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향기가 그립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엄마가 앓고 난 감기를 고대로 이어받아, 지난주 내내 딸아이가 아팠다.
환절기라고 먹거리, 입을거리 신경 쓴다고 썼는데,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면 엄마는 괜히 미안해 진다.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가리는 거 없이 잘 먹고 활동적인 아이라 한동안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번 감기는 며칠 심하게 앓아서인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다음 주부터 더 추워진다는데 보약이라도 좀 먹여야 하나' 생각하며 자주가는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다 어린이용 홍삼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별 고민 없이 쓱 결제를 마치고 나니, 월동준비를 마친 거 마냥 뿌듯하다.
그러고 보니 딱 이런 계절이었다. 날씨가 좀 추워지나 싶을 때면 엄마는 걱정이 많아졌다. 나와는 3살 터울의 남동생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너무도 잘 자라 결혼해서 한 여자의 듬직한 남편이 되었지만, 사실 아직 내 눈엔 비리비리 허약체질의 마음이 여리고 약한 동생일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엄마 얘기로는 돌 이후부터 기침을 한번 심하게 하기 시작하더니, 크면서 가을 환절기부터 시작해 겨울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고 한다.
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내가
"너 때문에 우리 큰집으로 이사도 못 간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 분명 어른들이 한 말을 듣고 그랬겠지만 - 병원 출입이 잦던 아이였다.
동생은 7살이던 해에 편도선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받던 날 하교를 하고 찾은 동생의 병실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생이 내 곁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마취가 덜 깬 탓인지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던 녀석의 축 처진 모습을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내게는 꽤나 충격이었던 듯하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수술 때문에 꼬박 하루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동생에게 누나가 건넨 말이었다.
"깍두기랑.. 밥.. 깍두기.."
소박한 녀석. 그래 가을 무는 보약이라 했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십 번은 언급된 레퍼토리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됐지만, 7살짜리 아이가 수술 때문에 하게 됐던 금식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취가 덜 풀린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게 수술은 잘 끝났지만, 단번에 건강한 아이가 되지는 않았다. 녀석의 까다로운 입맛은 엄마를 신경 쓰이게 했다. 삼계탕을 끓였다 따로 건져놓은 닭가슴살을 일일이 찢어 마요네즈와 케첩에 버무려 샌드위치를 만드시는가 하면, 제발 한숟갈만 더 먹으라며 밥그릇을 들고 통사정을 하며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주 가끔은
'나도 좀 아팠으면 좋겠다.'
라고 못된 생각을 하곤 했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엄마가 용하다는 의원에서 보약을 한 첩 지어오신 거다. 지금도 그렇지만 흔히 가을에 보약을 먹어두면 겨울을 거뜬하게 난다고 동생을 위해 특별히 지어오신 듯했다.
그 보약이 뭐라고 괜히 심술이 났다.
약탕기에서 보약이 우러나던 부글거리던 소리도, 온 집안을 가득 채운 한약 냄새도 다 싫었다.
모든 공간이 다 동생을 위한 것인 것만 같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2인자의 질투 같은 것이었을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짙은 빛깔의 한약 한 사발을 들고 엄마는 또 동생을 달래야 했다.
"욱아, 꾹 참고 마시자."
"잉. 나 약 안 먹어. 냄새도 이상해."
내가 그렇게 먹고싶었던 보약. 엄마 사랑이 가득한 보약을 안 먹겠다고! 아주 배가 불렀어!!
"나도 보약 해줘. 왜 욱이만 해주고 나는 안 줘. 나도 아파! 엄마는 맨날 쟤만 좋아하고.. 나도 줘!"
눈물이 날만큼 그냥 서러웠다.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금세 흐릿해질 만큼. 늘 씩씩하고 어른스러웠던 그때의 여자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아..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다. 아픈 동생이 먹는 보약까지 샘을 내는 누나라니.
"이 쓴 약이 뭐가 그리 먹고싶노? 알았다. 해주께. 쓰다고 안 먹기만 해봐라."
나는 심각한데 엄마는 웃는 얼굴로 살짝 눈을 흘기시며 말씀하셨다. 다음날 샘쟁이 소녀는 보약을 먹을 수 있었다. 인삼과 대추를 푹 끓인 물이었는데, 아이가 먹기에 그리 유쾌하지 않는 맛임에도 그저 좋았다. 마시는 동안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엄마가 있어 마냥 흐뭇했다. 군소리 한마디없이 그렇게 꿀꺽꿀꺽 삼켰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동생의 보약을 달이시며 눈을 떼지 못했던 그 날 엄마의 시선이, 정성이, 동생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보약같은 사랑이 고팠다.
팍팍한 살림에 아픈 동생에게 수시로 나가던 병원비와 약값에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텐데...
아픈 동생이나 샘낸다고 야단치지않고 딸의 마음을 다독여준 엄마의 마음이 이제서야 헤아려진다.
엄마가 되어 아이가 아플때면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예민한 딸의 징징댐이 길어지거나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늘어나면, 엄마도 사람인지라 피곤하고 짜증이 나곤한다.
아이는 그저 따스한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 가득한 눈빛을 바랄 뿐인데..
뭉근하게 오래 달여진 정성, 먹어두면 두고두고 빛을 발하는 그런 보약 같은 엄마의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 내 딸에게도 그리 정성을 다한 사랑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이 가을, 그토록 싫어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보약 달이던 향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