 혼자 학원에서  하듯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까지 공부할 수 있겠어? 점심 저녁은 또 어떻게 할 건데? 엄마는 널 못 믿겠다. 니 선택이 그동안 다 맞은 건 아니잖아!

그런데 럭키비키가 뭔데?" 처음 듣는 말이다.


"아, 어떤 아이돌이 만든 말인데 그런 게 있어. 그냥 좋은 일이라는 뜻이야. 개꿀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환불받은 돈으로 맛있는 것 좀 사드시고 사고 싶은 옷도 좀 사시고 스트레스 좀 푸세요. 아니면 에어로빅이라도 다니던가.

그리고 엄마는 본인일도 아닌데 흥분 좀 하지 마. 왜 엄마들은 자식을 본인과 동일시하는지 모르겠어. 이제 그만 어머니는 어머니 인생 사세요.  저는 알아서 혼자 공부한다고요. 스터디카페 며칠 가보고 정 안되면 독재라도 들어갈 테니 응원해 줄 것 아니면 괜한 불안감 조성하시지 마시고요.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에 흔쾌히 응원을 하는 법이 없어. 그리고 그렇게 매일 기도도  안 하셔도 돼요. 기도한다고 붙고 안 한다고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


하아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그러는 우리 삼수생님은 본인 공부나 신경 쓰세요. 기도는 제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니 관여하지 마시고요.  정성이라도 보여야지요. 

그리고 원래 부모가 본인을 자식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어떤 성과도 보장되지 않았는데 그 미친 육아비 사교육비를 어릴 때부터 쏟아부을 수 없는 거고요. 

너도 너랑 똑같은 딸내미 낳아서 한 달에 한 번씩 환불을 해오고 학원을 바꾸는 걸  지켜봐라. 각자 인생 사는 거라고 쿨해질 수 있나!"


현역 때는 아이가 수능을 치를 때 가진 힘 최대치를 끌어내어 대박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기도하였고,

재수 때는 그래도 어느 수준 이상의 대학은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삼수인 지금은 그저 당신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아이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자꾸 이 상황이 화가 나는 이유는 처음에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 만족하고 다닐 것을 바랐으면서 삼반수는 반대해 놓고,  이제 와서 이왕 시작한 공부이니 기어이 좋은 성과를 내었으면 하는 나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

9월 모의고사를 보러 가는 오늘 아침에 아이가 불안해한다. 아직 작년 9월 모의고사 때만큼 실력이 안 올라온 것 같다고 한다. 어차피 9월 모의고사는 과정일 뿐 수능이 중요하니 괘념치 말라고 다독여 본다. 


오늘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며 이 글을 써본다. 


내가 오늘도 기도하는 이유는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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