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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Jul 29. 2024

아직도 웹소설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웹소설은 유치해

대개 웹소설  작가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분개한다. 마치 자신이 공격당하는 것처럼 마음이 쓰린 것이다. 웹소설을 함부로 얕잡아 보는 말을 들은 작가들은 일제히 반격에 나서곤 한다. 본인은 그런 유치한 소설로 연 1억을 번다는 둥, 그렇게 쉬워 보이면 네가 한번 써보라는 둥, 원래 대박 난 콘텐츠들은 하나같이 같이 다 유치하다는 둥 하면서 말이다. 유치하게 공격했으니, 유치하게 반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일이다.

어느 예술 협회에서 중견 창작자들의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워크숍의 제일 마지막 날. 창작자들은 다 같이 한 맥주집에서 모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한 강의실에서 매주 1회 이상 얼굴을 본 사이들이었지만, 심층적인 대화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등이 있었는데, 그중 영화 시나리오 분야에 종사한다는 한 창작자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웹소설은 좀 유치하지 않아요?"


내가 웹소설 작가라고 소개한 뒤였기에, 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반격 없이 맥주 한 잔을 홀짝이며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건,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막 네이버 웹소설이 탄생했을 때였다.

친한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책에 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내 입에서 대뜸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네이버에서 웹소설이 나왔는데 유치하더라고. 금방 쓰겠던데."


친구는 적당히  맞장구쳐주었다.


"오! 그래? 그럼 한번 도전해 봐."


친구의 말에 힘입은 난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 도전했고, 안타깝게 고배를 마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웹소설을 우습게 여겼던 건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웹소설이 처음 생겼을 당시, 이미 로맨스 소설을 전자책으로 몇  권 출간한 이후였기 때문에 자신감이 지나치게 충만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 왜 웹소설을 처음에 무시했을까? 아마도 웹소설 형식과 너무나도 대중적인 소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네이버 웹소설의 대사에는 대사마다 등장인물의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예를 들어 '춘향전'이라는 웹소설이라면, 춘향이의 얼굴 옆에는 머리 땋은 춘향의 얼굴이, 이몽룡 얼굴 옆에는 도련님 얼굴이 붙어 있는 것이다. 다소 어린아이가 읽을 만한 만화책 같은 구성이었다. 게다가 소재 역시 옛날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가미된 로맨스코미디 스타일이 많아서, 소수의 독특한 소재의 웹소설을 제외하고는 쉬워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막상 웹소설판에 뛰어들고 보니. 그렇게도 유치해 보였던 웹소설이 그 어떤 글보다도 어렵고 힘들어 보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웹소설의 문장은 쉬워 보이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쓰기 어렵다.

쉽고 재밌으면서 흐름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독자들은 웹소설을 핸드폰으로 본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으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대개는 웹소설을 '스낵 컬처'로 소비하기 때문에 잠깐 쉬는 점심시간이나, 회사원들이라면 출퇴근할 때, 학생들이라면 등하교할 때 가장 많이 본다. 그러므로 지리멸렬하게 늘어지는 문장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문 위주의, 톡톡 튀는 문장이 많다. 게다가 요즘 시대에 맞는 적절한 유머를 섞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밈(안터넷 용어)으로 적절히 드립(애드리브)을 치면 독자들이 아주 좋아한다. 물론, 코믹이 가미된 웹소설에 한해서다.


둘째, 웹소설의 소재는 다양한 듯하면서도 다양하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처음 웹소설을 쓸 때 '나만의 기똥찬 아이디어로 쓰면 대박 나겠지.'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단 얘기다. 웹소설은 크게 남성향과 여성향으로 나뉜다. 판타지, 현대판타지, 무협은 남성 독자들이 많이 보는 남성향, 로맨스나 로맨스판타지 또는 BL이나 GL은 여성향 웹소설로 불린다.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그 시대를 풍미하는 소재가 있다는 점이다. 패션이 유행을 타듯, 웹소설도 유행을 탄다. 하지만 그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에 웹소설에서 추구하는 소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판타지에서는 영웅서사, 로맨스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처음 웹소설을 접했을 때 "웹소설은 유치해. 신데렐라 스토리뿐이잖아."라고 불평했던 건, 이 시장에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캐릭터 빨이 중요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중요한 건, 비단 웹소설뿐만은 아니다. 일반 소설에서도 등장인물이 중요하다.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느냐, 아니냐가 소설의 흥망성쇠를 결판 짓게 되니까. 그런데, 일반 소설보다는 웹소설의 주인공의 가장 다른 점은 웹소설 주인공은 지극히 대중적이어야 한단 말이다. 캐릭터를 잘 조형하기 위해선,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내 소설 속 캐릭터는 화가 날 때, 슬플 때, 기쁠 때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할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가상 속 인물을 창조해 내야 한다.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과거 창작자들의 술자리에서 들었던 말을 되새김해 보자.


"웹소설은 좀 유치하지 않아요?"


웹소설에 대해 까막눈이면 모를까, 작가로서 십수 년 이상 구른 난 결코 웹소설이 유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웹소설을 쓰는데 피눈물을 흘리는지 알고 있으니까. 나 역시도 날이 가면 갈수록 소설을 쓰는데 애를 먹고 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캐릭터를 잘 그려내기도 어렵고, 요즘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스토리를 매번 창작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맞아요. 웹소설은 유치해 보여요. 대사도 유치하고, 주인공도 다들 히어로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유치해 보이는 소설을 쓰는 과정은 유치하지 않습니다. 요즘 뜨는 웹소설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주인공이 몇 만 명의 독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시켜줘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는 어느 시의 제목처럼, '멀리서 보아야 유치하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누군가 "웹소설이 왜 존재할까?"라고 묻는다면, 난 첫째도 독자, 둘째도 독자, 셋째도 독자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답해줄 것이다. 그만큼 웹소설은 독자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독자의 도파민을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웹소설은 절대로 독자를 우울, 분노, 패닉 상태로 빠뜨려선 안 된다. 반대로 독자에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끔 해줘야 한다. 독자는 웹소설을 통해서  초능력자가 되기도, 재벌 3세와 결혼한 신데렐라가 되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난 오늘도, 독자님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적어도 내 소설은 '유치'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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