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웹소설 작가'라고 말할 때 왠지 떳떳하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망한'이라는 수식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12년 전만 하더라도 망한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누구나 처음 글 쓸 때는 한껏 성공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게 마련인 만큼, 나 역시도 당시에는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갈수록, 쓰여진 소설이 한 권씩 늘어날수록, 소설의 양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은 수입을 보며 망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쓴 소설은 50종이 넘는다. 이중에는 초단편도 있고, 4권짜리 분량의 초장편도 있다. 어찌 됐든 꽤 많은 분량의 글을 써왔는데, 50종이 넘는 것도 5년 전에 세어본 것인 데다가 그 후로도 일 년에 서너 종 이상은 출간해 왔을 테니 지금까지 출간한 소설이 거의 70~80 종쯤 되지 않을까, 어림 잡아 추측해 본다. 혹자는 그 정도로 많은 분량의 소설을 써왔으니, 아무리 소설이 망했어도 적은 인세가 쌓여서 웬만큼의 인세를 벌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그동안 꽤 많은 소설을 출간했음에도 대기업 회사원의 연봉 이상의 인세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한 종의 소설을 여러 출판사에서 내는 게 가능했다. 아마도 6년 전쯤만 하더라도 가능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전자책 작가의 수도 지금보다 적었고, 원고 수급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너 군데 출판사에 개정판이란 명목 하에 소설에 수정을 가해서 여러 차례 소설을 내곤 했었다. 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현재에는 웹소설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히트 친 소설을 제외한 소설의 개정판을 받아주는 출판사가 극히 적어졌다. 그래서 과거에는 한 가지 소설을 여러 차례 개정해서 몇 군데 출판사에 문어 다리 걸치듯 소소한 수익을 내던 방식이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전자책이 범람함에 따라 책의 회전율이 빨라졌다. 요즘 에세이의 생태계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에세이는 시류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라클 모닝'이 뜨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새벽 4시의 기적'이라든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직장인이 벌레를 잡는다'와 같은 소설이 발행된다. 그러다가 '게으름'이라는 키워드가 뜨면 '오늘도 월차를 쓰겠습니다'나 '한가한 백수가 잘 사는 법'과 같은 소설이 발행된다. 이처럼 장르소설도 특정 키워드가 뜨면 키워드에 걸맞은, 그러니까 '양산형 소설'이 범람한다. 이렇게 한 달에 범람하는 수백 권의 소설 속에서 살아남아야 돈을 벌 텐데, 그게 잘 안 되다 보니 한 달도 채 못 가서 묻히는 소설이 많은 거다.
쓰다 보니, 왜 망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만 같다. 마치 망한 건 '내 탓이 아니라 망할 놈의 웹소설 시장 탓'이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절로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그러나 망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역량 부족이다. 단지, 말하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느니만큼 혹시라도 나처럼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각오하고 이 판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근래에 웹소설이 뜨면서 웹소설가가 쓴 집필서가 종종 출간된다. 대개는 성공한, 그러니까 적어도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에서 조희 수 100만 이상을 기록한 작가들이 쓴 책이다. 성공한 작가가 쓴 책은 그만큼 힘을 갖는다. 그들이 쓴 책을 보는 작가지망생들은 '나도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어!'라며 주먹을 불끈 쥘 테니까. 더없이 좋은 책이지 않은가. 나도 망하기 전까지는 성공한 작가들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가 망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고, 주변에 다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작가들을 보다 보니 꿈과 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글은 '망한 작가'가 쓴 글이므로 절대로 '성공한 작가'의 노하우를 알려줄 수 없다. 만약 성공한 작가의 경험담과 노하우 등을 알고 싶다면 이 글이 아닌, 시중에 나온 작법서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서는 오직 '망한 소설들을 연속적으로 출간하면서 어떻게 가늘고 길게 작가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노하우만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나와 같은 작가들이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성공한 작가의 노하우보다는 내가 쓴 글이 더 실용서적으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쯤 해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웹소설가가 왜 되고 싶은가요?"
만약,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 웹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아마도 수많은 좌절을 해야 할 것이다. 뜻대로 안 풀리는 일이 매우 많을 것이며, 늘 자괴감에 시달려야만 할 것이다. 가끔 작가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들을 본다.
"다들 작가 된 지 몇 년 만에 성공했나요?"
"저도 언젠가는 대박을 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지만, 대박에 대한 간절함을 너무도 잘 알지만, 이런 물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질문은 정말이지 뜬 구름 잡는 얘기나 다름없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물음은 마치 "언젠가 저도 로또에 당첨될 수 있을까요?"라든가 "저도 노력하면 강남에 건물 한 채는 지을 수 있겠죠?"라는 물음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너무나도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많고, 글 좀 쓴다는 작가들이 모인 곳이 바로 웹소설판이니까. 요즘에는 그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방송 작가 출신도, 시나리오 작가도, 카피라이터도 웹소설판에 모여든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경쟁이 심하겠는가?
그러니까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저는 글을 안 쓰면 죽을 것 같아요"라든가 "글이 제 유일한 숨구멍입니다. 돈 못 벌어도 좋으니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게 해 주세요"라는 소박한 바람의 지망생에게만, 웹소설계에 뛰어들라고 하고 싶다. 그런 작가들은 비록 큰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필자 역시 '망한 웹소설 작가'라고 스스로 칭하고 있지만, 실은 내 직업을 대단히 뿌듯하게 여기며, 지난 12년 간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하고 글만 써서 먹고살았음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니 '망한 웹소설 작가'가 자조적인 의미와 더불어 작가 나름의 자긍심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