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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Aug 05. 2024

그래서 12년 동안 글 써서 얼마 벌었냐고요?

지난 12년 동안 얼마나 벌었는지 밝히기 전에 내 수입은 무척이나 들쭉날쭉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대개 프리랜서가 그렇듯 작가 역시 일정한 수입이 없다. 어떤 달은 '이 정도면 성공한 작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들어오고, 어떤 달은 '이대로 벌다가는 굶어주겠다'싶을 만큼 들어온다. 그래서 적은 돈이나마 적금을 들어두고 각종 보험으로 예비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난 MBTI의 끝자리가 J인데도 불구하고 크게 계획적이지 않다. 글을 쓸 때도, 돈을 관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강 어느 정도의 계획만 정해두고 세부적인 건 그때그때 상황 봐서 해결한다. 그러니까 50만 원의 인세가 들어오는 달이 있고, 200만 원이 들어오는 달이 있다면, 크게 인세에 개의치 않고 쓸 돈은 쓰고 본다. 적금은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여태까지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거나, 대출을 받아야 했던 적은 없었다. 가계부도 삼사 년부터 쓰게 되었는데, 이것도 각 출판사마다 들어오는 인세만 기록해 놓았다 뿐이지 지출 내역을 세세하게 기록하진 않았다.


내가 가계부를 일부러 꼼꼼하게 쓰지 않는 까닭은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서다. 가계부가 꼼꼼하면 꼼꼼할수록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다. 게다가 슈퍼에서 천 원짜리 초콜릿 하나 사는 데도 고심해야 하고, 친한 친구를 만나더라도 시원하게 한턱 내기가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돈 관리는 대충 하고 있다. '이번 달은 백 정도 벌었네. 조금 아껴 써야겠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대충 가계부를 기록하고 있으니, 내가 정확히 12년 동안 얼마나 벌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충'이라는 말을 끼워 넣는다면, 한 1년에 1500~2000만 원정도 벌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 돈은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나 가끔 받았던 부모님으로부터의 용돈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12년 동안 작품을 내왔으면서 그것밖에 못 벌었나요?"


나도 참 의문이다. 내가 처음 작가의 세계에 발을 담갔을 때는 참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매년마다 책을 출간하면 차곡차곡 인세가 쌓여서 10년이 지났을 땐 목돈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는 말이 아닌가? 일 년에 책을 4권씩 낸다고 가정하면, 10년이면 40권이 아닌가. 12년이면 48권이고. 한 권당 10만 원씩만 받아도 480만 원이 아닌가 말이다. 매달 480만 원씩 받는 작가 생활이라. 이따금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묵으며 글을 쓰기도 하고, 글이 안 써질 때면 노트북 하나 달랑 챙겨서 보라카이 같은 곳에 놀러도 가는 자유롭고 우아한 삶. 나도 꿈을 안 꿔본 건 아니나, 나중엔 이 모든 게 헛된 희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 한 권당 10만 원의 수익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걸 간과했으니, 소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 팔린다는 사실이다. 대박을 쳐서 플랫폼과 출판사에서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꾸준히 홍보해 주는 작품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수익을 낸 작품은 1년은커녕 반년이 지나면 묻히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1년이 지나면 아예 안 팔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팔리긴 팔린다. 다만 팔리는 권수가 너무 적어서 과잣 값, 치킨 값을 면치 못해서 그렇지. 작가들끼리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주고받곤 한다.


"나 치킨 값 벌었어."

"나보다 낫네. 난 과잣 값 벌었잖아."


여기서 '치킨 값'이란 말 그대로 치킨 사 먹는 값이다. 작가들마다 치킨 값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에는 논란이 있긴 하다. 어떤 작가는 치킨 한 마리 값을 '치킨 값'이라고 칭하는 반면, 다른 작가는 치킨 서너 마리 정도 사 먹을 10만 원정도를 '치킨 값'으로 칭하기도 한다. '과잣 값'도 마찬가지. 몇 천 원 벌었다는 얘기다.


"거짓말. 어떻게 인세가 과잣 값밖에 안 나올 수가 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히 오래된 책들은 몇 천 원 밖에 안 나온다. 아니, 3년 정도 넘어가면 아예 과잣 값마저 안 나오는 책도 있다.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만 원하는 데다가, 오래된 책일수록 안 팔리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럼 이쯤 해서 왜 책을 많이 냈다 해도 벌이가 시원치 않은지 눈치챘을 거다. 책의 권수가 인세와 비례하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책이 출간한 첫 달에는 200만 원 벌었지만, 다음 달에는 100만 원, 아니 50만 원으로 뚝 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점점 떨어지다가 반년쯤 지난 후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 되어서 '치킨 값', '과잣 값'이 된다.


'티클 모아 태산'이라지만 쫌쫌따리 몇 만 원이 모여봤자 그리 큰돈이 되진 않는다. 물론 핸드폰 요금이나 보험료 등을 납부할 순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삼사 년 전 끼적였던 글 덕분에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보내고 있으니 크게 불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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