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새로운 분야 "조향"에 대한 도전
"영어 회화"를 배우는 것에 대해 익숙해졌을 때 나는 또다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영어를 배우고, 커뮤니티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처럼 느껴져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알고리즘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은 바로 "조향"이었다. "조향"은 말 그대로 향수를 제조하는, 향수를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에서 "조향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적어도 이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분야였다. 그렇기에 "조향"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너무나도 좋은, 내가 찾고 있던 새로운 자극이 될 그 "무언가"였다.
사실 나에게 있어 "조향"이라는 분야에 대한 접점은 거의 없었다. 인생에 있어 딱 한번, 대학원 시절 학교 후배가 조향에 관심이 있던 것 그 하나뿐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하고, 첫 사회를 발 디딜 때까지 나는 "향수"라는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당시 주변에서 "사회에 나와서 향수 하나쯤은 쓰는 게 좋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듣게 되었는데, 사실 단 한 번도 향수를 사본 적이 없어서 "어떤 향수를 사야 할지", "어떤 향수가 나에게 잘 어울릴지", "어떤 향이 좋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당시 그 조향에 관심 많던 그 후배가 백화점의 한 향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그 친구에게 향수를 추천받을 겸 그 친구가 일하는 매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여러 향수를 추천받았고 그중 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퓨어 우디"라는 향수를 구매하게 되었다. 이 향수는 사실 향수 이름에는 "우디"라는 이름이 들어가지만 실제로 향수 노트 중에는 우디가 없고, 향신료(Warm spicy) 향이 주를 이루는 향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그 친구가 추천해 준 향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향이었기 때문에 구매를 했었다. 그리고, 이 향수를 산 이후 몸에 향을 뿌리고 난 후에 향이 변해가는 것이 그 당시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날 이후 향수를 자주 쓰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첫 향수를 산 이후, 다른 향수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첫 향수 하나만 오랫동안 썼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나에게 조향 학원의 광고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 전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무작정 그 조향 학원에 등록을 하였고, 바로 그 후 2일 뒤에 조향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이때 당시 조향 학원 등록 비용은 저렴하지 않았으나,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등록 이후 한동안은 집 밖을 나가지 못했었다).
내가 등록한 첫 수업은 3개월 동안 진행되는 수업이었고, 기초반이었다. 첫 수업에서는 "향수"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서부터, 향수를 이루는 노트들, 그리고 부향률 등에 대해서 배웠다(부향률은 그 향수가 가지는 향료의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향수를 사면 향수병에 쓰여있는 오드코롱, 오드뚜왈렛 등이 이에 해당됨). 이론적인 부분은 언제나 지루하지만, 이 당시 나에게 있어 향수, 조향이라는 분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 들이었기에 지루한 이론도 재미있고 신선한 것들 뿐이었다. 이후 향료를 시향지에 묻혀 각각을 시향해 보았는데,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머스크"라는 향료의 향이 나에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강사님께서 머스크는 향이 강하지 않고, 베이스 노트에 해당되는 향이기에 발향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더욱 올라오기에,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다시 시향 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시향 해보니 부드럽게 올라오는 향이 매력적이어서 왜 사람들이 머스크 향수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조금 TMI를 하자면 향료 중 동물성 향료가 몇 가지 있는데, "머스크"는 이 동물성 향료 중 하나이다. 동물성 향료는 말 그대로 동물에게서 채취하는 향으로, 머스크는 한국말로 "사향"이라 불리며, 사향노루에게서 채취를 하는 향료이다. "용연향"이라 불리는 향은 영어로 앰버그리스(Ambergris)라고 불리며, 이는 향유고래에게서 채취한다. 이 밖에 비버에게서 채취하는 비버오일과, 사향고양이에서 채취하는 Civet cat oil이 있다. 이러한 동물성 향료는 동물의 특정 향을 만들어내는 장기에서 채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어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현재 사용되는 동물성 향료들은 주로 합성향료이거나, 비슷한 향을 가지는 식물성 향료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식물성 향료는 머스크와 비슷한 향을 가지는 "암브레뜨"라는 향료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3개월 동안 조향(기초반)의 수업을 모두 들었고, 나는 이 조향이라는 분야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3개월 동안 진행되는 조향(고급반)에 신청을 하게 된다. 이 기초반과 고급반의 차이가 있다면 사용하는 향료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점인데. 기초반에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있는 향료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레몬, 오렌지, 재스민, 장미, 정향, 시나몬 등 이러한 향료들을 사용하여 향수를 조향 하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방식은 블랜딩(Blending)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고급반에서는 이런 정향화 되어 있는 향료들을 만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배운다. 예를 들면 "재스민"이 있다고 하면, 이 재스민의 향은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이 섞여 이 재스민의 향을 가지게 되는데, 여러 가지 화학 향료를 가지고 이 재스민의 향을 만드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컴파운딩(Compounding)이라고 부른다. 이 컴파운딩은 화학 향료들 뿐만 아니라 앞서 사용한 정형화된 향료들을 같이 사용하여 조향을 진행하며, 이것이 일반적으로 향수 브랜드에서 향수를 만드는 방법이다. 다만 오롯이 화학 단일 향료들 만을 사용하여 조향 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풀 컴파운딩(Full Compounding)이라고 부른다. 다만 이 풀 컴파운딩 방식은 화학 향료 만을 사용하여 조향 하기에 자칫 잘못 배합하게 될 경우 알코올이나, 아세톤 등의 화학물질에서 날 법한 향이 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시중에 풀 컴파운딩 방식으로 조향 된 향수가 없지는 않으며, 대표적으로는 이스뜨와 드 퍼퓸이라는 브랜드의 디스이즈 났어 블루보틀(this is not a blue bottle)이라는 향수가 있음).
이렇게 2가지 수업(기초반, 고급반)의 조향 수업을 들었고, 조향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처음 조향을 공부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정도로 조향에 빠지게 될 줄 몰랐고, 이 정도로 향수라는 것에 대해 깊게 공부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조향에 빠지게 되어, 조향사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러기 위해 조향사 자격증 시험을 보게 되었다. 우선 처음으로 본 조향사 시험은 3급 자격증 시험이었다. 참고로 국내에 조향사 자격시험은 국제 혹은 국가 공인 자격증은 없으며, 민간 자격증만 존재한다. 내가 본시험도 조향사 협회에서 진행하는 민간 자격증 시험이었다. 3급 자격증은 "퍼퓸 디자이너"라는 명칭이며, 향수 공방 창업 등이 가능한 자격증이다. 참고로 2급 자격증은 "플레이버 리스트"라고 불리며 과자나 음료 등의 음식에 들어가는 시향을 조향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1급 자격증이 "퍼퓨머"라고 불리며 핸드크림, 향수, 디퓨저 등 모든 향장 쪽 분야의 일이 가능한 자격증이다. 자격시험은 필기와 실기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필기는 이론적인 내용이며, 실기는 향을 맡고 그 향을 맞추는 블라인드 테스트이다. 3급 자격증은 기초반에서 사용했던 재스민, 장미 등의 정향화된 향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이루어져 향을 잘 기억만 하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시험이어서 비교적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1급 자격증 시험도 보려고 준비했지만, 회사 일이 바빠진 관계로 1급 자격증 시험은 볼 기회가 없었다. 다만, 만약 1급 자격증 시험을 볼 기회가 있었더라도 한 번에 통과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만큼 시험이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화학 단일 향료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 같다(화학 단일 향료는 향이 향수나, 다른 향료들에 비해 향이 엄청 약하며, 향료들 중 일부는 정말 물과 같은 향이 없고, 그러한 느낌만 있는 향료들도 있어 이를 구분하기 매우 어려움).
내가 이런 조향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향료로 쓰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향료들도 사용하며, 공부를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향료들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향을 섞기 전과 후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알아가는데 흥미를 느꼈고, 완전히 빠져들게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정향(Clove)이라는 향료가 있다. 이 정향은 한 번 맡아보면 모두가 다들 동의하는 느낌이 있다. "치과 냄새" 나와 같이 조향 수업을 들었던 멤버들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었으며, 강사님께서도 대부분 이 정향을 치과냄새로 인식한다고 한다. 추후 찾아본 바로는, 이 정향은 실제로 진통제 성분이 있으며, 치과 등의 병원에서도 사용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치과 냄새"를 가지는 정향이 장미와 섞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도 처음 예상은 "치과 냄새+장미?" "그걸 굳이 섞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강했으나, 실제로 섞어보고는 적잖이 놀랐으며, 이 정향이라는 향은 적어도 장미향수를 만드는데 "필요한"향료구나라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 정향이 장미와 섞이게 되면, 장미의 향이 더욱 풍성해지며, 분명히 합성향료임에도 불구하고, 장미향이 생화 느낌이 나는 향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실제로 경험해 보니 나에게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더욱 빠져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지금의 나는 조향에 대해 더 공부를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 더불어 조향사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찾고 있는 상태 역시 아니다. 다만 조향을 공부한 이후로 새로운 향을 찾아다니는 데에 빠져 여러 가지 향수와 브랜드를 찾아다니며 시향, 착향을 해보며 새로운 향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본, 시향 해본 향수들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향수를 추천해 주는 것도 많이 하고 있다(부업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해 주는 정도).
비록 나는 조향사로서 혹은 화장품 및 향장 업계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하나도 된 게 없으므로, 이 조향에 대해 공부한 것은 시간낭비, 돈낭비로 생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으며, 좋은 경험,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전혀 낭비가 될 수 없으며, 오롯이 일적인 부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므로, 이런 부분에 있어 "남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