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천계 6년 북경성 대폭발 비망록

by 장웅진


시간이 좀 지나 사정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이런 확신마저 들었다.


‘어쩌면 학살은 마 대인의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벌거숭이가 되었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서였다.

왕공창 근처 주루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하던 일곱 명 중에선 한 명만 목이 달아나고 나머지는 벌거숭이만 되었을 뿐 머리털 하나 안 다쳤다고 한다.

어쩌면 마 대인이 그 ‘아틀란티스의 아이들’이라는 자들을 망하게 한 방식도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 그때보다 덜 과격해진 것인지도 모르지.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마 대인의 마음도 안 그랬겠나.


그러나 이런 마 대인의 경고를 알아들을 사람이 상국(上國: 명나라)의 높으신 분들 중에 없다면?

결국 마 대인은 애꿎은 사람들만 여럿 죽인 셈이었다.

이 땅에서 1만 년 넘게 살았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직도 간파하지 못한 건가 싶어 헛웃음까지 나왔다.


“황궁도 크게 당했네. 궁인들 시체를 지금까지 2천여 구나 수습했다는군. 하늘로 치솟았다가 죽어서 떨어진 궁인들의 벌거벗은 시체들이 황궁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나뒹굴거나 쌓인 걸 보고 여러 대신들과 변을 당하지 않은 궁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네. 마침 업무를 개시하려고 다들 모였던 때에 그런 일이 터졌으니…. 불행 중 다행히 폐하께서는 무탈하시지만, 아기씨이신 황삼자(皇三子: 주자경) 전하께서는….”


내가 난민들에게 죽을 배식한다는 소식을 들으신 단골 분들이 나를 치하해주시려고 내가 차린 구호소에 오셨다.

그분들은 당신들도 큰 피해를 보셨는데도 격려와 함께 재물도 쥐어주셨다.

그중 어느 분이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까지 들려주신 것이다.

나는 이분에게라면 괜찮겠지 싶어 마 대인 이야기를 해드렸다.

마지막에는 마 대인의 경고를 새겨들으시라고,

이보다 적어도 몇 배 더 거대할 재앙에 대비하시라고 말씀을 올렸다.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하신 이분의 반응은 아주 차가웠다.


“그 ‘천외비선’이라는 자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이후 나는 이분을 뵌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인들이 알려주기를 이분이 나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몰라도,

나를 치하해주시려고 오시던 다른 단골 분들도 발길을 끊으셨다.

그러자 이전까지 내 주루 근처를 얼씬도 하지 않던 관헌들이나 무뢰배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찾아와서 대놓고 재물을 요구했다.

양씨도 잠이 들 때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힘들어하고, 매일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그래서 양씨가 낙향하겠다고 하니, 나도 겨울이 와서 뱃길이 험해지기 전에 귀향하기로 했다.


양씨와 하인들에게 세경을 넉넉히 정산해주고 뱃삯을 치르고도 은자가 수천 냥이나 남았다.

한양에 가서 8년 만에 처자식과 재회하니,

다들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그 건어물상에게서 듣고 내 언문 서간(書簡)까지 받고도 믿지 않았기에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가 내 몸을 얼싸안고 통곡했다.

애들을 잠재우고 처와 단 둘이 있자 마 대인과의 일을 아주 길게 제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처는 마 대인이 했던 경고와 그걸 상국 고관께 전해드린 얘기에 화들짝 놀라며 이리 말했다.


“아이고, 임자! 큰일 날 뻔 하셨소! 자칫 임자의 단골들께서 임자가 왕공창에 불을 지른 마 대인인지, 신선인지 하는 작자의 당여(黨與: 동료)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었단 말이오! 가뜩이나 황제께서 사시는 고을에 사는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다쳤으니 누군가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려고 벼슬아치들 눈이 벌갰을 터! 임자는 자칫 의금부 같은 데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이 잘려 시장에 효수될 수도 있었단 말이오!”


처의 말이 그럴 듯하다 여겼기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아마 내게서 마 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바로 그 나리께서는 나를 그저 ‘상종해선 안 될 놈’ 정도로 여기셨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악당에게 속은 양민 따위로 보셨음이리라.

안 그랬으면 처의 말대로 나는 지금 수정과를 마시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못했으리라.


나는 혹시라도 심하 전투와 같은 전란에 또 휩쓸릴 게 두려워서, 그리고 내가 가진 땅에서 농사를 짓는 양민으로 살고 싶어서 낙향을 결심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거제현 두룡포(현 통영) 출신인 처가 “이순신 장군의 혼백께서 지켜주실 텐데, 별 일 없지 않겠소!”라고 강권하니 두룡포로 이사했다.

거제현 일대에서 땅 마지기와 어선 여러 척을 사서 경영하니 금세 남부럽지 않은 천석꾼 부가옹(富家翁)이 되었다.


이후 사귄 벗들이 상국에서 겪은 일을 들려 달라 했지만 마 대인이 천외비선이라는 사실 따위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다.

또 다시 ‘이상한 자’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왕공창 폭발 사건도 실제로 겪은 사람이 많고,

사건이 있었던 달의 말엽에는 먼저 가신 형님들을 대신해 보위를 물려받으셨어야 할 황삼자께서,

그 다음 해에는 천계제께서 붕어하셨다는 소식도 상국을 다녀온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기에 겨우 믿어주었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무릇 그 자신 말고는 정체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인(奇人)이 많다.

마 대인처럼 말이다.

많이 배우신 분들은 이런 기인들이 벌이는 일을 괴력난신(怪力亂神),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여기고 손가락질하면서 무시한다.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설령 직접 보거나 들었더라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괴력난신이니, 혹세무민이니 하며 손가락질하는 건 제 식견이 좁은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소인배의 지랄발광(舐垃發狂)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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