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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반달 Aug 09. 2024

40만 원으로 전업 작가 되기

십수 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에 난 어느 회사의 계약직 직원이었고, 여름 끝무렵 쯤해서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계약직 직원이었기에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나와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재계약을 하려고 고군분투할 것이다. 눈에 띄게 부쩍 성실한 모습을 보이거나, 실적을 갑자기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인사과 담당자의 눈에 잘 들도록 애쓸 터였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가 나와 재계약을 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냐고?

아니, 그런 건 없었다. 모아 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어디 좋은 회사에 면접을 봐서 붙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난 회사가 너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어서 빨리 계약 종료날이 돌아와서 이 지긋지긋한 계약을 끝내주었으면 했다. 사실 난 회사원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것도, 수직적인 관계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하다 못해 동료직원들과 카페에서 잡담을 하며 다른 직원들 흉보는 것도 힘들어했다. 이런 나 같은 인간은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하루살이 프리랜서 같은 운명이 찰떡인지도 모르겠다.


원체 난 프리랜서가 잘 맞는 사람이었고, 규율이나 규칙에 얽매이거나, 동료들과의 협력을 힘들어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는 건 그동안 힘든 회사생활을 견뎌낸 데에 내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내 발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계약 기간이 끝나서 관둔 것이니 떳떳하기도 했고, 실업급여까지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몇 년 다니지도 않고 퇴직금에 실업급여라니. 정말이지 달콤했다. 그런데 퇴직 후엔 그보다 달콤한 꿀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회사를 나가면 그동안 쓰고 싶었던 글을 원 없이 있다는 점이었다.


퇴직하기 몇 달 전 일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난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다음 카페의 작가 동호회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에 회원들이 쓴 짧은 글들을 클릭해 보았다.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인터넷 소설에 영향을 받은 회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게시판에 자기가 쓴 글을 시리즈물로 기고했다. 3천 자 정도의 글을 조각조각 잘라서 시리즈물로 업데이트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웹소설의 형식과 비슷한 것도 같다. 어찌 됐든 키득거리며 몇몇 글을 클릭해서 보던 난 며칠이 지나자 그들과 똑같이 소설을 게시판에 연재하고 있었다.


내 첫 작은 정말이지 졸작이었다. 로맨스라고는 하는데, 전혀 로맨스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글이었다. 로맨스보다는 리얼리티 피폐물에 가까웠던 글. 남자 주인공이 무려 세 명이나 나오고, 세 명 다 여주인공에게 관심이 있기에 역하렘물이라고 볼 순 있지만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닌 세드엔딩이라는 점에서 장르소설의 특징을 완벽하게 빗나간 소설. 난 그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내가 마치 봉준호 영화감독이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했었다.


회사의 계약 기간이 끝나갈 시점은 내가 이제 막 소설에 재미를 느낌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니까 계약 기간이 끝나서 실업자가 되는 마당에 내 머릿속엔 재밌는 스토리가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불쌍한 처지인 내가 그토록 태평할 수 있었던 거였다.

퇴사를 앞두고 다른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같은 부서 직원들과 환송회를 하면서도, 인사과 담당 직원과 차를 마시며 퇴직금 얘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건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글 쓸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처럼, 난 계약 기간이 끝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쓴 소설은 퇴직하는 날과 거의 맞물려 발행되었다. 처음 내 소설이 전자책으로 탄생되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당시 난 회사 컴퓨터로 몰래 소설 사이트를 보았고, 다소 조악한 디자인의 내 첫 번째 소설과 두 번째 소설이 나란히 팔리는 걸 목격했다. 그렇게 난 회사를 나오는 것과 동시에 작가가 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전업 작가가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당시에 난 "작가로서만 살겠어!"라는 포부도 없었고, "전업 작가로는 힘드니까 일을 구하고 겸업 작가로 살까?"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당시의 목표는 그저 내 머릿속에 얽히고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난, 전업 작가를 정도로 충분한 인세를 벌지 못했다. 내가 처음 소설로 인세는 40만 정도였다. 정확히는 42만 몇천 정도였던 같다. 그것도 소설 종이 아닌, 종으로 40만 원쯤 벌었으니 종당 20만 원쯤 거였다.


"뭐? 40만 원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고? 거짓말!"


사실 난 거짓말을 잘 못한다. 거짓말을 할라치면 입꼬리가 뒤틀리고 뺨이 따끔따끔하다. 고로, 내 말은 사실이다. 난 정말로 40만 원의 인세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새내기 작가들의 이러한 고민을 종종 본다.


"얼마 정도 벌면 전업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지금 회사생활과 겸업인데요, 인세로 X백 만 원 정도 버는데, 이 정도면 전업 작가 할 수 있나요?"


이러한 질문에 내가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입 꾹 닫'이다.

작가들은 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는 4인 가족의 가장일 수도, 누구는 미혼모일 수도, 누구는 아픈 부모를 돌보는 싱글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백만 원으로 만족하는 사람부터 천만 원이어야 만족하는 사람까지 욕망이 다들 천차만별이라서 '얼마 정도의 인세라면 전업 작가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해 줄 수 없다.


만약 내가 "전 40만 원의 첫 인세를 받은 이후로 쭉 전업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겉으로는 "오! 대단하시네요."라고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어디 산에서 도를 닦다 왔나? 40만 원에 어떻게 생계유지가 가능해?"라든가, "허언증이 심하네."라든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양반이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40만 원으로 어떻게 전업을 한다는 건지. 쯧쯧." 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제 막 글을 시작하는 작가라면 허무맹랑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난 12년 차 전업 작가이며 그동안 다른 직업을 갖기는커녕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면 누군가 날 먹여 살리는 거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천만의 소리. 난 독립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고, 싱글로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나조차도 내가 어떻게 망한 소설만 써서 지금까지 생계를 유지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막 작가 생활을 하는 초보 작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앞날을 두려워하지 말고, 반드시 00만 원을 벌어야만 전업 작가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해보세요. 일단 해보고 끝까지 버티면 당신도 전업 작가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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