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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Jul 26. 2024

라떼의 웹소설 시장은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은 왠지 꼰대가 말문을 열 때 하는 말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잘 나가지 않지만 왕년에는 잘 나갔다는 말이 그 뒤를 이을 것도 같고.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시절, 그 시절의 웹소설 시장은 그야말로 태동기였다. 아니, 당시에는 웹소설이라는 게 없었다. 그때는 인터넷에 쓰여진 글들을 '인터넷 소설'이라고 불렀다. 딱히 소설 전용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어딘가에 글을 쓰고 그게 반응이 좋으면 종이책으로 연결되곤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유행했던 책 제목들을 기억한다. '엽기적인 그녀', '늑대의 유혹', '메리대구 공방전'과 같은 소설들. 각 에피소드마다 굉장히 웃긴데다가 이모티콘이 난무했던 소설들. -_-. ^^;;. ㅇㅅㅇ와 같은 귀여운 이모티콘이 글과 함께 실려서 이게 책인지, 낚서인지 모르겠다며 비난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모티콘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유행했던 책들은 하나같이 경쾌하고 재밌었으며, 또 드라마나 영화로 크게 히트를 치기도 했다. 대부분은 청춘 로맨티 코미디였으며, 당시 10대~20대 여성들의 마음을 뿌리 째 쥐고 흔들었었다. 당시 청춘 스타였던 전지현, 강동원과 같은 배우가 원작 소설 영화에 출연했으니 얼마나 굉장했겠는가!


내가 '인터넷 소설'을 빌려본 곳은 동네 책 대여점이었다. 당시 동네마다 책 대여점이 한두 군데 있기 마련이었고, 대여점에는 일반 소설, 패션 잡지를 포함해 가볍게 볼 수 있는 '인터넷 소설'도 책꽂이 한 켠에 꽂혀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소설 말고도 '청춘 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도 있었는데, 대개 젊은 여성을 겨냥하는 로맨스 소설이었다. 소설마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넘쳐났다. 고등학생 때 엄마 몰래 '하이틴 소설'을 몰래 빌려와서 참고서 밑에 깔아두고 읽는 그 맛이란. 어쩌면 요즘 나오는 현대 로맨스 소설의 시초가 20년 전의 하이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터넷 소설이 나오고 나서 10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책 대여점은 있었고, 대여점 책꽂이 한켠에 로맨스, 판타지, 무협 장르의 소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한국에 정확히 언제부터 본격적인 로맨스 소설이 등장했는지 알진 못 하지만, 대개는 할리퀸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고등학생 시절 성에 일찍 호기심이 생긴 반 아이들이 교실 뒤편에서 키득거리며 할리퀸 소설을 읽고 흥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니까. 그런데 당시에 한국 로맨스 소설이 많이 나와 있다고는 해도 전자책으로 나오진 않았었다. 대개는 출판사와 종이책 계약을 맺고 종이책으로 발행되어 서점과 책 대여점에 대여되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부터 무료 연재란의 터줏대감이 따로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로망띠끄'. 로맨스 소설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생소할 듯하지만, 로망띠끄야말로 로맨스 소설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네이버 웹소설이 생기기도 훨씬 전에 있었으니까. 지금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많은 작가들이 처음 활동하던 곳이 바로 로망띠끄였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예전만큼의 파워를 보이지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로맨스 소설가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다.


그러다가 몇 년 더 흐른 시점에 네이버에서 '웹소설'이라는 것이 탄생했다. 시간을 따지자면 문피아가 몇 해 더 앞선 것 같지만, 우리가 요즘 보는 웹소설 형식을 갖춘 건 네이버 웹소설이 더 가까웠다. 당시 네이버에서 웹소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당시 마땅한 연재처가 없었던 작가들은 기뻐했고, 일반적인 책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일러스트가 그려진 웹소설이 낯선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익숙해지는 법.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웹소설이 한 해, 두 해를 거듭해갈수록 자리를 잡아나갔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자 이번엔 카카오페이지에서도 웹소설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웹소설 외에도 '기다리면 무료'라는 획기적인 연재 스타일을 만들었는데, 그게 대박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즘엔 카카오페이지의 가장 좋은 프로모션이라고 하면 '기다리면 무료'부터 떠오르곤 하니까.


요즘엔 무료로 연재할 수 있는 플랫폼이 꽤 늘어났다. 네이버, 카카오, 문피아, 조아라, 블라이스 등. 초보 작가라면 대부분 무료 연재란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다가 운이 좋으면 컨텍이 온 출판사와 연이 닿아서 출간을 하곤 한다. 아니면 각 플랫폼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공모전에 도전해서 수상을 하고 단 번에 스타 작가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또한, 무료연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네이버나 카카오의 유료연재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원고를 투고해서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후 플랫폼의 심사를 통과해서 유료 연재 작가로서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유료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이미 여러 번 출간 경험이 있는 기성 작가들과 경쟁을 해야 하므로 쉽지 않다. 그러니 처음에는 무료 연재를 하다가 출판사의 컨텍을 받아 투고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쭉 정리해 놓고 보니 확실히 20년 전의 장르소설 시장과 요즘의 시장이 많이 달라졌구나 느끼게 된다. 장르도 다양해졌고, 소재도 다양해졌고, 소설을 쓸 수 있는 연재처도 늘어났고, 출판사도 많아졌다. 또 더 나아가서는 OSMU(One-Source Multi-Use)가 가능한 소설이 많아졌다. OSMU란 하나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즉, 소설이 웹툰화로,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확장하는 것이다. 20년 전 '엽기적인 그녀'나 '늑대의 유혹'이 인터넷 소설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단순히 한 가지 매체로만 확장되었다면, 요즘엔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로도 확장된다.


혹시 '역주행'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웹소설로 히트치면 '역주행'뿐만 아니라, '역역주행'까지 가능하다. 하나의 웹소설이 히트하면 웹툰화가 되고, 웹툰이 인기가 좋으면 드라마화나 영화화가 될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나 영화가 잘되면 뮤지컬이나 연극으로도 만들어지고, 해외에 판권을 팔아서 중국판 '엽기적인 그녀', 일본판 '엽기적인 그녀'가 만들어질 수 있다. OSMU가 활발해질 수록, 당연히 원작을 보고 싶은 이들도 늘어서 덩달아 책이 잘 팔리는 건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 이거 엄청나잖아!"


정말 이렇게 써놓고 보니, 웹소설 시장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요즘엔 OTT 서비스까지 합세해서 웹소설 기반 콘텐츠가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크게 확장되기까지 했다.


결론은, 그래서 난 오늘도 웹소설을 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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