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차이에 대하여
어떤 집단에 속해 보면 나서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사람과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한 데 섞여있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정말 다른 모양새의 사람들은 항상 공동체를 이루며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서로 협력하며 발전해나가고 있다. 어느 모양이라도 빠지면 안 되는 사회 구성원들이다. 나는 이 가운데에서 ‘나서는 사람’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항상 여러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너무 왜소하고 연약한 체구에 장난기도 많아 반장 선거에서 매번 한 표 차이로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6년 내내 반장 선거에 나갔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교과부장을 하나씩은 꼭 맡아했다. 요즘에는 생기부를 관리하느라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곤 하는 것 같던데, 나의 학창 시절에는 나서는 사람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와서는 1학년 때 과대를 시작으로, 과 특성상 팀플이 많았는데 항상 팀장을 맡았으며 3학년때부터는 학과 조교와 졸업전시준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겸했다. 이때까지는 내가 정말 나서는 걸 좋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기에 따라오는 힘듦과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자초한 일이니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집단의 ‘장’을 맡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고, 모두를 통솔하여 나침반을 제시해야 하며, 뒤쳐지는 이들은 부축해 주며 내가 좀 더 느려지더라도 같이 나아가야 한다. 글로 조금만 나열해도 좋은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이래서 다들 ‘장’을 맡기 싫어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항상 ‘장’의 입장이었기에 이 어렵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비협조적이거나 뒤떨어지는 이들, 포기하는 이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교 3학년 때, 나의 학구열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평생 태어나서 살면서 성적관리를 특별하게 하지 않았던 내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관리를 하던 해였다. 팀플을 진행하며 같은 팀 친구들과 기업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 친구들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 수업 솔직히 버려도 상관없어. 내가 하지 못하는 분야라서 그냥 포기하고 다른 수업에 집중할래.”
팀플이었다. 그 친구가 하지 않으면 나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모두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네 성적이 어떻든 상관없어. 그런데 난 이 수업에서도 성적을 잘 받아야 하거든. 같은 팀이 된 이상 최소한의 자료조사는 도와줬으면 좋겠다. “
팀장이란 것이 정말 억울했다. 팀원들을 정말 원망했다. 정말 외로운 프로젝트였고, 나는 이 친구들이 그냥 이기적이기만 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더 이상 나서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아, 뭘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슴속 꾸물꾸물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신 차려 보니 내가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너무 오지랖 같고, 다들 협조하지도 않는데 나만 인생이 힘든 사람 같아 보였다. 괜히 나서서 튀어 보이는 건 아닌지, 이런 내 모습이 밉보이진 않는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걱정과 억울함만 가득했다.
결국 나는 눈물을 보이게 되었다. 그간 어떻게 단련해 온 멘탈인데.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허무하면서도 이왕 눈물이 터진 거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었다. 내 좁은 마음속 꾹꾹 눌려있던 감정들을 그냥 다 토해내버리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 주변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미 감정은 터질 대로 터져 감추지 못하고 감당도 안 되는 상황이라 전화를 받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분은 날 가만히 기다려줬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서는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그러고 나서 그분이 다정한 목소리로 뱉어낸 충격적인 한 마디.
“사실 나서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지’라는 어떤 책임감으로 억지로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나서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말.. 그리고 나조차도 몰랐던 내 진심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저 말로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외로웠던 마음에 따뜻한 목도리가 둘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은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예요. 나서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나서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그분들도 지인님 입장을 모르고, 지인님도 그분들 입장을 몰라서 생기는 일이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많은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감정으로는 느끼지만 말로 정리하여 내뱉지 않는 이상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것들은 그대로 당연하다고 치부하며 간과한다.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긁어준 것이다.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타인의 말과 행동들도 퍼즐이 맞춰지듯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누구든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내가 아는 나는 결국. 앞으로도 나서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나서지 않는 입장도 고려해 보고 인정하며, 내 입장에 무작정 외로워하지 않고 억울해하지 않는 그런 성숙한 나서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한 번의 미숙한 생각으로 인생의 성장통을 한번 더 겪었다. 앞으로 마주할 성장통이 몇 번이나 남았을지 가늠이 안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몇 번이든 이겨내며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