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사는, 이현재 씨

by 이선남

“오늘 아무도 안 와?”

3년 전 추석날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시댁 거실에 앉아 있다가 오 남매 카카오톡 창에 그렇게 남겼다. 답이 없었다. 이미 다들 못 온다고 했는데 괜히 한 번 더 물어본 것이다. 알림은 오지 않았는데 괜히 화면을 몇 번 더 확인했다. 남편이 힐끗 보더니 말했다.

“왜, 아무도 안 온대?”
“당신이 오지 말라고 한 거 아니에요?”
“내가 왜? 오히려 잘 됐네. 바로 일해야 한다며.”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서운했다. 설날에는 삼례 집에 오 남매 가족들로 가득했다. 막 친정인 삼례로 이사 온 터라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3년 만이었다. 이불을 펴다 말고 그대로 잠들고 깨면 다시 밥을 먹던 날이었다.

“삼남, 이불 좀 펴.”
“언니, 안주 뭐 할까?”
“누나, 이 소파에서 자면 숙면을 하는구먼.”

삼례집은 그때 오 남매네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는 시끄럽다는 생각만 했었다.

신혼 때 남편이 삼례집에 갔다 와서 말했었다.

“나는 처가 갔다 오면 캠프 갔다 온 기분이야.”

그때는 웃었다. 지금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때는 사람이 많았고 그게 얼마나 살아 있는 시간이었는지 몰랐다.


이번 추석은 조용했다. 목기를 정리하는 남편을 보며 시어머님이 말했다.

“아비는 아침에 퇴근했으니 좀 자야지.”
“어머니, 정리하고 집에 가서 잘게요.”
“왜, 여기서 자지.”
“괜찮아요. 집 가서 잘게요.”

“어미는 영화 볼텐디.”

나는 눈을 비볐다. 어젯밤, 세 시간밖에 못 잤다. 남편이 대신 말했다.

“어미도 요즘 바쁜 기간이라 몇 시간 못 잤어요.”

나는 잠깐 서 있다가 말했다.

“괜찮아요. 영화 보러 가요.”


“팝콘 하나, 콜라 세트 주세요.”

영화관 매점에서 나는 팝콘을 주문했다. 큰아들이 놀라며 물었다.

“또 드시게요?”

“응.”

카드를 먼저 내밀었다. 팝콘은 시어머님과 큰아들 앞에 놓였다.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먹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시댁에서는 같은 자리에 있어도 내 자리가 아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성묘를 가기 전, 과일을 샀다. 배는 가장 크고 반질한 것으로 골랐다. 엄마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샤인머스켓도 따로 담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남편이 놀라며 말했다.

“이걸 다 샀어?”
“응.”
“몇 개만 사면 되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는 다 올 줄 알았다. 남을 줄은 몰랐다. 그때 작은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삼례 갈까?”

남편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을 위해 아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을 다 듣고 답장을 보냈다.

“응, 얼른 와.”


삼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누웠다.

“좀만 자야지…”

눈을 떴을 때는 30분쯤 지나 있었다.

“쌈남아!”

현관문을 열자 선글라스를 쓴 작은언니가 서 있었다.

“와, 언니 영화배우 같아.”
“내가 이쁘긴 허지.”

우리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선산에 올라갔다.

“엄니, 아부지 왔어요.”

과일을 내려놓고 괜히 자리를 몇 번이나 다시 잡았다. 이렇게라도 잘해 보이면 알아줄 것 같아서였다. 절을 하려고 신발을 벗다가 발바닥에 뭐가 박혔다.

“앗, 씨… 뭐야 이거.”

나는 주저앉았다. 오두방정을 떠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냐.”

나는 웃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는 웃음이 먼저 난다.


“저녁은 뭐 먹을까?”

선산을 내려오며 내가 묻자 조카가 대답했다.

“이런 날은 고기죠.”

“그래, 고기 먹자.”

남편이 말했다.

“집에 음식 많잖아.”

나는 말했다.

“그래도, 가자.”


우리는 식당에서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고 웃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그게 좋았다. 작은 언니가 내게 말했다.

“비비정 갈까?”
“그래 언니, 지금 가면 노을 보겠다.”

“피곤하다면서.”

남편이 또 끼어 거들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갈게요.”


비비정 카페에서 나는 팥빙수와 커피 그리고 밤빵을 시켰다.

“또 먹어?”
“여기 오면 꼭 먹어야 해요.”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이번에는 내 것도 있었다. 남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오늘만 살아요.”

나는 웃었다. 남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남편은 나를 이현재라고 불렀다.
자신은 강미래라면서 나는 웃었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사람은 한 번 놓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자꾸 서두르게 된다. 엄마가 갑자기 떠났을 때 나는 바빴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시간이 남지 않는 쪽을 골라 살았다. 엄마 옷 한 벌도 사드리지 못했다. 그게 오래 남았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도, 돈도, 마음도 남아 있는 것부터 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카에게 돈을 건넸다.

“이모, 왜 이렇게 많이 줘?”
“그냥 받아.”

조카가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받아도 돼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써. 남겨두면, 결국 못 쓰니까.”

조카가 고개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며 돈을 받았다. 나는 웃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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