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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글 Oct 18. 2016

손뜨개 추억

한 올 한 올 투박하지만 따스했던 엄마의 사랑


옷장 정리


두 계절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듯한 요즘 같은 날씨, 주부들은 옷장 정리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이번 가을엔 옷장 정리만 벌써 두 번째다. 간절기 옷들은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다' 면서도 세상구경 한번 못하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기 십상이다.


얼마 전까지 한낮에 이너로 입느라 남겨뒀던 여름 옷가지들을 완전히 정리해 의류박스에 보내고, 지난 일 년 동안 기다림에 지쳤을 가을, 겨울 옷가지들을 한 번에 풀어놓는다. 딸아이 옷들을 보니 엄마의 취향이 한눈에 보인다. 엄마 것도 딸 것도 유난히 니트류가 많다. 니트는 뜨개질 해 만든 옷이나 옷감을 칭하는 말이지만, 요즘 니트들은 대량생산을 위해 기계가 짜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손뜨개는 수공이 들어가다 보니 가격대가 비싸기에 선뜻 구입하기는 어렵다.



매번 나름의 이유를 붙여 구입했던 니트들. 색감이며 실의 굵기와 짜임이, 다른 듯 비슷비슷한 느낌이다. 세상에 오롯이 하나뿐인 엄마 손뜨개 옷의 기억과는 다른 이질감에 흠짓 놀란다. 그래도 모든 니트들은 그저 사랑스럽다. 니트를 바라보면 그 따스한 촉감이 입어보지 않아도 따습다. 등 따시고 배부른 느낌이랄까. 뭔지 모르게 인간미가 있어 따뜻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머리가 아닌 내 몸이, 손뜨개를 추억한다. 친정엄마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녀의 숨겨진 손재주가 빛을 발하는, 가을로 시작해 겨울이 되는 계절이 덩달아 좋았다. 그로 인해 친구들의 시선은 물론, 선생님들의 칭찬 한마디에 으쓱했던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시절에는 손뜨개 옷을 입는 일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손에서 탄생한 피조물들은 남다른 매력을 자랑했다. 무늬가 없는 브이넥의 조끼나 스웨터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꽃 모양이나 사슴이 좀 뛰어놀아줘야 뭇시선을 강탈할 수 있었다.




그 날의 기억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손뜨개 옷이 있다. 빨간 바탕에 노란 털실로 사슴과 꽃이 놓인 스웨터.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가을비가 서늘하게도 내리던 주말 오후, 아빠는 LP판을 뒤적뒤적하시다 한 장을 꺼내 전축에 올려놓으셨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올드팝을 들으며 무슨 뜻인지를 궁금해했다. 흐릿해진 기억 속에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잡음 섞인 그날의 선곡과 엄마의 뜨개질은 묘하게 어울렸다.



엄마가 자연스레 뜨개 바구니를 가져와 자리를 잡으면, 나는 그 옆에 딱 붙어 앉았다. 목을 길게 빼고 마술이 펼쳐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코를 만들고, 엄마 손가락 사이에서 대바늘이 털실 사이에 목을 끼고 교차했다. 그때 보였던 엄마의 오른쪽 둘째 손가락엔 한눈에 봐도 꽤 깊이 베인 상처가 있었다.

왜 다친 거냐고 물었더니, 어릴 적 시골에서 소여물 만들 볏짚을 작두로 자르다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고 하셨다. 당신 스스로 못생겼다며 늘 타박하던 손가락이, 뜨개질하시던 순간엔 그리 예뻐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아팠을까’하고 생각만 했을 뿐.


그렇게 완성된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가기 전날이면, 잠자리 머리맡에 고이접이 모셔 두었다. 소풍가기 전날처럼 설레이던 마음을 잔뜩 품은 그날은, 쉽게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 마흔이 가까워오는 즈음,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면 엄마의 손뜨개를 떠올린다. 허둥지둥 바쁘게 살아온 세월 앞에 그 따스함과 여유로움, 기다림이, 무뎌진 마음을 말랑거리고, 거칠어진 살결을 가슬 거리게 한다.


짝사랑했던 아이에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다 끝내 부치지 못한 손편지처럼, 손뜨개는 내게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설레는 추억이다.

엄마가 틈틈이 짬을 내서 뜨개질을 하던 시간은 느릿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완성된 스웨터는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지만 엄마의 체온이 한 올 한 올 스며있어 무엇보다 따스했다.



엄마의 뜨개 옷을 입고 그 사랑과 정성을 한껏 뽐낼 수 있었던 시절, 물질적으로 그리 넉넉하진 않았어도 사랑만은 차고 넘쳤던 나의 리즈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서툰 솜씨나마 나의 딸에게도 한 올 한 올 체온을 담은 손뜨개 사랑을 선물하고픈 계절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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