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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Aug 02. 2024

나는 내가 '무당'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한창 무속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다.

내 인생 암흑기였던 시기. 그러니까 엄마가 많이 아파서 5년 이상 살지 못하실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때였다. 평소에도 무속에 관심이 많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날 때문에 불안해서 못 견디겠던 나는 여기저기 점집을 많이 찾아다녔다. TV 속 엑소시스트에 출연했던 무당도 찾아갔었고, 점을 맹신하는 회원들이 우글거리는 사이트에서 용하다는 점집의 전화번호를 몰래 써두었다가 찾아가기도 했다. 심지어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동네를 걷다가도 붉은 깃발과 卍자를 발견하곤 귀신에 홀린 듯이 점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날린 돈이 아마도 몇 백은 될 것이다.


단지, 무당에게 점만 보았던 건 아니다. 무속에 관심이 증폭되다 보니, 무당의 삶 자체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엑소시스트'를 비롯해서 무당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 보았다. 심지어 방송한 지 10년도 더 된 인간극장의 '무속인 편'까지 보면서까지 신비로움에 취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런데 무당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정말 무당은 할 게 못 되었다. 아니, 이런 걸 꼭 방송을 통해 눈으로 확인해야만 아는 거냐고, 누구든 다 아는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난 무당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있었다. 오만 가지 사연을 가진 서민들의 고민들 들어주며 마치 미래를 다 알기라도 하는 양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언을 하는 무당이 멋져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무당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작두 타는 무당을 본 적 있는가?


날카롭게 간 칼날 위에서 체중을 싣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무당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곤 한다. 일명 '내림굿'을 받을 때, 진짜 무당이 되기 전 거쳐야 하는 의식이 바로 '작두 타기'다. 하지만 작두 타는 걸로 무당의 고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짜 무당의 고생은 그 이후부터다. 일단, 무당이 되고 난 다음엔 신당을 차려서 매일 새벽마다 청소하고, 신한테 빌어야 하고, 새벽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 산을 타고 올라서 신한테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온갖 날카로운 무구들을 잔뜩 챙겨서 등에 짊어지고 말이다. 젊은 여자가 한밤 중에 산을 타는 것도, 언제 맹수나 미친 사람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계속 북을 두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신령님~"하고 외치는 것도, 정말이지 온전한 정신으론 못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왜 저런 못할 짓을 하는 걸까? 왜 힘든 삶을 스스로 자처하는 걸까?

무당이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가 '신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란다. '신병'은 몸에 신이 붙어서 무당이 되지 않으면 계속 아프게 한다는 것인데, 무당이 되면 신병이 씻은 듯 낫는다고 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몸이 죽을 것처럼 아픈데 무슨 짓인들 못할까?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으라면 잡아먹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신병'이란 너무나 고약해서, 자신이 신을 받아 모시지 않으면 대를 이어서 내 자식에게까지 내려간다고 하니 받을 수밖에. 어쨌거나, 무당은 숙명인 것이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래서 무당은 이승에서의 내 삶은 없다, 내 몸은 오직 귀신의 것이라고 체념하고 살아야만 한다고 한다.


엉뚱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내가 '무당'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작가인 이유가 무당의 숙명과도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난 돈을 못 벌어도 글을 쓴다. 앞서 내가 십 년 이상 글을 써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스스로를 '망한 작가'라고 자처했지만, 이 정도로 망했으면 대개 글을 접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난 꿋꿋하게 글을 써오고 있다. 중간에 크게 아프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지독한 슬럼프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난 늘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무당과 견주어도 되지 않을까? 한밤중에 무구를 잔뜩 짊어지고 산을 타는 무당처럼, 나 역시 노트북을 등에 짊어지고 카페에 가서 커피값도 못 버는 글을 왕창 써대니까.


"난 작가가 숙명인 것 같아. 얼떨결에 작가가 된 이후로 매 년 수억 씩 벌고 있으니까."


이 말은 숙명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은 작가는 운이 좋은 작가일 수도, 글을 기똥차게 잘 쓰는 작가일 수도, 남들이 알아주는 갓작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숙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글을 써서 이만큼 돈을 많이 번다면 누구든지 글을 쓰지 않겠는가? 연 몇 억씩 버는데, 글을 그만 둘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니 말이다.


'숙명'을 사전에서 검색해 보았다. 영어로는 fate, destiny. 국어로는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문장 앞에는 '피하고 싶지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니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절대로 가야 하는 길인 것이다. 어찌 보면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걷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쉽고 편한 길을 놔두고 일부러 험한 길을 자처하며 뙤약볕이 쬐는 와중에도 발을 질질 끌며 목적지를 끝도 없이 걸어가니까.


 '무당'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고행자'다.

돈이 안 벌려도, 독자들에게 별점테러를 당하고 무시당해도, 친척들 모임에 인정받지 못한 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어도, 난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써나가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작가로서의 숙명을 타고났고, 죽을 때까지 내게 주어진 일이 글무덤을 만드는 일밖에 없다는 듯, 스스로 자처해서 고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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