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어릴 적 말괄량이 삐삐라는 충격적인 만화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괴력으로 어른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상상도 못할 장난을 치면서도 약간의 우정과 인간미를 끼워넣은 만화이다.
장난과 농담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도 약간의 교훈적 의미를 담는 걸 의도했겠지만
사실 내 기억속에 남는 건 사악하다 못해 괴이한 여자아이의 웃음과
어른들이 삐삐를 뜻대로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다.
삐삐는 당시에도 상당히 오래된 만화였고 가끔은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삐삐가 지구 건너편 어딘가에 있는 친구라고 믿어버렸다.
나와 비슷한 주근깨가 마치 삼손의 머릿카락처럼 괴력의 원천이라도 되는 양
원래는 좋아하지 않던 나의 주근깨도 썩 나쁘지 않다 여기게 되었다.
사실 나는 어른들을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삐삐의 힘이 매우 부러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그들은 나에게 핀잔을 놓기 일쑤였다.
나 같은 여자아이는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 외에 다른 옵션은 없어 보였다.
난 얌전하게 조용하게 있는 게 더 낫다고 조언 받는 것에 신물이 났다.
한 때는 본인들도 아이였을 텐데 왜 나를 무시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지만
한 살 위의 오빠에게 비슷한 제재가 가해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삐삐가 어른들을 제압할 때마다 쾌감이 들었나보다.
내 옷장에 삐삐처럼 요란한 양말과 옷은 없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축구를 했다.
여자애가 너무 왈가닥이라고 핀잔을 주는 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믿고 살아가는 건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