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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마음의 문을 닫으려 했던 나

해외에서는 한국인들을 제일 조심해

by 하진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다.

여긴 단 6개월. 그러니 마음을 열 필요도 없어

벨기에와 상하이에서 했던 인턴십도 각각 6개월이었다.

그때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갔고, 금세 마음을 내어주며 지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이건 잠깐이니까”라며 관계를 회피했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하며 방과 화장실을 반드시 따로 써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독립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침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았지만, 입주 당일 집주인의 집요한 의심과 끝없는 확인 전화에 결국 마음이 무너졌다. 나를 보증해 준 친구는 물론, 그의 회사 인사팀까지 괴롭히던 집주인에게 더는 머물 이유가 없었다.

화가 난 나는 결정을 바꿨고, 그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 그날 당일 입주가 가능한 한국인 셰어하우스를 찾았다.

원래는 한 달만 지낼 생각이었지만, 룸메이트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따뜻했고, 그 온기가 나를 붙잡아 두었다. 지금은 어느덧 3개월째 같은 방을 나누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모국어로 하루를 나누는 순간, 누군가 “오늘은 어땠어?”라고 물어봐주는 그 단순한 질문이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해외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나는 해외에서 오래 살며 늘 같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한국 사람은 조심해. 제일 위험해.”

어릴 땐 그 말에 공감했고, 그래서 괜히 한국인들을 피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문이 생겼다.

중국인, 인도인, 다른 나라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만 서로를 경계하라고 말할까? 물론 조심해야 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을 가려낼 눈을 키운다면, 해외에서 한국인만큼 든든한 존재도 없다고 생각한다.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미 충분히 고된 일이니까.

그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축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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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깨달음은 직장에서도 이어졌다. 내가 일하는 호텔에는 한국인 직원들이 많았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작은 나라에 불과한데도 전 세계 어디서나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서 떠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우리 민족의 생활력, 도전 정신, 그리고 진취적인 기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해외에 나온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해외에서 본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살아낸다.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다. 호텔에서 함께 일한 한국인 동료들을 보며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국인들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지금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다.

음식, 문화, 영화, 드라마, 심지어 뮤지컬까지. 한국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것들이 전 세계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지금 전 세계가 한국을 몰래카메라로 찍고 있는 건 아닐까?”


그만큼 한국은 지금 가장 ‘힙’하고, 가장 ‘트렌디’한 나라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해외 곳곳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내고 있는 한국인들의 힘, 그들의 생활력이 만든 결과다.

그리고 우리 민족성이 드디어 전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해외 생활은 원래 힘들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닫으려 했던 마음의 문을 주변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결국은 사람이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하루를 나누는 그 사람이 있기에 타지에서의 삶이 조금은 덜 외롭고, 그래서 충분히 살아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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