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 급식에 김치가 나왔다.
미국 고등학교가 급식이 맛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립학교는 학교에서 급식업체와 계약을 하기 때문에 예외 기는 하지만 우리 학교 급식은 사립학교인 것을 감안하면 형편없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미국에 유학 하러 가기 전에 유학생 브이로그를 많이 보았다. 미국 음식이 맛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유학생들이 한식을 직접 요리하는 것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는 것과 실제로 음식을 먹고 경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차이가 컸다. 주메뉴는 햄버거, 피자, 치킨샌드위치, 타코. 9학년 때는 월, 화, 수, 목, 금요일마다 나오는 음식이 정해져 있었다. 목요일은 항상 타코, 금요일은 항상 피자였다. 운동하는 학생들을 위해 닭가슴살은 항상 있었다. 샐러드바도 두 개나 있고 빵과 잼도 구비되어 있어 음식이 맛없어서 굶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학교 급식에 적응하기 아주 힘들었다. 한국 음식은 반찬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맛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일주일마다 같은 음식을 먹고 맛은 짜거나, 달거나, 무슨 맛인지 설명이 안 되고 식감만 느껴지는 무맛이다. 인터내셔널 주 (International Week)은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 세계 대륙의 문화와 음식을 기념하는 주인데 요일마다 대륙이 대표하는 음식이 나온다. 아시아 날에 나온 음식은 말만 아시안 음식이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맛없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이상한 맛이 없다. 이번 연도에는 급식업체가 바뀌면서 음식 퀄리티가 좀 나아지는 듯했지만,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굳이 실험하듯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맛의 음식들을 학생들에게 배식한다.
예를 들어 급식에서 김치를 배식한 적이 있다. 직접 만든 건지 사 온 건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처음 맛본 김치 맛이었다. 감칠맛이 나야 하는데…. 단맛,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이런 느낌? 김치를 샐러드화 시킨 맛이었다. 한 번도 김치를 먹어본 적 없는 외국인들에게 김치를 이런 맛으로 첫인상을 남기게 한다니…. 유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준 건 정말 고맙지만, 차라리 아시안 마트에서 사서 대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10학년 때, 미국 고등학교 생활 2년 차, 나는 급식실에서 급식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운 적도 있다. 무슨 음식이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지하게 배가 아플 정도로 배가 고팠던 고통은 기억난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친구들 앞에서 분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점심 급식은 한 번에 $12 (현재 환율로 16,495.14원)…. 어떻게 이 돈을 내는데 이런 음식으로 대접을 받는지 돈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매일 배달을 시키는 것은 미친 짓이라 샐러드 바에 있는 과일과 빵으로 식사를 때우고 배달 음식은 주말에 종종 시켜 먹었다. 근데 배달 음식도 옵션이 짠 버거, 판다 (이제는 사라졌다), 치폴레 (맥시칸 식당), 파스타? 정도…. 그나마 건강을 생각해 치폴레에서 부리토 볼을 시켜 먹는다. 정말 배고픈 날에는 한 번에 그릇을 다 비우고 참을 의지가 남아있으면 반만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나머지 절반을 먹었다. 처음은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 치폴레 맛이 엄청난 버프를 받았는데 계속 먹다 보니 물렸다.
그래서 예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월마트 가서 장보고 학교 끝나고 요리해 먹는다. 뭘 하더라도 먹고 싶은 건 참지 말라고 한 아빠의 말씀 덕분에 어느 정도는 돈을 많이 쓴다는 죄책감을 어느정도 덜어놓고 요리 재료를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요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대부분의 밥은 라면으로 때운다. 그나마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름 달걀, 양파, 파, 당근을 추가해서 먹는다. 외국인 친구들한테 미국 음식은 너무 짜고 달아서 몸에 안 좋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나한테 '그럼 라면은 몸에 안 해롭냐, 너는 맨날 먹잖아'라고 받아치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친구들 앞에서 라면을 많이 먹었다.
미국에는 워낙 짜고 단 음식이 많아서 미국 와서 살이 찌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텍사스는 미국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주로 손꼽힌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 가서 오히려 살이 빠지고 한국에 와서 살이 왜 이렇게 빠졌냐고 가족들이 걱정하기도 했다. 라면을 그렇게 자주 먹었는데 살이 안 찐 건 다행이지만 건강이 나빠진 건 많이 느꼈다. 한국에 와서 건강한 음식을 정말 많이 먹었다. 미국에서는 잘만 들어가던 옷이 한국에서 한 달 동안 산 후 잘 안 들어가 배에 힘을 주고 겨우겨우 몸에 끼워 넣는 나 자신을 보면 영문 모르는 행복함을 느낀다. 여름방학이 되고 한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맛있게 먹어서 살이 올라온 나 자신이 너무 건강해 보였다.
여름방학이 이번주에 끝나고 다음 주면 나는 다시 텍사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예정이다. 가기 전에 마트에서 컵밥을 아주 많이 사재기할 예정이다... 시험 기간 요리할 시간 없을 때 컵밥만큼 기특한 식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